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자욱한 새벽, 굉음을 내며 자동차 한 대가 꼬불꼬불한 산속 도로를 질주한다. 오래된 흰색의 자동차는 급격한 코너의 연속인 산 속 도로를 미끄러지듯 질주한다. 트렁크에 두부까지 실은 상태로 말이다. 작은 충격에도 쉽게 부서지고 마는 두부는 아무런 상처조차 입지 않았다. 프로레이서가 생활고를 못 이겨 두부 배달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것일까?

위 이야기는 바로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자동차 만화 ‘이니셜D’의 극장판 첫 장면이다. 자동차 매니아 혹은 일본 만화 매니아들에게 ‘이니셜D’는 신적인 작품이다. 일본 내에서만 4,600만부가 팔렸으며, 여러 차례 애니메이션, 게임으로 제작되었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전설적인 레이서를 아버지로 둔 주인공은 매일 새벽 험한 산길을 뚫고 두부 배달을 한다. 어느 날 우연히 아마추어 레이서의 차량을 앞지르게 되고, 이 소문이 퍼져 프로 레이서들까지 그에게 도전을 하게 되는 내용이다. 참 단순한 내용이다. 많이 자동차 혹은 스포츠 영화가 그렇듯이 주인공은 잘나가다가 시련을 격지만, 결국 그 시련마저 이겨내고 승리한다는 기본적인 내용의 전개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니셜D’를 열광하게 만든 것인가?

‘이니셜D’를 열광케 하는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주인공의 자동차이다. ‘이니셜D’의 자동차는 일명 ‘AE86’ 이라 불리는 ‘도요타 스프린터 트레노(TOYOTA SPRINTER TURENO)’이다. 1983~1986년까지 생산된 차량으로 1,589cc DOHC 16밸브 4기통 엔진, 최대출력 130마력의 후륜구동(FR) 쿠페이다. 연식을 보나 외관상으로 보나 딱 옛날 차다. 좋게 말하면 올드카이고 나쁘게 말하면 똥차라고 감히 표현을 해본다. 그런데 이 차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현재 국내에서 좋은 호응을 얻고 있는 제네시스 쿠페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무지하게 잘나간다. 도저히 차들이 쫓아오질 못한다. 한참을 신나게 가고 있는데 뒤에서 웬 차 한 대가 맹렬히 쫓아온다. 순식간에 그 차는 제네시스 쿠페를 앞지른다. 멍하니 그 차의 뒷모습을 본다. 그 차는 포니였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스토리 상황에서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충분하다.

자동차를 고속주행에 맞게 튜닝하면 세상에 빠르지 않은 차가 어디 있나 할 수도 있겠다. ‘이니셜D’를 열광케 하는 두 번째 포인트는 산길이다. 스트리트 레이싱을 소재로 한 영화는 이미 많이 있다. 하지만 험한 산길을 미끄러지듯 내려오며 레이싱을 하는 드리프트 레이싱 영화는 흔치 않다. 원작자는 ‘이니셜D’의 ‘D’는 ‘Drift’를 지칭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드리프트란 무엇인가? 드리프트라 함은 차가 미끄러지는 현상을 이용하는 레이싱 테크닉이다. 드리프트를 하게 되면 코너 진입시 진선 구간에서의 속도를 최대한 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연속적인 코너를 빠른 속도로 빠져 나갈 수 있다. 그러나 드리프트는 핸들 조작과 브레이크, 액셀의 타이밍으로 미끄러지는 차체를 제어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테크닉이다. 일반인이 무작정 했다간 차가 급회전해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일단 드리프트로 코너를 빠져나가는 차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누구나 그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이니셜D’ 에서는 가벼운 차체와 후륜구동방식의 ‘AE86’의 장점을 잘 살려냈다. 차를 과도하게 튜닝해서 오래된 차를 좋게 만든 것이 핵심이 아니라 오래된 차이지만, 그 것의 장점을 잘 끄집어낸 것이 ‘이니셜D’를 열광하게 만든 것이다.

2010년 초반, 자동차 업계의 빅뉴스는 도요타 리콜 사태가 아닐까 싶다. 전 세계에서 천만대 가량이 리콜 됐다. 이것은 2009년 미국 시장에서 팔린 차량대수와 비슷한 수치이다. 원가 절감과 생산량 확대만 급급한 결과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다. ‘AE86’도 어떻게 보면 원가 절감, 공장의 체제 변화 시점에 나온 차량이다. 후륜구동(FR)을 고집하던 도요타에서 전륜구동(FF) 체제로 변화하면서 기존의 후륜구동(FR)의 공장 시스템을 그냥 방치해두기 아까워서 만든 차량이 ‘AE86’ 이기 때문이다. 반면, ‘AE86’은 출시된 지 30년 가까이 되었지만 아직도 일본에서는 전용샵이 있을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중고차는 매물이 없어서 못 파는 형편이다. 만화나 영화의 인기도 탓도 있겠지만, 세월을 무색하게 만드는 월등한 성능은 아니더라도 달리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자동차의 기본조건을 충분히 충족시켜주기에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김상영 기자 young@top-rider.com <보이는 자동차 미디어, 탑라이더(www.top-rid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