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F1은 마루시아와 케이터햄의 붕괴로 드러난 중소형 팀들의 심각한 위기로 분위기가 좋지 않다. 자우버, 포스인디아, 로터스의 재정 상태도 꽤 좋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2015시즌 그리드에 과연 몇 대의 차량이 서게 될지, 정말로 써드 카, 즉 한 팀 당 세 대의 차량이 투입될지 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열쇠를 쥔 사람은 F1의 절대권력자인 버니 에클스톤이다.
그러나 최근 인터뷰에서 버니의 한 마디는 비앙키의 사고 이후 안 그래도 민감해진 F1 팬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버니는 ‘구매력이 없는 젊은 관객/팬들은 필요 없다’는 말로 수많은 이들을 적으로 돌렸다. 페라리, 맥라렌, 로터스 등 각 F1 팀들은 SNS 채널을 총동원해 자신들에게 젊은 팬들이 꼭 필요하고 버니와는 생각이 다르다는 메시지를 전하기에 바빴다. F1 최고권력자의 한 마디에 힘 없는 F1 팀들이 피해를 보는 꼴이었다.
버니 에클스톤의 얘기는 얼핏 들으면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 F1은 젊은 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F1 팬의 대다수는 ‘젊은 팬’이다
버니가 이야기한 젊은 관객, 젊은 팬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구매력이 없는’ 어린 팬들을 지칭하고 있다. 당장 돈이 되는 일에 치중할 수 밖에 없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의견인 듯 하다. 하지만 정말 구매력이 없는 어린 팬들은 F1의 ‘사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걸까?
당장 근시안적으로 본다면 17살 고등학생이 수백 만원을 들여 패독 패스를 사고, 평범한 티셔츠 한 장에 십만 원 이상이 드는 공식 머천다이즈 상품을 잔뜩 사들일 가능성은 많지 않다. 버니가 얘기한 것처럼 어린 팬이 F1 경기를 관람하며 스폰서인 롤렉스의 시계를 사게 될 가능성은 더더욱 낮다. 돈이 넘치는 집안에서 태어난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젊은 팬들은 구매력이 부족하다. 그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자신들의 상품이 아무리 비싸고 당장 젊은이가 구입하기 어렵다고 해서 젊은 팬들을 무시하지 않는다. 어린 나이부터 관심을 가진 사람이 나이가 들어 고객이 될 수도 있다. 팬덤이 만들어지고 대중에게 구매욕을 키울 수 있다면 상품의 가치, 나아가서 가격을 높이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이들이 절대 구입할 수 없는 비싼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들이 구매력이 없는 젊은, 어린 예비 고객들을 관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페라리를 구입할 수는 없어도 ‘페라리 한 대쯤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날 수록 페라리는 더욱 고급스런 고성능 차량을 만들어 비싸게 팔 수 있다.
F1도 마찬가지다. F1 팬들이 당장 롤렉스 시계를 구입하지 않더라도, 당장 UBS에 돈을 예치하지 않더라도 이들이 언젠가는 예비 고객이 되거나 고객이 될 주변의 부유한 사람에게 영향력을 주리란 예상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메르세데스 AMG의 세이프티카와 로고를 계속 바라보면서 SLS는 구입하지 못해도 메르세데스-벤츠 한 대는 구입하고 싶은 이들도 생길 것이다. F1 팬은 여전히 그 수가 매우 많고, 많은 F1 팬 중 절대 다수는 젊은 팬들인 만큼, 예비 고객이 장차 고객으로 발전할 확률은 매우 높다.

