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2014 호주 그랑프리가 개최되면서 F1에 새 시대가 열렸다. 그와 함께 지난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 달라진 새로운 규정과 엔진음, 경기 운영 방식과 전략을 놓고 팬들의 호 불호가 갈리며 여러 가지 이슈가 만들어지고 있다. 레이스가 끝난 뒤 2위로 레이스를 마쳤던 리카도가 지금까지 없었던 ‘연료 유량 규정’ 위반으로 실격 판정을 받고 레드불이 이에 항소 의사를 밝히면서 큰 논란이 예상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올 시즌부터 새로워진 F1이 1980년대의 느낌을 준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1980년대는 F1이 원시적인 구조를 벗어나는 동시에 세계적인 인기 스포츠로 시장이 크게 확대되던 말 그대로의 황금기였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의 F1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1984 시즌은 여러모로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시즌이었다.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기 때문에 모든 규정 변화가 한 순간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1980년대 초반을 거치며 F1은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을 갖게 됐다. 그리고 문제의 1984 시즌은 새 시대로의 변혁이 결실을 거둔 첫 번째 시즌이 되었다. 1984 시즌 F1의 달라진 점과 특징을 대략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80년대 황금기를 이끌게 될 프로스트와 만셀이 80년대 초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바로 1984 시즌 세나와 베르거가 F1 무대에 데뷔해 그랑프리를 20대 중반의 어린 드라이버들의 경쟁 무대로 만들었다. 70년대를 상징하는 라우다와 80년대를 상징하는 프로스트의 대결이 F1 흥행의 기폭제가 되었고, 세나와 같은 젊은 드라이버의 데뷔와 활약도 팬들을 자극했다.
▲ 1980년대 F1의 황금기를 연 세나, 프로스트, 만셀, 피케
론 데니스의 팀으로 거듭난 맥라렌이 처음으로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했고, 컨스트럭터 타이틀의 디펜딩 챔피언인 페라리의 긴 몰락이 시작됐다. ‘엔진 공급자’로 부활한 혼다가 윌리암스와 함께 첫 풀 시즌을 시작한 것도 1984 시즌이고, TAG(포르쉐) 역시 1984 시즌 처음으로 맥라렌에 한 시즌 내내 엔진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1984 시즌을 전후한 변화도 적지 않다. FISA-FOCA 전쟁의 결과로 콩코드 협정이 정비 되면서 1984 시즌 처음으로 논-챔피언십 그랑프리가 열리지 않았다. 1980년대 초반 순차적
으로 금지되기 시작했던 그라운드 이펙트는 1983 시즌 전면 금지되었다. 공기역학적 효과에 크게 기대던 F1 레이스카의 성능은 1980년대 초부터 터보차저의 원초적인 힘에 의해 다시 좌우되기 시작했다.
바로 이와 같은 패러다임의 변화가 2014 시즌을 1980년대, 그리고 80년대의 전환점 중 하나였던 1984 시즌의 F1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하게 하는 부분이다.
▲ 1980년대 터보의 시대를 상징하는 엔진 중 하나인 BMW M12/13 엔진
1970년대 후반 F1 레이스 카에 적용되기 시작한 터보차저 엔진들은 처음 몇 년 동안 무겁고 신뢰도가 떨어지며, 무엇보다 드라이버 조종성이 너무 나쁘다는 비난을 들었고 성적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4~5년의 시행착오를 거친 터보차저 엔진은 전성기가 지난 코스워스 DFV 엔진을 골동품으로 만들면서 그리드의 정석으로 자리잡았다. 터보차저 엔진의 도입 문제는 FISA와 FOCA 소속 독립 팀들간의 분쟁을 불러왔고 콩코드 협정이 체결되는 계기가 됐으며, 터보차저에 대응하는 소형 팀들은 다양하고 기발한 기술적 시도들을 동원했다. 결과적으로 승자는 터보차저였고 터보 엔진 도입이 늦었던 티렐은 경쟁력을 잃어갔다.
