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스데이 - 지구 최후의 날>은 새로운 스타일의 공포영화라는 극찬을 받은 <디센트>의 닐 마샬 감독이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딱히 유명한 배우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스토리가 탄탄하거나 신선한 느낌이 있는 영화는 아니다. 미국의 한 평론가의 평을 빌리자면, 모호하고 시끄러우며, 모든 것이 모방 투성인 가라오케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영화는 형편없다. 어디서 본 듯한 설정과 장면들, 아름답지도 않은 여주인공은 이 영화가 흥행에 목숨을 걸고 만든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그냥 영화사와 계약은 남아있어 영화를 찍긴 찍어야 되는데 시간은 없고, 그러다 이것저것 짜깁기한 것이 아닐까. 아니면 감독이 협찬인 ‘벤틀리 컨티넨탈 GT’라도 한 대 받기 위해 104분짜리 CF를 찍은 것은 아닐까.

영화 후반부는 그야말로 자동차 CF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편없는 영화에서 마지막 차량 추격 장면을 위해 3주의 시간동안 10대의 카메라로 동시에 촬영하는 엄청난 강행군을 펼쳤다니. 그만큼 제일 공들인 장면이면서 유일하게 볼만한 부분이다. ‘벤틀리 컨티넨탈 GT’도 굉장히 오랜 시간 영화에 등장하고 추격신도 멋있게 찍고, 자동차의 특성이 살아나게끔 잘 찍었다. 그러나 여기에 큰 어폐가 있다. ‘벤틀리 컨티넨탈 GT’는 5,998cc W12트윈터보 엔진이 장착된 552마력, 최고속도 318km/h를 자랑하며 0→100km/h 까지 4.7초에 불과한, 발표 당시 세상에서 제일 빠른 4인승 쿠페였는데… 영화에서는 구식 재규어며 괴상한 오토바이 하나 제대로 따돌리지 못한다. 미래 폭주족들은 트랙터에 16기통 직분사 엔진이라도 끼워 넣은 것인가. 영화에서 PPL를 하면서 자동차의 우수한 성능이나 멋진 디자인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건 마치 자살행위 같다.

영국의 벤틀리는 191년 설립되어 1931년 경재공항으로 인한 재정난으로 라이벌 업체인 롤스로이스에 인수되었다. 엔진과 섀시를 공유하고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점점 자신의 색깔을 잃어갔다. 과거 르망24시 레이스를 4회 연속 우승하던 영광의 순간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 듯 했다. 그러나 롤스로이스 또한 재정난으로 BMW에 인수되었고 폭스바겐은 숨은 진주인 벤틀리를 인수하게 되었다. 이로써 벤틀리는 형들 헌옷이나 물려받는 처지가 아닌, 독자적인 모습의 벤틀리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만든 벤틀리의 첫 번째 자동차가 2003년 발표된 ‘벤틀리 컨티넨탈 GT’다.

현재, 벤틀리는 럭셔리한 이미지 덕분에 많은 유명인들이 선호하고 있다. 그리스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와 미국 포드자동차의 헨리 포드도 벤틀리를 소유했었으며 억만장자 패리스 힐튼 핑크색으로 튜닝한 ‘벤틀리 컨티넨탈 GT’를 애마로 이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권상우, 송승헌, 전지현, 연정훈 등 많은 연예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이런 ‘벤틀리 컨티넨탈 GT’가 어째서 고물차에게 따라 잡혔는가 하는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또 다른 의문이 있다. 바로 영화의 결론이다. 우리의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여전사 주인공은 미션을 완수하지만 버려진 땅에서 돌아가지 않는다. 전염병이 돌고 폭주족들이 인육을 먹는 그 곳에 여주인공은 오히려 당당히 남는다. 그 것은 바로 그녀의 옆에 ‘벤틀리 컨티넨탈 GT’가 있기 때문이다. 제 멋대로의 해석을 하자면, 임무를 완수한 여주인공은 평소 자신의 드림카였던 ‘벤틀리 컨티넨탈 GT’에 매료된다. 자신을 구출하러 온 헬기에 ‘벤틀리 컨티넨탈 GT’를 실을 공간이 없어보이자 그녀는 결국 ‘벤틀리 컨티넨탈 GT’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조크다. 어쨌든, 많은 사람의 드림카로 자리 잡고 있는 ‘벤틀리 컨티넨탈 GT’는 충분히 인생을 걸어볼만한 차가 아닐까.
김상영 기자 young@top-rider.com <보이는 자동차 미디어, 탑라이더(www.top-rid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