젊은 팬들의 구매력도 무시할 수 없다
장래에 고객이 될 수 있는 예비 고객의 의미로도 젊은 팬은 소중하지만, 당장 F1 그랑프리를 보기 위해 서킷을 찾은 젊은 팬들이라면 그들의 구매력도 무시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서킷 주변에 마련된 F1 머천다이즈샵에서는 굉장히 비싼 가격에 상품을 파는 경우가 많지만, 상당수의 제품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아무리 젊은 팬이라고 하더라도 보통 2박 3일에서 4박 5일의 시간을 내고, 200만원 가까운 예산을 들여 서킷을 찾는 이들이라면 비싸다는 머천다이즈 상품의 가격도 넘지 못할 장벽은 아니다. 그리고 ‘팬’이라면 그 정도 투자는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인터넷에서 수십만 원에 달하는 재킷도 불티나게 팔린다. 당장 그렇게 비싼 상품들이 팔리고 있는데 구매력이 부족하다고 얘기한다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밖에는 평가할 수 없다.
사실 2010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F1 그랑프리가 개최될 때만 해도 그랜드스탠드에 F1 팀웨어를 입은 사람은 찾기 힘들었고, 머천다이즈샵은 토요일까지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단 네 차례 그랑프리를 치르는 동안 상황은 180도 바뀌었고, 그랜드스탠드엔 형형색색 F1 팀웨어와 응원 도구가 넘쳐나고, 머천다이즈샵은 인파로 가득했다. 스포츠 상품구매에 인색하고 모터스포츠가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갈 길이 멀다는 우리나라의 사정이 이 정도라면 F1이 조금이라도 흥한다는 나라의 상황은 말할 필요도 없다.

위기 탈출은 멀리 보는 데서부터
문제의 중심에 있는 버니의 발언은 최근 F1의 위기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거나, 너무 근시안적인 시야를 갖고 있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당장 1, 2년 내에 팔릴 물건만 생각하고 장기적인 회사의 이미지 구축 계획 따위는 생각지도 못하는 기업은 결코 오래 살아 남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F1 역시 단기적인 미래의 수익에 대해 주판을 두드리는 것만으로는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F1은 108년의 역사를 가진 그랑프리 레이싱의 적자로 그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렇게 구축된 이미지는 ‘지키기는 어렵지만, 잃는 것은 순간’일 수도 있다. 때문에 먼 미래 F1을 지켜 줄 팬들을 미리 확보하고 그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F1과 각 팀, 드라이버의 스폰서를 자처하는 회사들 역시 단기적으로 돈 몇 푼을 더 만지기 위해 그 비싼 스폰서쉽 비용을 쓰는 것이 아니다. F1 그랑프리를 개최하는 도시들도 몇 년 내에 무슨 거대한 경제 효과를 기대하고 이 비싼 이벤트를 유치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 수십 년 뒤를 바라보고 지금은 큰 적자가 나더라도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투자의 대상은 ‘젊은 팬들’이다. 멀리보고 계획을 수립하고, 미래에 보다 안정적인 모습을 갖기 위한다면 젊은 팬들에게 돈을 뜯어낼 궁리보다, 젊은 팬들을 위해 하나라도 더 베풀어주고 돈을 소비할 생각을 해야 한다.

이번엔 버니가 잘못했네
F1 수프리모 버니 에클스톤이 없었다면 현재의 F1이 이렇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가 시장을 키웠고, 그가 여러 팀들을 살렸고, 그가 이 스포츠의 인기를 끌어올리는데 큰 도움을 줬다. 하지만 F1의 성공에 버니가 큰 역할을 했다고 그가 혼자 이모든 것을 이뤄낸 것은 아니다. 공이 많다고 해서 버니의 뜻이 모두 다 옳았다는 뜻은 아니다.
공과 과는 분명히 해야 한다. 이제 80을 넘어 90을 바라보는 고령의 버니도 책임을 져야 될 부분이 있고 문제를 인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 최근 ‘F1의 위기? 무슨 위기?’라는 발언을 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상황 판단에 대해서도 지적을 받아야 한다. 그가 다 잘못 생각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최근 점차 잘못 생각하는 부분이 늘어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버니 에클스톤의 젊은 팬과 관객들을 무시한 발언은 어떻게 보든 잘못된 발언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CVC 캐피털에 대한 F1 매각 과정의 뇌물 문제 이상으로 잘못한 말인지도 모른다. F1의 위기에 대한 그의 대처는 당장 방향을 바꿔야 한다. 버니는 자신이 죽지 않는 한 F1의 수프리모라는 위치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다는 뜻을 비췄지만, 다른 F1의 영향력 있는 이들은 40 여 년 만에 버니 없는 F1을 준비해야 할지 모른다.
다른 일은 몰라도 이번엔 버니가 잘못했다. F1은 버니의 뜻과 달리 이제 젊은 팬과 젊은 일꾼들의 무대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