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칼럼에서 12월 초까지 쉽게 드라이버 라인업을 결정 발표하지 못하는 맥라렌이 젠슨 버튼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우려했던 대로 그 칼럼을 작성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맥라렌이 드라이버 라인업을 발표했다. 다행히(?) 맥라렌은 젠슨 버튼을 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고, 페르난도 알론소가 버튼의 팀메이트로 맥라렌에 재 합류했다.
문제는 맥라렌의 총애를 받으며 성장해 2014시즌 당당히 F1에 입성한 유망주이자 기대주, 케빈 마그누센이 시트를 잃었다는 점이다. 한 팀에 주어진 시트가 두 개 밖에 없는 현실에서 누군가는 시트를 떠나야 했으니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겠지만, 버튼이나 알론소보다 마그누센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상당히 가슴 아픈 뉴스였을 수도 있다. 마그누센은 일단 스토펠 반도어네와 함께 맥라렌의 테스트/리저브 드라이버 자리에서 2015시즌을 맞이하게 됐다.
맥라렌이 깊은 고민 끝에 현재로서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정을 내리면서 리저브 드라이버로 밀려난 케빈 마그누센이 시트를 잃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부터 하나 하나 따져 보도록 하자.

맥라렌-혼다는 즉시 전력이 필요하다.
맥라렌은 2013시즌과 2014시즌 2년 연속으로 5위에 그쳤다. 1970년대말 긴 슬럼프에 빠졌던 시절을 제외하면 2년의 성적을 종합했을 때 최악의 성적을 거둔 셈이다. 최근의 부진과 비교되는 1970년대말의 맥라렌의 부진은 혁명에 가까운 팀의 쇄신으로 이어졌고, 공교롭게도 당시 새로 팀을 장악한 사람이 바로 현재 대제국으로 성장한 맥라렌을 이끄는 론데니스였다.
론 데니스는 성적으로 얘기할 수 밖에 없는 F1이라는 무대에서 팀의 부진이 길어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리고 맥라렌은 챔피언 경쟁에서 멀어진 지난 몇 년의 부진을 씻기 위해 메르세데스와의 20년 관계를 청산하는 상황이다. 맥라렌-혼다의 부활은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도전이자 도박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실한 드라이버 카드가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메르세데스 파워 유닛이 페라리나 르노 파워 유닛 등과 비교해 월등한 성능을 발휘하고 있고, 이 흐름이 2015년에도 어느 정도는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혼다 파워 유닛이 단번에 최강자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이미 지난 포스트 시즌 테스트에서 처음 선보인 맥라렌-혼다가 단 한 랩의 플라잉 랩도 완료하지 못하면서 많은 문제가 확인된 것처럼, 2015시즌 시작을 앞두고, 혹은 시즌 중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이런 모든 점을 종합한다면 맥라렌의 선택은 당연해 보인다. F1에서만 10년이 넘는 경력을 가진, 게다가 챔피언 타이틀까지 차지했던 최고 수준의 드라이버 두 명과 비교해 마그누센이 낙점될 만한 이유는 많지 않다. 유망주로서 성장에 대한 기대가 높다고 하더라도 당장 험준한 시험의 난관을 극복해야 하는 맥라렌-혼다가 2년차 드라이버에게 모든 것을 거는 것은 무리다. 과도기로서의 2014시즌에는 마그누센에게 기회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새로운 시대의 첫 발을 내딛는 2015시즌에는 즉시 전력감이 될 수 있는 드라이버가 필요하다.

마그누센의 2014시즌이 남긴 교훈
물론 마그누센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마그누센의 F1 데뷔 시즌이었던 2014시즌이 다르게 흘러갔다면 맥라렌은 버튼 대신 마그누센을 선택하는 모험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마그누센의 2014시즌은 실망스럽다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었다. 특히, 루키에게 당장 기대하는 것이 실적보다 발전하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그랬다.
