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이 내린다.
함박눈이 내린다.
서해바다에 눈이 내린다.
목선들이 몸을 맞댄 채 삐거덕거리는 대천항에 눈이 내린다.
싱싱한 고기를 들어 보이며 고래고래 소리치는
수산시장 아줌마 얼굴에도 뽀송뽀송한 눈송이가 내린다.

눈이 내린다.
함박눈이 내린다.
텐트 지붕에 소곤소곤 사각사각 눈이 내린다.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눈이 내린다.
추억의 날개 때묻은 꽃다발**로 눈이 내린다.
세상이 가만가만 흰옷으로 갈아입고
순결한 그리움을 새록새록 지핀다.

시간은 조용히 저녁을 딛고 밤으로 간다.
밤은 오는지도 모르게 찾아와 앞산 솔숲에 서성거린다.
눈은 계속 내린다.
깃털처럼 가벼운 눈이 사뿐사뿐 내린다.
늦은 봄날 지는 벚꽃처럼
꿈결처럼 몽롱하게 내린다.

눈이 내린다.
쌓인 눈이 텐트 지붕을 미끄럼틀 삼아 쏜살같이 흘러내린다.
노란 나트륨등 아래
낙화하는 눈꽃송이의 행진은 끝이 없다,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아이처럼 눈을 맞고 싶다.
강아지처럼 깡충깡충 뛰면서
소복하게 쌓인 눈을 밟고 싶다.
뺨에 녹아드는 눈송이의 서늘한 기운을 느끼고 싶다.

눈이 내린다.
겨울밤은 소리 없이 깊어가고,
잉걸불처럼 빨간 와인 잔을 기울이다
적당히 취기가 오른
우리는 말이 없다.
겨울이 오는 소리에 마음 준 채
그 밤이 깊어지도록 내버려둔다.
밤새 눈이 내리던 그 밤
나는 추억으로 가는 막차를 탔다.
* 김광균 시인의 -雪夜- 중에서
** 김광균 시인의 -눈 오는 밤의 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