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2014시즌을 빛낸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었던 발테리 보타스는 2015시즌 첫 레이스에 출전하지 못했다. 퀄리파잉을 펼치던 도중 통증을 느꼈고, 의료진의 진찰을 통해 부상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보타스의 부상은 일상 생활은 물론 어느 정도의 운동을 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는 수준이었지만, F1 레이스카를 모는 것은 불가능했다. F1 레이스카의 드라이버는 ‘그저 조금 빠른 차를 운전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
피트니스를 ‘어떤 임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한 (육체적인) 상태’로 정의했을 때 F1은 드라이버의 피트니스가 무엇보다 중요한 스포츠 중 하나다. 보타스는 부상에 의해 피트니스가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앨버트 파크에서 레이스를 펼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호주 그랑프리 레이스에 참가하지 못했던 알론소와 함께 보타스는 메디컬 테스트를 통해 말레이지아 그랑프리 출전에 걸맞은 ‘피트니스’가 갖춰졌는지 점검하고 FIA로부터 참가 자격을 확인 받아야 한다.

F1은 가혹한 스포츠다
드라이버들에게 피트니스가 강조될 뿐 아니라 (부상 등의 이유로) 몸 상태가 일정 수준 이하일 경우 그랑프리 참가가 허용되지 않는 것은, F1이 육체적으로 매우 가혹한 스포츠기 때문이다. 물론 모터스포츠를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시트에 앉아 스티어링 휠을 돌리고 약간의 발놀림을 하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드라이버에게 가해지는 육체적인 부담과 ‘운동’이 쉽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팬이라면 충분히 알고 있을 내용이지만 F1 레이스카를 정상적으로 조종하기 위해서는 피트니스라는 말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강인한 육체가 필요하다. 최대 160kg에 이르는 힘으로 브레이크를 밟고 10kg이 넘는 아령을 몇 십 분씩 들고 있는 것처럼 스티어링 휠을 돌린다. 드라이버의 목은 코너를 공략할 때 좌우로 넘어가는 머리를 지탱하며 40kg에 달하는 무게를 견딘다. 2시간의 레이스를 마치고 많은 경우 3kg까지 몸무게가 빠지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 질만한 힘든 운동이라 얘기다.
물론 단지 힘만 잘 쓰면 되는 게 아니다. 스티어링 휠을 좌우로 돌리면 그만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체와 팔이 강하면서도 섬세해야 한다. 차량의 자세를 느끼고 바로 반응하기 위해 균형 감각은 극도로 뛰어나야 한다. 힘을 쓰기 위해 벌크업을 할 수도 없다. 몸무게가 곧 핸디캡이기 때문에 체조 선수에 준하는 수준으로 체지방을 줄여 몸무게를 최소화해야 한다. F1도 스포츠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스포츠 중에도 이만큼 육체적으로 가혹한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를 물어야 할 정도다.

완전하지 않다면 탈 수 없다
F1 레이스카의 드라이버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완전한 몸 상태가 필요하다. 몸이 완벽하지 않다면 정교한 드라이빙을 할 수 없고, 정교한 조작을 하지 못한다면 사고 발생 가능성은 크게 높아진다. 내 몸을 완벽하게 만들었느냐의 여부가 다른 드라이버의 생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라도 완전한 몸 상태는 필수적이다.
지난 바르셀로나 테스트 4일차에 사고를 당해 뇌진탕 증세가 있었던 알론소는 육체적인 몸 상태에 아무 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호주 그랑프리에 불참했다. 또 다른 충격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페레즈도 2011시즌 모나코에서의 사고 충격으로 캐나다 그랑프리에 결장한 기록이 있다. 물론 또 다른 사고가 재차 충격을 가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F1 레이스카를 조종하는 것 자체로 몸이 받는 충격도 무시하기 힘들다.