마그누센의 F1 데뷔는 화려하기 그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그누센에 대한 평가는 점점 나빠졌다. 첫 번째 이유는 퀄리파잉에 비해 레이스에서의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그누센이 스타팅 그리드보다 높은 순위에서 레이스를 마친 것은 여섯 번뿐이지만, 순위가 더 내려간 경우는 12차례나 됐다. 같은 차로 레이스를 펼친 버튼이 열 차례나 스타팅 그리드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는 동안, 단 다섯 차례만 순위가 내려간 것과 비교된다.
마그누센의 2014시즌 기록에서 심각한 문제로 지목되는 두 번째 이유는 팀메이트에 비해 성적이 나빴다는 점이다. 퀄리파잉에서는 버튼에게 크게 뒤지지 않았지만, 레이스 결과 버튼보다 높은 순위로 끝난 그랑프리는 단 네 차례뿐이다. 성적으로 얘기해야 하는 F1 드라이버에게 어떤 이유로든 팀메이트보다 결과가 나쁜 것은 비판 받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퀄리파잉에 비해 레이스 성적이 나빴다는 점이나, 팀메이트와 비교해 심각한 열세를 보인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마그누센의 성적이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나빠졌다는 점이다. 마그누센의 전반기 평균 순위는 9위였지만, 후반기에는 9.9위로 떨어졌다. 시즌 중반 이후 맥라렌의 업데이트가 성공적이었고 팀메이트 버튼의 평균 순위가 전반기 8.3위에서 후반기 6.3위까지 치솟은 것을 생각하면 마그누센의 성적에 문제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F1에 데뷔한 루키에게 기대하는 것은 당장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아니다. 시작이 좋지 않더라도 시간이 경과할수록 성장하면서 속도와 함께 성적이 조금씩 향상되는 것이 ‘유망주’들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데뷔 초기 성적이 좋다가 점차 성적이 나빠지는 것은 한마디로 최악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2014시즌 기록으로 나타난 것만 보아도 마그누센에게는 분명한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기록만으로는 잘 나타나지 않은 레이스에서의 상황들에 대해 재미있는 분석이 있다. 바로 너무 생각이 많아지면서 마그누센의 퍼포먼스가 떨어졌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마그누센은 시즌 초반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사건 사고에 휘말렸다. 일부 사고들은 마그누센의 책임이 아니었고, 또 어떤 경우에는 페널티가 부여됐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책임이건 아니건 사고가 발생하면 레이스를 정상적으로 끌고 가기 힘들고, 결과적으로 수백 명의 팀원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된다는 점이다. 시즌 중반 이후 마그누센이 사건 사고에 휘말리는 일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지만, 동시에 시즌 초반의 놀라운 스피드가 점차 퇴색되기 시작했다.
시즌 중반 이후 마그누센의 퍼포먼스가 떨어진 것에 대해 생각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앞서 정리했던 기록을 통한 분석과 달리 근거를 제시하고 증명하기 어렵다. 그저 대부분의 모터스포츠에서 생각이 너무 많아지면 퍼포먼스가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는 일반적인 이야기 이상의 근거는 없다. 하지만 반대로 모터스포츠를 조금 아는 사람들이라면 여러 가지 신경을 쓰는 드라이버들이 최상위 카테고리에서 버텨내기 어렵다는 느낌도 알고 있다.
2009시즌 갑작스레 F1에 데뷔한 로망 그로장 역시 데뷔 직후 르노에서 여러 가지 사건 사고를 겪었다. 특히 두 번째 경기였던 벨기에 그랑프리에서는 오 루즈에서 디펜딩 챔피언 해밀튼과 유력한 2009 챔피언 후보 버튼을 한 번에 리타이어시킨 복합 사고의 원인제공자중 한 명이었다. 결국 그로장은 일곱 차례의 그랑프리에서 단 1 포인트도 획득하지 못한 채 하위 카테고리로 돌아갔고, 심기일전해 다시 F1 무대를 밟기까지 두 시즌을 더 보내야 했다.
