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환의 캠핑폐인] 내 따뜻한 이웃

[김산환의 캠핑폐인] 내 따뜻한 이웃

발행일 2011-07-12 16:35:17 김산환 칼럼리스트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휴양림 직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미천골 자연휴양림을 찾은 것은 전국에 호우주의보가 내린 날이었다. 온종일 비가 퍼부었다. 계곡물도 급하게 불어났다. 계곡물 흘러가는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굵은 빗줄기가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텐트 속에서는 빗방울 긋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직 급하게 쏟아져 내려가는 계곡물 소리만 귀청을 따갑게 했다.

휴양림 직원은 비가 더 내리면 다리가 잠길 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 며칠 동안 고립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고립되는 상황까지 맞아가며 캠핑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 떠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비를 맞으며 텐트를 걷을 일이 꿈만 같았다. 또 며칠쯤 책을 보며 쉬겠다는 생각으로 왔는데, 설령 다리가 물에 잠겨 며칠을 나갈 수 없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남겠다고 했다. 휴양림 직원은 마지막으로 식량은 충분한지 묻더니 내 휴대전화 번호를 확인한 후에 돌아섰다.

휴양림 직원이 돌아간 후 캠퍼들은 서둘러 철수를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큰 일이 날 것처럼 서두르는 것이 마치 텐트 빨리 걷기 대회를 벌이는 모습이었다. 한편으로는 비에 홀딱 젖어 텐트를 걷는 모습이 측은해 보이기도 했다. 그들을 뒤로 하고 다시 텐트 속으로 들어갔다. 라디오의 볼륨을 높이고 읽다만 책을 펴들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캠핑장이 궁금했다. 계곡물 흘러가는 소리가 워낙 컸기 때문에 텐트 안에 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텐트를 모두 걷었을까. 내심 궁금했다. 텐트 문을 조그맣게 열었다. 계곡을 따라 일렬로 쳐졌던 텐트는 모두 사라졌다. 그 새 모두 철수한 것이다. 다들 갔구나. 왠지 허전했다. 애초부터 혼자이던 것과 사람들로 왁자지껄하다 홀로 남겨지는 기분은 사뭇 다르다. 서운하기로 치자면 뒤의 경우가 몇 배 더하다.

아쉬운 마음에 캠핑장에 한 번 더 눈길을 주었다. 앗, 모두 떠난 게 아니었다. 처음 내가 바라봤던 곳의 반대편에 텐트 한 동이 남아 있었다. 누굴까. 아직까지 떠나지 않았다는 것은 그도 나갈 마음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텐트의 존재를 확인하자 조금은 안심이 됐다. 동지가 생긴 것이다. 사실, 귀가 멍멍할 정도로 들리는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약간의 겁을 먹었던 참이었다. 안전한 곳에 텐트를 쳤다고는 하지만 계속 불어나는 계곡물을 보면서 오늘 밤 넘길 일이 걱정됐다.

그 텐트의 주인은 혼자가 아니었다. 삼십대 후반의 남자와 아내, 그리고 두 딸까지 있었다. 장비는 초보티를 벗을 만큼 갖췄다. 폭우에도 견딜 수 있도록 견고하게 사이트도 구축했고, 텐트도 방수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는 왜 남았을까. 휴양림 직원의 경고를 무시한 채 이곳에 남기로 작정한 사내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는 또 가족과 함께 있지 않은가.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가장이라면 누구나 안전을 우선 고려한다. 그런데도 그는 모두가 철수한 캠핑장에 남기를 결심했다. 왜 그랬을까. 나의 궁금증은 점점 커져만 갔다.

사내를 만난 것은 취사장에서였다. 이른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도 설거지통을 들고 나타났다.

“이거 동지가 됐습니다.“
“그러게요. 저희 가족만 남은 줄 알았는데, 함께 계시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그렇게 말문을 트고 나서 우리는 저녁 준비도 미룬 채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동대문에서 옷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몇 년 전부터 캠핑에 맛이 들려 동호회도 가입하고, 장비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었다. 옷 장사는 하루도 쉴 수가 없다고 했다. 사람들이 대부분 밤에 쇼핑을 하기 때문에 새벽까지 장사를 하고 낮에는 잠을 자야만 했다. 주말도 예외는 아니라고 했다. 일주일에 꼬박 7일 장사를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평일을 이용해 쉬는데, 그 때는 밀린 잠을 자기에 바빴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낙이 여름휴가였다. 이 때 만큼은 일주일쯤 휴가를 내서 캠핑을 가기로 온 가족이 굳게 약속을 했다.

