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으로부터 불을 훔쳐 인류에게 선사했던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의 자랑이라면 부자들로부터 재산을 훔쳐 민중에게 선사하려 했던 나 또한 민중의 자랑이다…….
김남주의 시 ‘나 자신을 노래한다’의 일부분이다. 이 시를 멋들어지게 낭독하던 대학선배가 있었다. 당시 그는 학업을 작파하고 노동운동에 투신해 비밀스럽게 살아가고 있던 터라 후배들 사이에서는 신비로운 존재로 인식됐다. 그의 목소리는 성우 뺨 칠 만큼 좋았다. 선배가 막걸리 한 잔 걸친 후 목청을 다듬어 그 시를 낭독하면 내 마음 속에서도 진한 울림이 일었다. 나는 그의 시 낭독을 들을 때마다 불의 뜨거움을 느꼈다.

어느 날, 그 선배가 교수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근에는 그가 아주 이른 나이에 학생처장이 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때 나는 세월을 느꼈다. 벌써 20년이다. 그도, 세상도 변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 세월 동안 그가 변했듯이, 그가 들려주던, 내 가슴을 뜨겁게 달구던 김남주 시 속의 ‘불’도 슬며시 사그라졌다.

내가 다시 불의 뜨거움을 느낀 것은 몇 해 전 가을 아침의 캠핑장에서였다. 밤부터 갑자기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나는 눈을 뜨자마자 모닥불을 지폈다. 장작에 불이 옮겨 붙자 따스함이 밀려왔다. 온몸이 사르르 녹았다.

그때였다. 다람쥐 한 마리가 나무에서 쪼르르 내려왔다. 녀석은 내 눈을 피해 한 걸음씩 화로를 향해 다가섰다. 나는 일부러 모른 체 했다. 어떻게 하나 두고 볼 참이었다. 녀석은 화로에 아주 가깝게 다가왔다. 이런 맹랑한 녀석 좀 보게. 본래 다람쥐는 겁쟁이다. 인기척만 나도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는다. 그런데 어쩌자고 사람이 버젓이 지키고 있는 화로를 찾는단 말인가.

어떻게 할까. 나는 곁눈질만 보낼 뿐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만약 내가 등을 돌린다면 녀석은 놀라서 달아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불을 쬐며 몸을 녹이려 했던 녀석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그래서는 안 될 일이다. 내가 양보하기로 했다. 나는 다리가 저려왔지만 녀석에게 등을 돌린 채 미동도 않고 앉아 있었다.
내가 모닥불을 다람쥐에게 양보한 채 주리를 틀고 있을 때였다. 텐트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 바람에 다람쥐가 화들짝 놀라 도망을 쳤다. 아들 녀석이 텐트 문을 열고 나왔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녀석이 바지춤을 부여잡고 말했다.
“아빠! 오줌.”
나는 아들 녀석과 벌써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두리번거리고 있는 다람쥐를 번갈아 바라봤다.

세상의 모든 것은 온기에 목말라 있다. 프로메테우스가 신에게서 훔쳐 인간에게 선사한 불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그 불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말하지 못했다. 누군가 불을 쬐고 싶어 망설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오직 ‘나’만 존재했다.

이제 온기를 나눌 때가 됐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선물한 그 불을 모두에게 나누어줄 때가 왔다. 적어도 캠핑장에서는 불 때문에 소외받는 자가 없어야 한다. 설령, 그것이 말조차 통하지 않는 미물일지라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