“나는 이런 변화가 슬프다.”
이 말은 최근 발표된 일련의 F1 규정 변화에 대해 전설적인 해설자 머레이 워커가 한 말이다. 라이트 팬을 유입하고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F1에 도입되고 있는 ‘예상 밖의 새로운 규정’이 문제다. 머레이 워커 역시 이런 변화를 피할 수 없는 현실적인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결사 반대를 외치는 대신 슬프다는 표현을 썼다.
문제가 된 최근의 규정 변화들에 대해서 많은 F1 팬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심한 경우 분노를 표출하고 FIA나 FOM에 맹렬한 비난을 퍼붓는 이들도 있다. 애초에 기존 팬보다 새로운 팬의 유입을 고려해 만든 규정이다 보니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비난은 사실에 근거한 것도 있지만 일부 오해에서 비롯된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문제의 규정 변화’에 대한 이야기 중 어떤 것이 오해고 어떤 것이 비난 받을만한 일이며, 일이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최근 발표된 2014년 6월 30일자의 ‘2015 F1 운영 규정’에는 세이프티카 상황이 정리된 뒤 기존의 롤링 스타트가 아닌 스탠딩 리스타트가 적용된다고 명시됐다. 세이프티카가 도입된 후 20년 간 유지되었던 시스템이 내년부터 바뀌는 셈이다. 많은 드라이버들이 공개적으로 스탠딩 리스타트에 대해서 반대했고, 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도 반대가 월등히 많았다.
이처럼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스탠딩 리스타트가 도입된 데에는 세이프티 카 상황 이후 많은 변수를 만들어 보다 흥미 있는 레이스를 만들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놀랍게도 이 아이디어는 FIA가 아닌 F1 팀들의 수뇌부에서 나온 것인데, 대부분의 팀이 스탠딩 리스타트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면서 일사천리로 합의에 도달했다. 팬들이나 드라이버들의 생각과는 상당한 온도 차이가 ‘팀들의 수뇌부’에 있었던 것이다. FIA나 FOM에게 모든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은 명백한 오해다.
이처럼 각 팀의 수뇌부에서 스탠딩 리스타트라는 다분히 ‘부자연스러운’ 시스템을 도입하게 만든 이유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새로운 팬들, F1과 모터스포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단순한 진입 장벽으로 여길 수 밖에 없는 이들에게는 많은 변수와 부차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상황 등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리고 이런 단순한 팬들이 늘어나야만 스폰서가 늘어날 수 있다. 중위권 팀과 독립 팀을 중심으로 몇 년 째 재정난을 겪고 있는 것과도 많은 연관이 있다는 뜻이다. 인기 팀, 대형 팀이라면 F1 고정 팬들이 든든한 힘이 되어주지만, 비교적 인기가 적은 팀, 중소형 팀은 사정이 다르다.

역시 같은 6월 30일자로 발표된 ‘2015 F1 기술 규정’에 티타늄 플랭크 관련 규정이 포함된 것도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FIA의 레이스 디렉터인 찰리 화이팅은 인터뷰를 통해 이 규정이 기존 스키드 블록이 너무 견고해 결과적으로 차고가 낮아지고 보다 위험한 상황을 나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티타늄이 지면과 접촉하면서 불꽃이 튀기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의 추가에 대해서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보다 안전한 레이스를 위한 규정 변화라는 의미 부여는 생각만큼 설득력이 크지 않다. 티타늄 플랭크에 대한 설명까지 화이팅의 설명을 인정해준다고 하더라도, 동시에 추가된 스탠딩 리스타트는 누가 봐도 롤링 스타트보다 위험하다. 안전 강화가 목적이라면 적어도 스탠딩 리스타트가 동시에 추가된 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런 기술 규정의 변화는 FIA측에서 주도할 수 밖에 없지만, 많은 팬들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은 ‘각 팀들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규정이 변경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밖으로 어떻게 얘기할지는 몰라도 결국은 F1 팀들 내부에서는 이런 규정을 (반기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지지했다는 뜻이다.
지면과 접촉할 때 많은 불꽃을 일으키는 티타늄 플랭크의 추가를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의 추가로 본다면 이해는 할 수 있다. 기존 스키드 블록에서도 많은 불꽃이 ‘F1 문외한’들에게 많은 매력을 느끼게 했던 나이트 레이스 싱가포르 그랑프리의 성공과도 작게나마 연관이 있다. 날로 늘어나는 나이트 레이스 역시 안전을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흥행에는 매우 큰 효과가 있다. 일단 자극적이고 독특한 장면을 통해 라이트 팬이 유입될 가능성도 조금이나마 높아질지 모른다.