사내는 이번 캠핑이 여름휴가라고 했다. 사람들로 복닥거리는 성수기를 피해 일찍 휴가를 온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렵게 캠핑 사이트를 구축하자마자 떠나라고 하니 그럴 수가 없었다고 했다. 지금 철수를 하면 다시 텐트를 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사실이다. 텐트를 걷다보면 모든 것이 젖기 마련이다. 그렇게 젖은 장비를 이용해 다시 캠핑 사이트를 꾸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비는 앞으로 사흘 가량 더 내릴 예정이란 일기예보도 있었다. 그래서 사내는 남기로 결심했다. 설령, 다리가 떠내려가도 일 년을 별러왔던 캠핑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캠핑이 그리 좋으세요?”
“예. 좋습니다. 우리 아이들 좋아하는 거 보이시죠? 제가 아빠 노릇하는 것은 캠핑 왔을 때뿐입니다.”

나는 그의 캠핑 사랑에 따뜻한 미소를 얹어주고 텐트로 돌아왔다.
비는 여전히 억수같이 퍼부었다. 어찌나 많이 내리는지, 책을 읽으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불어난 계곡을 의식하고 있었다. 가끔씩 텐트 문을 열고 수위를 확인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캠핑장에 어둠이 찾아왔다. 빗줄기는 여전했다. 계곡 물은 더 불어나 있었다.
우산을 들고 계곡의 수위를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틈에 그가 곁에 와 섰다.

“괜찮겠지요?”
“그럼요. 제가 계곡 수위를 지켜보고 있는데,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죠? 저도 계속 수위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둘은 그런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격려했다. 분명 마음 한 구석에 일말의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지금은 격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의지할 것이라고는 서로에게 단 둘 뿐인 이웃이었다.

비는 밤새도록 내렸다. 애초부터 아늑한 잠은 멀었다. 계곡물소리가 워낙 컸기 때문에 깜빡 잠이 들었다가도 그 소리에 다시 잠이 깼다. 그렇게 깨다 자다를 반복하다 끝내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떴다. 텐트 밖이 훤했다. 다행히 밤새 안녕이었다. 텐트에 듣던 빗방울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텐트 문을 열었다. 자욱한 안개가 앞산에 걸쳐 있었다. 비 온 뒤라 초록이 더욱 짙었다. 그 안개를 밀치며 아침 해가 솟고 있었다.

내 텐트와 함께 캠핑장을 지킨 또 하나의 텐트 문도 열렸다. 사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나는 안개와 이제 막 솟아나고 있는 아침 해를 가리켰다. 사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룻밤 사이에 그와 나는 절친한 이웃이 돼 있었다.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300
센추리 쿠페 콘셉트 공개, 롤스로이스급 하이엔드 럭셔리

센추리 쿠페 콘셉트 공개, 롤스로이스급 하이엔드 럭셔리

토요타의 하이엔드 브랜드 센추리(Century)가 센추리 쿠페 콘셉트카를 공개했다. 29일 2025 재팬 모빌리티쇼를 통해 공개된 센추리 쿠페는 독립 브랜드로의 첫 번째 모델로, 2인승 구조의 럭셔리 전기차다. 센추리 브랜드는 롤스로이스, 벤틀리 등 하이엔드 럭셔리 브랜드와 경쟁하게 된다. 토요타 산하의 플래그십 모델, 센추리의 브랜드 독립을 공식화한건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 토요타 센추리는 1967년 첫 출시 이후 반세기 넘게 일본 최고급 관용차로

신차소식이한승 기자
혼다 전기차 0 α, 최초 공개..2027년 양산 계획

혼다 전기차 0 α, 최초 공개..2027년 양산 계획

혼다가 미래 전기차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혼다는 29일 2025 재팬 모빌리티쇼를 통해 글로벌 EV, 혼다 0 시리즈의 새로운 SUV 모델인 '혼다 0 α(알파)' 프로토타입을 공개했다. 혼다 0 α는 차세대 EV 프로토타입의 3번째 모델로, 1월 공개된 혼다 0 살룬과 혼다 0 SUV에 이어 선보였다. 혼다 0 α는 향후 2년내에 생산을 계획하고 있으며, 양산형 모델은 2027년 시장에 출시된다. 주력 시장은 일본과 인도로 예정됐다. 혼다는 0 시리즈의 개발 접근 방식인 "

신차소식이한승 기자
아이오닉9·스포티지, IIHS 안전평가서 최고등급 획득

아이오닉9·스포티지, IIHS 안전평가서 최고등급 획득

현대차그룹은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가 현지시각 28일 발표한 충돌 안전 평가에서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9과 기아 스포티지가 톱 세이프티 픽 플러스(TSP+, Top Safety Pick+) 등급을, 현대차 싼타크루즈가 톱 세이프티 픽(TSP, Top Safety Pick)’ 등급을 각각 획득했다고 밝혔다. 아이오닉 9은 전면 및 측면 충돌 평가와 전방 충돌방지 시스템 평가 등으로 구성된 모든 평가 항목에서 최고 등급인 훌륭함(Good)을 받았으며, 스포티지는 상품성 개선을 거치

