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환의 캠핑폐인] 노을, 꿈꾸는 시간

[김산환의 캠핑폐인] 노을, 꿈꾸는 시간

발행일 2011-06-28 14:32:31 김산환 칼럼리스트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서편 하늘을 감색으로 물들이는 석양에 가슴까지 노을로 홀딱 젖는 이 때. 석양은 이제 하루를 마감할 시간이라고, 돌아가 휴식의 기쁨을 누리라고 넌지시 일러주고 바다 속으로 침몰한다. 그 석양을 보내며 사람들은 숙연해진다. 하루가 지나간 세월로 묻히는 시간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느낀다.

미국 서부 뉴멕시코의 사막 한가운데서 잠든 적이 있다. 한여름에는 기온이 50도에 육박하는 열사의 땅이다. 대지를 바싹 말려버리던 태양의 최후는 화려했다. 오렌지 빛으로 타오르는 석양은 핵폭발 뒤의 섬광처럼 강렬했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선인장도, 대지도, 바위도, 하늘도 온통 붉게 물들었다. 숨이 막혔다. 일찍이 이런 노을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공허했다. 무엇이 빠져 있는 느낌이었다. 그 황량한 사막에 인기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의 마을이 보이지 않았다. 사막은 그저 수평선처럼 아득했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내려앉는 공기는 주눅들만큼 무거웠다. 생명이 움트기 전, 40억 년 전의 지구에서 맞는 석양처럼 아득한 기분. 그날 사막에는 영혼이 미라처럼 말라버린 나 혼자 있었다.

태안의 바닷가 청포대. 이곳에서 지는 석양은 위협적이지 않다. 사막의 석양처럼 활활 타오르는 일도 드물다. 오늘처럼, 초등학교 앨범 속 사진처럼 빛이 바래 질 때가 많다. 때로 수평선에 닿지도 못한 채 사그라질 때도 있다. 그러나 청포대에서 보내는 석양은 따뜻하다. 인간적이다. 사람의 향기가 있다. 그곳에는 석양을 보내러 갯벌을 따라간 아이들이 있다. 오늘 하루 어부가 되어 갯벌을 헤집고 다니는 가족이 있다. 손을 놓으면 영영 이별할 것 같은 애틋한 연인이 있다. 뱃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어부가 있다. 등대처럼 하나둘씩 피어나는 섬마을의 불빛이 있다. 그곳에 우리가 사랑하는 노을이 있다.

제도권 교육의 우산을 쓰고 자란 나에게 그림이나 예술 같은 것은 참 먼 이야기였다, 지금도 비슷하겠지만 학창시절의 미술 수업은 ‘느낌’이나 ‘공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누가, 어떤 사조의 영향을 받아 그린 그림이란 것만 달달 외면 될 뿐이었다. 그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림에서 멀어지는 교육을 받았다. 그럼에도 명작은 존재했다. 그 작품에 대한 배경이나 화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해도 마음이 끌리는 그림이 있었다. 이를 테면 밀레의 ‘만종’이 그런 그림이다.

‘만종’은 관람자를 다독이는 힘이 있다. 뒤에서 가만히 어깨를 그러안아주는 위로가 있다. 그림 속에는 어떤 저항도 거부하는 차분한 평화가 흐른다. 이것을 마음의 안식이라 불러도 좋다. 석양이 세상을 감색으로 물들인 저녁, 고단한 하루 일과가 끝났음을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를 들으며 부부는 기도를 울린다. 그 기도는 절대자를 향한 순종이자 풍요로운 대지에 대한 감사이다. 또 수고스러운 하루를 보낸 서로에게 건네는 사랑이기도 하다. 적어도 우리는 그 그림에서 그런 공감대를 얻는다.

‘만종’에 흐르는 이 같은 평화와 안식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나는 시간이라 본다. 저물녘이란 시간적 배경이 그토록 깊은 평화를 길어 내는 것이다. 석양이 끌고 오는 어둠은 휴식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온종일 노동에 시달린 이들에게 석양은 그만 일손을 놓아도 좋다는 허락의 의미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가족과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으라는 메시지다. 단언컨대, 저녁이란 시간적인 배경이 없었다면 ‘만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쉽게도 오늘도 청포대의 저녁놀은 조금 불타다 만다. 하늘과 바다가 한빛이 되어 붉게 물들기를 바랐지만, 마음뿐이다. 그래도 우리 자신에게, 자신과 인연을 맺은 누군가를 다독이기에 충분한 노을이다. 노을 속의 우리 모두는 기적 같은 하루, 찰나처럼 짧거나 영원처럼 긴 하루를 보낸 아름다운 영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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