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환의 캠핑폐인] 강물 곁에 눕다

[김산환의 캠핑폐인] 강물 곁에 눕다

발행일 2011-03-08 10:15:15 김산환 칼럼리스트
해마다 3월이 오면 강의 숨결이 그리워진다. 메마른 겨울을 나면서 야윌대로 야윈 강물의 숨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다시 봄이 왔다고, 강줄기가 이 땅의 튼실한 동맥이 되어 다시 힘찬 맥박을 뛰고 있다고 웅변하는 그 모습이 보고 싶어진다.  

3월의 강은 숨결이 가늘다. 특히, 섬진강은 더욱 그렇다. 한강이나 낙동강처럼 큰 줄기가 아니라서 제 몸에 싣고 가는 강물도 적다. 때로 실개천이라 불러도 항변할 도리가 없을 정도로 가늘게 흐르기도 한다. 야윈 몸통을 드러낸 강물이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흐르는 모습은 얼핏 서럽다. 좋은 시절 다 보내고 쭈그렁 늙은 노인처럼 앙상한 물줄기가 힘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강은 멈추는 법이 없다. 바다로 흘러가는 일은 강의 사명. 제 아무리 힘겨워도 그 일을 멈출 수는 없다. 바다로 향하는 걸음을 멈추는 순간, 강으로서의 존재도 사라진다.

봄날의 섬진강은 그저 강이 아니다. 봄을 부르는 봄의 전령사다. 이 땅의 봄은 섬진강을 타고 온다. 섬진강에서 피워 올린 매화가 산수유에게, 다시 벚꽃에게 바통을 넘기면서 봄이 깊도록 끝나지 않을 꽃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어질어질한 햇살이 머무는 강마을, 그곳에 피어나는 꽃들과 봄을 불러오는 강줄기를 따라 하릴없이 남도행을 택한 사람들. 섬진강의 봄은 그렇게 꽃과 사람이 술래잡기를 하듯이 서로를 찾으려고 안달을 한다.

이맘때면, 광양시 다압면 매화마을에 매화가 팝콘 터지듯 꽃망울을 터뜨릴 때면 섬진강변에 아주 작은 집 하나를 짓는다. 고르고 아늑한 터가 많아도 소용없다. 될 수 있는 한 강물 곁으로 더 다가가야 한다. 겨울가뭄이 깊어, 강물이 앙상해질 때는 더욱 그렇다. 강물의 숨소리를 들으며 잠들고 싶어진다. 그렁그렁한 강물의 숨소리를 들으며 강도 사람처럼 고단한 한 시절을 견디고 있다는 것을, 강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다는 것을 느끼고 싶다. 

섬진강에 물을 보태는 보성강. 그 강가에 작은 캠핑장이 있다. 강이 그리울 때면 즐겨 찾는 곳이다. 특히, 섬진강의 꽃소식이 들릴 때면 주저할 것도 없이 이곳이 목적지가 된다. 이 캠핑장은 강물이 넉넉하게 휘감아 도는 품에 소나무가 웃자라 있다. 춘양목이나 안면송처럼 궁궐의 들보로 쓸 만한 소나무는 아니다. 철없이 몸을 배배 꼬는 것처럼 뒤틀린 모습 일색이다. 그 솔숲에 봄부터 사람들이 찾기 시작한다.

이 캠핑장에서 만나는 섬진강은 아주 초라하다. 징검다리를 놓고 건너도 좋을 만큼 폭이 좁다. 그러나 이 물줄기가 흘러 압록에서 섬진강 본류와 만나면 덩치가 제법 실해진다. 다시 구례를 지나며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골물이 보태지면 제법 강다운 모습이 된다. 강은 하류로 갈수록, 지리산과 백운산의 골물이 보태질수록 더욱 튼실해져, 하동군 악양면을 지날 때면 드넓은 모래톱이 형성된다. 강에는 재첩을 잡는 배들이 오가고, 강 건너 매화가 지천인 다압면도 아스라하게 멀어진다. 비로소 강이 된 것이다.

봄날의 섬진강이 그리워지기 시작한 것은 십년쯤 전이다. 노래하는 H형과 사진 찍는 Y형, 그리고 나, 셋이 의기투합해 섬진강으로 봄맞이 여행을 떠났다. 섬진강에서의 첫날, 우리가 쉴만한 터를 마련한 곳은 피아골이 마주보이는 건너편 강변이었다. 당시만 해도 19번 국도의 강 건너에는 차량 통행이 뜸했다. 원하기만 하면 어디라도 텐트를 치고 섬진강을 다 품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밤이 이슥해져 강 건너의 길도 조용해졌다. 잠을 청했지만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강물이 머리맡에 다가와 속삭이는 소리가 정겨웠다. 자지 말라고, 오늘은 나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자고, 강물은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러니까, 지난겨울 내내 아무도 찾지 않았다고, 조금은 쓸쓸하고 서러웠다고, 너무 가물어 그만 다 말라버릴 것 같았다고 투정하는 강물을 모른 채 할 수 없었다.

강물의 속삭임에 마음을 끌린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H형과 Y형도 강물 소리에 마음을 준 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더는 견디지 못하고 H형이 텐트 밖으로 나갔다. Y형과 내가 뒤를 따랐다. 우리는 강가의 돌밭에 매트리스를 펼치고 누워 턱을 고인 채 강물을 바라봤다.

지리산을 넘어온 하현달이 강물의 야윈 몸통을 비췄다. 강물이 몸을 뒤집을 때마다 허연 비늘이 번쩍거렸다. 물속에서는 강물을 거슬러온 황어가 느닷없이 펄쩍 거리며 봄이 강의 깊은 곳으로도 흐르고 있다는 것을 일러줬다. 가끔 서치라이트 불빛처럼 자동차 불빛이 강을 훑고 지날 때면 강물은 황급히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자동차가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숨죽여 있던 강물은 한참이 지나서야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곁에 벗이 있어 좋다는 듯, 재잘재잘 소리를 내며 흘러갔다. 우리들은 침낭으로 몸을 돌돌 말고 누운 채 밤늦도록 강물이 연주하는 봄의 노래를 들었다.  

해마다 봄이 온다. 사람들은 몸단장을 하고 섬진강으로 향한다. 꽃 마중을 간다. 매화가 산수유에게, 다시 벚꽃에게 바통을 넘겨주며 벌이는 봄날의 꽃 잔치. 섬진강의 꽃놀이는 이른 봄에 시작해 화개 골짜기를 따라 펼쳐진 차밭에 새순이 돋는 곡우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다 초록이 깊어지는 5월쯤 붉은 피를 토하듯 세석의 철쭉으로 만개한다. 일 년의 절반을 꽃으로 사는 곳, 그게 섬진강이다. 그곳에 작은 집 하나 짓는 일, 봄 마중을 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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