2014 시즌 F1의 모습은 마치 1980년대 수년 간의 변화를 함축한 듯하다. 규정에 의해 터보차저가 전면 채택되었고, 새로운 파워 유닛은 무겁고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종성도 크게 나빠질 수 밖에 없었고, 레드불처럼 지난 몇 년 간 조종성이 뛰어난 레이스카를 만들던 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출력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적시도가 펼쳐지는 가운데 FIA와 일부 팀 간에 갈등이 생긴 것도 비슷하다. 그리고 이 시대에 뒤떨어진다면? 당연히 30년 전 티렐이 도태되던 것처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1980년대 초 공기역학적 효과가 크게 축소되면서 코너 공략 속도와 전반적인 랩타임이 떨어졌다. 대신 터보차저의 엄청난 토크는 레이스카의 가속력을 크게 끌어올렸고, 터보차저를 거쳐 흘러나오는 저음의 배기음과 함께 짐승처럼 질주하는 레이스카의 모습이 F1을 상징하기 시작했다. 몇 년 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조종성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1984 시즌 즈음의 F1 레이스카는 이전 그라운드 이펙트 시대의 차량에 비하면 다운포스 레벨이 크게 낮아졌고 드라이버들은 이에 적응해야 했다. 각 팀의 기술진 역시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부족한 다운포스를 다시 끌어내기 위해 혁신을 거듭했다. 그 노력은 다시 수 년 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불세출의 명차들을 탄생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2014 시즌에도 크게 낮아진 다운포스와 강력해진 파워유닛의 토크는 고속 코너에서 적은 다운포스로 공략 속도를 낮추는 한편 저속 코너에서 조종성을 크게 떨어뜨려 드라이버들에게 어려운 과제를 안겨줬다. 실제로 호주 그랑프리에서는 연습 주행부터 퀄리파잉, 레이스에 이르기까지 한 순간 트랙션이 흔들리면서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거나 사고로 이어지는 장면이 속출했다.
▲ 1984 시즌, 알랑 프로스트와 맥라렌 MP4/2
1980년대 초의 F1이 맥라렌의 부흥과 독일이 만든 파워트레인의 약진으로 주목 받은 것 역시 2014 시즌의 상황과 묘하게 비슷하다.
1976 시즌 제임스 헌트의 극적인 챔피언 타이틀 획득 이후 침체에 빠진 맥라렌은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론 데니스가 지휘권을 물려 받으며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카본 모노코크 섀시의 MP4(이후 MP4/1으로 명명되는 )로 가능성을 확인한 맥라렌은 1984 시즌을 맞아 야심작인 MP4/2를 선보였고 드라이버와 컨스트럭터 양대 챔피언 타이틀을 석권했다. 드라이버 타이틀로는 8년, 컨스트럭터 타이틀은 10년만에 맥라렌이 왕좌에 복귀한 셈이었다. 론 데니스는 팀을 이끌기 시작한 후 첫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 1984 시즌의 라인업은 최고의 베테랑인 더블 챔피언 니키 라우다와 떠오르는 스타였던 알랑 프로스트였다. 두 드라이버는 나름의 장점을 유감 없이 보여주며 시즌을 지배했고 결국 챔피언 타이틀의 영광은 단 0.5 포인트 차로 니키라우다에게 돌아갔다. 프로스트는 이듬해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자신의 첫 번째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며 지난 시즌의 아쉬움을 달랬다. 1983 시즌 브라밤의 엔진을 공급했던 BMW에 이어, 1984~1986 시즌 TAG의 브랜드를 단 포르쉐 엔진의 맥라렌이 왕좌에 오르면서 독일의 파워트레인은 1980년대중반을 지배했다. 독일 브랜드의 엔진이 챔피언을 만든 것은 1955 시즌 이후 거의 30년만에 처음이었다. 1986 시즌 TAG가 마지막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 뒤 다시 독일 브랜드가 정상에 복귀하는 데는 다시 12년의 시간이 걸렸다.
2014 시즌 맥라렌은 팀 수뇌부의 구조 변화를 꾀했고, 수년간2선에 물러나 있던 론 데니스가 일선에 복귀했다. 여섯 시즌째 드라이버 챔피언 타이틀에서 멀어져 있었고, 15년 동안 컨스트럭터 챔피언 타이틀 획득에 실패한 맥라렌의 침체기를 다시 한 번 론 데니스
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로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맥라렌은 지난해 우승은 물론 단 한 차례도 포디엄에 오르지 못하며 최악의 시즌을 보냈지만, 2014 시즌 개막전에서 두 명의 드라이버가 모두 포디엄 피니시에 성공하면서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타이틀 경쟁에서 선두로 나서며 기분 좋게 새로운 시즌을 시작했다.
올 시즌 맥라렌의 라인업은 현역 F1 드라이버 중 가장 많은 그랑프리 출전 경험을 가진 2009 챔피언 젠슨 버튼과 갓 F1에 데뷔한 떠오르는 별 케빈 마그누센으로 이루어졌다. 버튼의 선전은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수 있었지만, 놀라운 것은 루키 케빈 마그누센이 퀄리파잉과 레이스에서 모두 버튼을 크게 앞서는 강력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는 점이다. 가깝게는 6년 전의 해밀튼을, 멀게는 30년 전의 프로스트를 연상시키는 빠르면서도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성숙한 드라이빙이 돋보였다.