이미 지난해 확정된 내용이지만 올 시즌 최종전인 아부다비 그랑프리에는 더블 포인트 시스템이 적용된다. 시즌 최종전 흥행에 도움을 주며, 시즌 중후반의 경쟁 구도를 더욱 재미있게 만들려는 시도지만 다분히 ‘인위적인 흥행 요소’라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다른 인위적 시스템 추가와 맞물려 많은 비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더블 포인트 시스템은 2014 시즌 아부다비 그랑프리에 사용될 예정이다.
모든 그랑프리에 같은 비중을 주지 않고 최종전에 특별한 비중을 주는 것은 F1이 노리는 라이트 팬을 놓고 경쟁하는 상대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려준다. TV 중계권 판매를 포함해 어떻게든 세계로 시장을 확대하려고 하는 다양한 프로 스포츠들이 바로 그 상대들이다.
포스트 시즌이라는 개념이 축구에서 거론이 되고, 포스트 시즌에 대한 비중이 적었던 일본
프로 야구가 점차 포스트 시즌 비중을 늘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신규 팬 유입을 위해 사력을 다하는 것은 F1뿐만이 아니다. 젊은 신규 팬 유입을 위해 다양한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추가하고 있는 다른 스포츠들과 경쟁하려면? 그들보다 더 자극적이고 ‘인위적이라도 끝까지 흥미를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하다.
모터스포츠라고 예외는 아니다. NASCAR에서 어느 정도 포스트 시즌의 개념을 도입해‘체이스 포 더 챔피언십’을 통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F1을 자극했을지 모른다.
NASCAR 역시 2014 시즌을 맞아 ‘체이스’의 폭을 크게 확대하고 네 개의 라운드로 구분된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 포스트 시즌(?)을 강화했다.

조금은 다른 의미로 들릴 수도 있지만 최근 논의되고 있는 FRIC 시스템의 규제도 단지 특정 팀을 노리고 칼을 대는 것은 아니다. 메르세데스가 현재 FRIC 시스템을 가장 깊게 연구 개발해 적용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FRIC 시스템은 메르세데스만의 것은 아니다. 처음 개념을 도입하고 연구 개발을 시작한 것은 로터스였고, 지난해는 몰라도 현재는 메르세데스와 로터스 외에도 많은 팀들이 FRIC를 사용하고 있다.
FRIC에 대한 규제는 약8년 전 문제가 되었던 매스 댐퍼에 대한 규제의 경우와 많이 닮아 있다. 당시에도 매스 댐퍼 기술을 선도하던 르노의 독주에 대한 견제가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고, 규제가 이뤄지기 전까지 이 기술이 합법적인지 아닌지에 대해 의견이 갈렸고 조치가 미뤄졌다. 현재 메르세데스의 독주를 견제하려고 FRIC 시스템을 규제하려고 하지만 왠지 규정이 확정되는 것은 늦어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각 팀들의 반응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이 꼭 메르세데스를 견제하기 위해서 나온 이야기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메르세데스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 시스템 하나가 없더라도 메르세데스의 독주가 멈춘다고 보기는 어렵다. 레드불이 한창 독주를 하던 시절 이런저런 규제가 시즌 중에 추가되었음에도 레드불과 다른 팀의 격차가 크게 좁혀지지는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F1 레이스카가 어떤 빛나는 기술 한 두 가지 때문에 현격하게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FRIC 시스템 규제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면 왜 이런 시스템을 규제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FRIC 시스템은 앞(F) 뒤(R )의 서스펜션을 서로(I) 연결(C )하는 시스템으로 차량의 피치를 보다 안정적으로 제어해 공기역학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문제는 마지막 구절인데 서스펜션 자체가 기계적으로 작동하더라도 이것이 공기역학적 효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현재 기술 규정의 원칙과는 배치된다. 매스 댐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영향이 큰가의 여부를 판단하는데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어쨌든 큰 틀에서 합당한 조치라고 하더라도 메르세데스를 견제하는 의도가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 팀간 비용 제한 협정이 붕괴된 상황에서 메르세데스처럼 돈을 쓸 수 있는 빅 팀이 아니라면 이를 따라잡기 쉽지 않기 때문에 중하위권 팀을 위해서 규제가 이뤄지는 면도 없지 않다. 단지 시점이 시점이다 보니 팬들에게 곱게 보일만한 규제는 아니다.
결국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는 없다는 것이 문제다. 올드 팬들은 기존 시스템에 충성하지만 실제로 큰 돈이 되지는 않는다. 신규 팬을 유입하고 스폰서를 유치하려면 변화가 필요하다. 스몰 팀을 살리기 위해서도 변화가 필요하다. 기존의 매력을 상당 부분 거세 하더라도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올드 팬들에겐 얼토당토 않은 규정 변화와 규제가 거듭되는 면이 적지 않다. 이런 변화에 대한 시도가 아니었다면 우리나라에서 F1 그랑프리가 개최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이건 아니다 싶은 규정 변화들은 어쩔 수 없는 면이 적지 않다. 무한 경쟁에 돌입한 세계 스포츠 시장의 상황을 충성도 높은 F1 매니아들의 힘만으로 바꿀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익숙하기도 하고 훨씬 바람직해 보이는 과거의 모습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은 가슴 아프다. 그래서 머레이 워커는 이와 같은 변화가 슬프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 역시 F1의 이런 변화가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