마그누센의 경우도 그로장과 비슷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하위 카테고리에서 재능을 인정받으며 충분한 성적과 경력도 쌓았고, F1에 적응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았지만 의외로 많은 사건 사고가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그로장과 마찬가지로 마그누센 역시 데뷔 시즌을 뒤로 하고 다시 F1 시트를 잃었다. 1, 2년의 공백을 거쳐 마그누센이 다시 F1 무대에 복귀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다시 돌아올 때 너무 생각이 많아서는 될 일도 안될지 모른다.

케빈은 스물 두 살
케빈 마그누센에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나이가 젊고 앞날이 창창하다는 점이다. 이제 겨우 22세에 불과한 마그누센은 한 시즌 공백을 가지고 2016시즌 복귀한다면 여전히 23세로 매우 어린 드라이버에 속한다. 최근 너무 어린 드라이버의 데뷔가 잦다 보니 보는 이들의 각각이 무뎌졌을 뿐, 여전히 F1 무대에서 20대 초반은 충분히 어린 나이다. 적어도 지금 당장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우는 것이 지상 목표가 아니라면 과하게 서두를 이유는 없다.
2015시즌은 마그누센이 지난 시즌의 문제점을 돌아보며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위 카테고리에서 수 년 간 출전만 하면 포디엄에 오르던 무적의 마그누센이(사실 F1 2014시즌 개막전 호주 그랑프리 때는 그 분위기가 F1에서도 이어지는 게 아닌가 했다. ) F1에서 처음으로 거대한 벽에 부딪힌 이유를 다음 시즌 발견할지도 모른다. 리저브 드라이버로 팀을 따라다니면서 관찰자의 입장에서 퀄리파잉과 레이스가 한 시즌 동안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는 것은 좋은 학습 프로그램이라고도 볼 수 있다.
특히 2015시즌 맥라렌의 라인업이 알론소와 버튼이라는 것은 마그누센에게 꼭 마이너스 요소인 것만은 아니다. 한 시즌 동안 F1을 대표하는, 챔피언 출신의 드라이버 두 명의 그랑프리 주말을 모두 관찰할 수 있는 만큼 배울 것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마그누센보다 열 살 이상 많은 두 드라이버는 언제 맥라렌을 떠나거나 F1을 은퇴할지 모른다. 앞날이 창창한 마그누센에겐 젊은 신예 드라이버가 맥라렌의 시트를 차지한 것보다는 백 번 나은 상황인 셈이다.
마그누센이 이 기회를 살릴 수 있을지 없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결국 본인에게 달린 문제다.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들을 잘 해결해낸다면 마그누센은 다시 F1 시트를 차지하고 2014시즌 초반의 화려한 모습 이상의 활약을 펼칠지도 모른다. 반대로 드라이빙 역량이 쇠퇴한다면 두 번 다시 F1 시트에 오를 기회를 얻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찾아올 수도 있다.
좋건 싫건 케빈 마그누센은 2015시즌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F1 그랑프리의 퀄리파잉과 레이스에 나서지 못한다. 많은 팬들을 끌어 모았지만 2014시즌의 마그누센에게는 아쉬운 점이 많았고, 맥라렌은 극도로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내일 일도 장담할 수 없는 F1에서 1년이 더 지난 뒤 마그누센의 입지를 얘기하는 것도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 마그누센이 알론소와 버튼이라는 두 명의 빼어난 드라이버를 최소한 시즌 동안 바로 옆에서 관찰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과 젊은 마그누센이 1, 2년의 공백으로 실력이 크게 떨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점 정도다. 하위 카테고리에서 군계일학의 빼어난 재능을 선보였고 F1에서도 데뷔 경기부터 포디엄에 오르며 주목 받았던 마그누센이, 리저브 드라이버 생활에서 와신상담해 최고의 F1 드라이버로 부활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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