공교롭게도 2014 시즌 맥라렌의 파워트레인 역시 30년 전처럼 독일 브랜드가 담당하고 있다. 맥라렌이 올 시즌 왕좌에 복귀할 수 있을지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지만, 2014 시즌 최강의 파워 유닛이 메르세데스의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맥라렌에게는 독일 브랜드의 파워 유닛으로 타이틀을 획득할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 파워트레인을 혼다로 바꾼 것과 비슷하게 2014 시즌을 마치면 맥라렌은 다음 시즌부터 다시 혼다의 파워 유닛을 사용하게 된다. 묘한 데자뷰가 느껴진다.
▲ 2014 시즌 개막전에서 포디엄에 오른 덴마크의 신인 케빈 마그누센
30년 전 F1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가운데 드라이버의 세대 교체가 이뤄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알랑 프로스트는 그라운드 이펙트가 금지된 1983 시즌부터 2년 연속으로 최종전까지 타이틀 경쟁을 펼치며 아깝게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고, 1985 시즌 처음으로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1980년 이후 F1에 데뷔한 프로스트의 챔피언 타이틀 획득은 F1의 세대 교체를 이뤄냈다. 1970년대에 활약했던 드라이버들은 1978년 데뷔한 넬슨 피케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F1의 왕좌에 오르지 못했다.
1985 시즌 이후 챔피언 타이틀 경쟁은 프로스트와 미켈레 알보레토, 나이젤 만셀, 아일톤 세나 등 젊은 드라이버들의 몫이 되었다. 1987 시즌 피케가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것이 유일한 예외였다. 두 말 할 필요 없이 프로스트, 세나, 만셀은 F1 최고의 황금기를 만든 드라이버들이었다. 기성 세대를 상징하는 과거의 스타 드라이버들은 뛰어난 재능을 지닌 젊은 드라이버들에게 자리를 내줄 수 밖에 없었고, 새로운 별들은 터보의 시대를 풍미하며 F1을 세계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급부상 시켰다.
2014 호주 그랑프리는 새로운 별들의 탄생을 예고했다. 케빈 마그누센은 F1 데뷔전에서 2위로 포디엄에 올랐다. F1 데뷔전에서 포디엄 피니시에 성공한 드라이버는 65년 동안 단 다섯 명뿐이었고, 맥라렌에서 데뷔했던 루이스 해밀튼 이후로는 마그누센이 처음이다. 특히 데뷔 전 2위는 F1 사상 데뷔 전 최고 성적의 타이 기록이다. 같은 기록을 가진 드라이버는 인디카 챔피언에 오른 뒤 1997 시즌 F1에 데뷔했던 자크 빌너브 뿐이다. 마그누센은 덴마크인 최초의 포디엄 피니시는 물론 F1 최연소 포디엄 피니시 기록에서도 2008 이태리 그랑프리의 베텔에 이어 역대 2위의 기록을 수립했다.
이번 호주 그랑프리에서 빛난 젊은 드라이버는 마그누센 뿐이 아니었다. 토로로쏘를 통해 역시 F1 데뷔 전을 치른 다닐 크비앗은 9위로 포인트 피니시를 기록했다. 크비앗은 1994년 4월 26일 생으로 아직 만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어린 드라이버다. 크비앗의 포인트 피니시는 7년 전 베텔이 수립했던 F1 최연소 포인트 피니시 기록을 한 달 여 앞당기는 새로운 기록이다.
두 명의 루키 외에 데뷔 2년차의 보타스는 혼자서 무려 13 차례의 추월을 성공시키며 앨버트 파크를 뜨겁게 달궜고, 비록 실격 처리되기는 했지만 레드불로 옮기자마자 베텔을 뛰어넘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데뷔 3년차 리카도의 활약도 주목할 만 했다. 크비앗이 1994년생, 마그누센이 1992년생, 그리고 보타스와 리카도는 1989년생 등으로 이제 갓 25세가 된 드라이버들이 다섯 명의 월드 챔피언을 앞서는 활약을 보인 호주 그랑프리는 1980년대 중반이 그랬던 것처럼 F1의 세대 교체가 시작되었음을 상징하는 듯 하다.
F1의 역사는 변화의 역사였다. 변화에 적응하는 팀들이 과거에 안주하는 팀들을 도태시키면서 왕좌에 오르는 것이 F1이다. 그리고 과거에 영광을 누리던 드라이버들은 서서히 밀려나고 젊은 드라이버들이 새로운 스타로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터보차저와 새로운 패러다임의 파워 유닛은 이런 변혁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역할을 할 것이다. 물론 4년 연속으로 권좌를 내주지 않았던 레드불이나 다섯 명의 월드 챔피언들과 같은 기존의 강자들이 시대의 변화를 그저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새 시대를 상징하는 젊은 드라이버들과 역전의 노장들이 펼칠 대결은 F1 2014 시즌을 더욱 재미있게 만들어 줄 것이 분명하다. 마치 30년 전 1984 시즌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