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도 피해가고 건물이 폭발해도 살아남는 남자. 그 이름만 들어도 테러범이 스스로 짐을 싸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존-맥클레인이 뉴욕을 벗어나 러시아에 나타났다.
물론 언제나 죽음까지 불사하고 싸우지만 그는 결코 죽지 않는 슈퍼맨인걸 알기에 관객은 언제나 안심이다. 더구나 이번 편엔 안전의 대명사 메르세데스-벤츠까지 가세 했으니 긴장감이 오히려 반감되는건 아닐까.

지난 6일 국내 개봉한 다이하드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 ‘다이하드: 굿 데이 투 다이’에 메르세데스-벤츠는 C클래스, G클래스, GL 클래스, 스프린터, 유니목, 제트로스 등 총 14차종이 등장한다. 주인공이 활약하는 차는 다 메르세데스-벤츠고 테러에 폭파되거나 메르세데스-벤츠에 깔리는 차는 전부 경쟁차종이다.
그래서 영화는 메르세데스-벤츠의 홍보물이라 해도 과언 아니다. 이 정도면 영화는 공짜로 보여줘도 되겠다.

◆ 무참히 파괴되는 자동차, 폐차만 132대
한명의 자동차 마니아로서 영화를 보는 내내 쾌감보다는 울컥하는 심정이 더했다. BMW 7시리즈는 테러범의 습격으로 흔적조차 없이 폭파된다. 신형 7시리즈가 최초로 공개된 러시아에서 7시리즈가 파괴될 줄이야. 포르쉐 박스터(986)는 G클래스에게 밟혀 처참하게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존-무어 감독은 “애석하지만 람보르기니도 폐차장으로 가야했다”고 말했다. 감독의 발언에 영화 워낭소리가 생각나는 것을 왜일까.

다이하드5에서 가장 백미인 자동차 추격전을 위해 총 190여명의 스턴트맨이 동원됐고 82일 동안 12개의 도로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이번 추격신은 CG를 최소화한 것이 특징. 실제로 차량을 폭파시키고 부수고 짓밟으며 통쾌한 영상을 선사한다. 언제나 그랬듯 다이하드는 아메리칸 마초의 향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촬영 기간 동안 518대의 차량이 파손됐고 132대의 차가 폐차장으로 향했다. 폐차된 차량 가격만 약 1100달러(약 120억원)에 달한다. 이 중의 절반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차량일 텐데 놀랍게도 메르세데스-벤츠는 차량을 전부 무상으로 제공했다고 한다.

◆ 환갑을 바라보는 브루스-윌리스, 박수칠 때 떠났으면
기존 다이하드 시리즈는 전형적인 미국의 영웅물인 람보, 미션임파서블 등과는 조금 달랐다. 영화의 스케일보단 다소 게으르고 허술해 보이는 주인공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였다. 관객들은 건물이 부서지고 차량이 폭파되는 것보다 열악한 상황에 처한 존-맥클레인의 분노와 광기, 기지를 사랑했다.

환갑이 다 돼가는 브루스-윌리스에게 기존과 똑같은 연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예전처럼 건물환풍통로를 쏘다니긴 힘들다. 스턴트의 비중을 높여야 됐고 그래서 손쉬운 차량 추격신을 대폭 늘린 것 같다.

아놀드-슈왈제네거도 여전히 액션 영화를 찍지만 터미네이터는 과감히 내려놨다.(터미네이터5에 출연한다는 소문이 있지만 미지수다. 그리고 사람들은 크리스찬베일을 더 좋아한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아놀드는 더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근육질의 클린트-이스트우드가 돼가는 듯하다. 이번 다이하드5를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브루스-윌리스도 존-맥클레인을 놔줄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