업계소식이한승 기자
[시승기] 푸조 3008 GT, 실연비 20km/ℓ..이쁘고 경제적

[시승기] 푸조 3008 GT, 실연비 20km/ℓ..이쁘고 경제적

푸조 올 뉴 3008 GT 스마트 하이브리드를 시승했다. 신형 3008은 동급 경쟁차 중 가장 멋스러운 내외관 디자인과 8년전 이전 세대 모델과 동일한 가격에 풍부한 옵션을 제공하는 점이 주목된다. 특히 스마트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단순한 구조로도 실연비 20km/ℓ 전후를 기록해 인상적이다. 푸조 브랜드는 지난 7월 올 뉴 3008 스마트 하이브리드를 출시했다. 가격은 3008 알뤼르 4490만원(개소세 3.5%, 4425만1000원), 3008 GT 4990만원(개소세 3.5%, 4916만3000원)으로 8년전

수입차 시승기이한승 기자
지프, 그랜드 체로키 부분변경 공개..한국 출시는 2026년

지프, 그랜드 체로키 부분변경 공개..한국 출시는 2026년

지프 브랜드는 29일 부분변경 모델, 신형 그랜드 체로키를 공개했다. 2026 그랜드 체로키의 가장 큰 변화는 새롭게 적용된 '허리케인 4 터보(Hurricane 4 Turbo)' 엔진으로 양산차 최초의 터뷸런트 제트 점화 기술이 적용된 것이 특징이다. 한국 시장에는 2026년 출시될 예정이다. 2.0리터 허리케인 4 터보는 최신 글로벌 4기통 엔진으로, 동급 4기통은 물론, 6기통 엔진을 뛰어넘는 강력한 출력과 토크를 제공하며, 연비 향상과 배출가스 저감을 동시에 달성했다.

신차소식이한승 기자
현대차 일렉시오 출시, 722km 주행 중국 전략 전기차

현대차 일렉시오 출시, 722km 주행 중국 전략 전기차

현대자동차가 중국 소비자를 겨냥한 현지 전략형 전기 SUV 일렉시오를 중국에서 공개했다고 30일 밝혔다. 일렉시오는 깔끔한 실루엣과 절제된 비율로 구성된 대담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갖췄으며, 크리스탈 형태의 사각형 헤드램프가 특징이다. 현대차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바탕으로 고급스러운 승차감을 제공하고 뛰어난 내구성의 차체 구조로 안전성도 높였다. 또 88.1kWh 배터리를 탑재해 722km의 1회 충전시 주행 가능거리(CLTC 기준)를 달성

신차소식이한승 기자
르노코리아, 2025 코리아세일페스타..그랑 콜레오스 350만원 지원

르노코리아, 2025 코리아세일페스타..그랑 콜레오스 350만원 지원

르노코리아(대표 니콜라 파리)가 10월 29일부터 11월 16일까지 19일 간 진행되는 '2025 코리아세일페스타' 기간을 맞아 역대 최고 수준의 고객 혜택을 마련했다. 그랑 콜레오스 구매 고객에게는 특별지원금 30만원 혜택(단, 2025년 9월 생산분까지)과 60만원 상당의 옵션·액세서리 구매 지원이 함께 제공된다. 과거 르노코리아 차량을 한번이라도 신차로 구매한 이력이 있거나 현재 보유하고 있는 로열티 고객에게는 50만원을 추가로 제공한다. 또한 생산

업계소식이한승 기자
르노 필란테 혹은 오로라2, 매력적인 쿠페형 SUV

르노 필란테 혹은 오로라2, 매력적인 쿠페형 SUV

르노 차세대 준대형 SUV, 필란테(Filante, 프로젝트명 오로라2) 일부 디자인이 공개돼 주목된다. 중국 현지 매체에 게재된 필란테는 르노의 새로운 디자인 트렌드를 반영한 공격적인 외관이 특징으로, 커다란 차체와 대구경 휠은 BMW XM과 유사한 분위기다. 국내 출시는 2026년 상반기다. 르노 필란테는 D-세그먼트 모델인 그랑 콜레오스의 상위 모델로, E-세그먼트 준대형 쿠페형 SUV로 기획됐다. 그랑 콜레오스 대비 커진 차체와 휠베이스, 전방과 후방 오버행

신차소식이한승 기자
기아 PV5 카고, 693km 주행으로 기네스 기록 등재

기아 PV5 카고, 693km 주행으로 기네스 기록 등재

기아는 PV5 카고 모델이 최대 적재중량을 싣고 1회 충전 가장 긴 주행 거리인 693.38km를 달성한 전기 경상용차(eLCV, electric Light Commercial Vehicle)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됐다고 29일 밝혔다. 이번 기록은 71.2kWh 배터리의 PV5 카고 4도어에 665kg을 싣고 진행됐다. 이번 기록은 지난 9월 30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북부 공도에서 이뤄졌다. 주행 코스는 물류 및 배달 업무를 충분히 재현할 수 있도록 58.2km의 도심 및 외곽 도로와 고도 상승 구간을 반복 주행하는 방

업계소식이한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