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 차를 실제로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전세계에 단 300대만 생산됐고 차량 가격은 175만달러(약 19억원)나 되기 때문이다. 그마저 옵션을 제외한 '깡통차'의 가격이다.
더구나 실제로 이 차를 도로에서 마주했다 해도 정확히 보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이 차는 시속 400km가 넘는 최고속도를 내기 때문에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눈앞에서 사라졌을지 모른다.
지구상에서 가장 비싸고 가장 빠른 차인 부가티 베이론을 소개한다.

◆ 부가티의 핵심, 예술과 기술의 조화
부가티는 올해로 104년이 된 오래된 자동차 회사다. 부가티의 창업자인 에토레-부가티(Ettore Bugatti)는 1881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유서 깊은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들은 조각가, 화가 등의 순수미술에서부터 가구 디자인, 보석 공예, 건축설계 등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자연스레 에토레도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지만 그의 관심은 자동차에 쏠렸다.
그러다보니 부가티의 차는 예술과 기술의 조화가 핵심이 됐다. 예술적 가치를 논할 정도로 아름다우면서도 모터스포츠를 휩쓸며 높은 기술력을 자랑했다. 유럽의 각종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휩쓸었고 기술력은 점차 발전해 항공 사업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하지만 1947년 에토레가 사망한 후 회사는 점점 내리막을 걷게 된다. 이리저리 인수되면서 정체성을 잃어갔고 사람들은 더 이상 부가티에 열광하지 않았다.
그러던 1998년 폭스바겐은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과 경쟁할 고급차 브랜드가 필요했고 부가티를 부활시킨다. 폭스바겐은 처음 계획과 달리 많은 시도를 감행했고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고성능 슈퍼카 브랜드로 부가티를 우뚝 세운다.
◆ 최상위 슈퍼카 베이론, 심장크기부터 남달라
부가티 베이론은 2005년 모습을 드러냈다. 1930년대 부가티의 전설적인 카레이서인 피에르-베이론(Pierre Veyron)의 이름을 물려받았다.
베이론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엔진이다. 요즘은 슈퍼카 제조사마저 터보 차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도입하며 다운사이징을 하고 있는데 부가티는 여전히 W16 터보 엔진을 고집하고 있다.

8.0리터 W16 엔진은 2개의 4.0리터 V8 트윈터보 엔진을 하나로 합친 것이다. 그래서 16개의 실린더와 4개의 터보차저가 적용됐다. 이 거대한 엔진은 최고출력 1001마력(ps), 최대토크 127.5kg·m의 성능을 발휘한다. 웬만한 스포츠카보다 출력이 2배 이상 높다. 이 엔진은 5년여의 연구기간을 거쳐 탄생됐다.

이 엔진은 폭스바겐 잘츠기터 엔진 공장에서 8명의 숙련공이 작업한다. 엔진 하나를 완성하는데 꼬박 일주일이 걸리며 엔진의 대부분은 티타늄과 알루미늄으로 이뤄졌다. 3500개 이상의 부품이 사용되며 수작업으로 조립된다.

◆ 부가티의 특명, “시속 400km를 넘어라”
베이론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슈퍼 스포츠카가 되기 위해 속도의 한계를 넘어야 했다. 부가티는 단순히 빠른 차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여야 했다. 그래서 아직 누구도 가보지 못한 시속 400km에 도전하게 된다.

1001마력의 강력한 성능을 발휘하는 엔진은 준비됐지만 이를 감당할 만한 변속기는 흔치 않다. 베이론엔 7단 듀얼클러치가 적용됐고 영국의 변속기 제조사 리카르도와 함께 제작했다. 0.15초 만에 변속이 가능하기 때문에 빠른 가속성능을 얻을 수 있다. 또 자동 변속 통제 시스템은 운전자의 주행습관을 주기적으로 분석해 그에 따라 자동으로 변속한다.

베이론의 최고속도는 시속 407km,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2.5초에 불과하다. 시속 200km까진 7.3초, 시속 300km까진 16.7초가 걸린다.
또 정지 상태에서 400m까지는 9.9초가 걸린다. 100m를 2.5초에 통과한다는 계산이다. 800m까지는 16.4초, 1600m까지는 25.9초가 걸린다.

현재 부가티 베이론 중에서 가장 높은 성능을 발휘하는 모델인 베이론 슈퍼 스포츠의 경우 최고출력 1200마력의 성능으로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2.2초다. 최고속도는 시속 431km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로 기네스북에 등재돼있다.

◆ 한겹 한겹 쌓은 수제 타이어…가격은 무려 1800만원
부가티 엔지니어들은 베이론을 제작하며 여러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타이어 문제는 심각했다. 타이어는 부가티가 직접 개발에 나설 수 없는 영역이며 타이어 업체 또한 시속 400km를 견딜 수 있는 양산형 타이어를 만들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부가티에는 미쉐린에서 개발한 전용 타이어가 장착된다. 일반 승용차의 타이어는 기계를 통해 30초에 한개 꼴로 찍혀 나오지만 베이론의 타이어는 제작에 최소한 1시간 이상 소요된다. 여기도 항공기술이 적용되며 시속 450km 정도까지 견딜 수 있게 제작됐다.

타이어의 크기는 일반 승용차의 2배 가량된다. 뒷바퀴의 폭은 무려 365mm에 달한다. 베이론의 타이어는 주행거리 9600km마다 갈아줘야하고 그 가격은 1만7000달러(약 1800만원)에 달한다.
시속 400km로 달릴 경우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최고속으로 주행하면 15분만에 타이어를 교체해야 한다. 하지만 그전에 연료가 먼저 소진되니 터질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다만 주유 할 때마다 1800만원짜리 타이어를 교체해야 하는게 '함정'이랄까.
◆ 부가티, 더욱 완벽한 베이론을 준비 중
부가티는 고객들의 요청에 따라 2009년에는 오픈카 ‘그랜드 스포츠’를 내놓았고 2010년에는 가장 빠른 베이론인 ‘슈퍼 스포츠’를 출시했다. 베이론 슈퍼 스포츠의 최고출력은 1200마력(ps)이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은 2.2초, 최고속도는 시속 431km다.

베이론은 수십억을 호가하는 차량인 만큼 하나하나가 모두 특별 에디션이다. 외관의 소재나 색상, 실내 가죽 소재나 장식 등은 고객이 원하는 모든 것으로 변경이 가능하다. 심지어 외관에 도자기의 ‘포셀린’ 성분을 넣어 제작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가격은 모델마다 천차만별이다.

페라리, 람보르기니의 최고급 모델도 베이론 앞에서는 겸손해질 뿐이다. 베이론은 가격, 성능 등 모든 면에서 여느 슈퍼카와 차별화됐다. 전세계에서 연간 판매되는 베이론은 50대 정도지만 그 존재감은 누구도 대적할 수 없을 정도다. 생태계에서도 가장 상위 포식자는 그 수가 적은 법이고 그래서 더 빛이 난다.
하지만 갑자기 베이론을 구입하고 싶어졌더라도 새차를 구입할 수는 없겠다. 이미 생산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부가티는 이르면 올해안에 베이론을 대체할 새로운 슈퍼카를 선보인다고 밝혔다. 자세한 사양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동안 단점으로 지적받던 무거운 차체를 개선해 더욱 빠르고 민첩한 차를 내놓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