메르세데스의 로스버그는 올 시즌 개막을 앞둔 첫 프리시즌 테스트에서 목에 부상을 당했다. 헤레즈에서 시트 피팅에 작은 문제가 있었고, 미세한 문제는 오랜 시간 레이스카의 콕핏에 앉아있던 로스버그의 목에 충격을 누적시켜 큰 문제를 일으킬 뻔 했다. 윌리암스에서 부인하긴 했지만 호주 그랑프리에서 부상을 당한 보타스의 피팅에도 문제가 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오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결국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으면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작은 충격은 몸 상태에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F1 레이스카는 드라이버의 안락함을 추구한 차가 아니고, 사고가 아니더라도 급감속, 빠른 코너 공략 등에서는 드라이버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그대로 전달한다. 그 와중에 많은 힘을 쓰면서 동시에 정교한 드라이빙을 지속해야 하는 드라이버에게는 육체적 부담 못지 않게 정신적 부담이 더해질 수 밖에 없다. 정신적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육체적인 상태가 더 좋아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드라이버의 첫번째 과제는 피트니스다
이와 같은 가혹한 환경에 나서기 위해 F1 드라이버들에게는 잔인하게까지 느껴지는 피트니스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모든 모터스포츠에서 육제척인 준비가 필요하지만, 오픈 휠레이스에서는 그 부담이 훨씬 크다. F1은 모든 오플 휠 레이스 중에서도 가장 면밀한 육체적 준비가 필요한 스포츠다. 때문에 드라이버들은 전담 피지오와 함께 자신의 피트니스에 집중하고, 팀에서도 드라이버의 몸 상태 관리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F1 드라이버 역시 아무리 힘들고 고되더라도 자신의 1순위 과제를 피트니스에 놓고 몸 만들기에 열중한다. 다른 모든 운동 선수와 마찬가지로 힘을 기르는 것 못지 않게 몸의 균형을 맞추는데도 열중한다. 시즌 중은 물론이고 오프 시즌도 마찬가지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긴다는 생각인지 많은 드라이버가 운동을 취미로 삼아 경기가 없는 주말 싸이클이나 철인 3종 경기 등을 즐기기도(?) 한다.
F1 드라이버의 피트니스를 위해서는 식사 조절도 중요하다. 올 시즌에는 시트를 차지하지 못했지만 지난해까지 세 시즌 활약한 장-에릭 베뉴가 퀄리파잉 성적이 좋았던 덕분에 초코바 하나를 먹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뛸 듯이 기뻐했다는 일화가 많은 것을 알려준다.
실제로 낮은 체지방률을 만드는 동시에 체중도 줄이기 위해(하지만 힘을 잃어서는 안된다! ) 드라이버의 식단은 철저하게 통제된다. 쉬는 날에도, 오프 시즌에도 예외는 없다. 한 번 몸 상태가 틀어져버리면 되돌리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드라이버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옛날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F1 드라이버가 나오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돈 문제도 아니고 드라이빙 스킬도 아닌 드라이버의 몸 관리가 안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과장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꼭 틀린 얘기도 아니다. 국내에는 전문적으로 ‘드라이버의 피트니스’를 책임지고 관리할 사람도 없고 노하우도 없다.
물론 꼭 기술적으로 대단한 기반이 없다고 해서 드라이버 피트니스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마인드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사소한 몸 관리, 식단 관리, 생활 습관 등이 드라이버로서의 능력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모터’스포츠’ 선수에 대한 인식이 우리나라에 정착되지 않았다. 좋든 싫든 길거리에서 오른발만 쭉 뻗으면 내가 세계에서 제일 빠를 것이라는 운전자들의 착각에서 벗어나 ‘운동 선수’로서의 자각을 한 드라이버만이 피트니스에 나설 동기를 얻을 것이다.
여성 드라이버로서는 거의 25년만에 F1 시트에 근접하고 있는 수지 울프는 SNS를 통해 자신의 피트니스 과정을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있다. F1 드라이버가 되는 길이 이렇게 고되다는 것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알리는 동시에, 패독을 장악한 남성들에게 최소한 육체적으로는 자신도 충분히 준비가 돼 있음을 알리고 있다. 모든 F1 드라이버들이 해야 되고 하고 있는 일이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아 ‘스포츠가 아니라’는 말까지 듣는 상황에서, 정규 드라이버 시트를 영영 차지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수지 울프가 대신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수지 울프가 피트니스 과정과 끊임없이 노력하며 자신의 몸을 만드는 과정은 F1 드라이버를 꿈꾸는 이들에게, 혹은 F1 팬들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다. 꿈이 있는 한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기 위해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재능과 주변의 상황도 중요하지만 끊임 없이 몸을 만드는 노력이 없다면 모터’스포츠’의 정점인 F1에서의 경쟁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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