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F1 2014 시즌이 개막된다. 많은 이들이 ‘F1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고 이야기
한다. 그만큼 규정 변화가 많다. 지난해는 물론 이전 몇 년, 몇 십 년 전과 비교해 전혀 다른 느낌일 것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얼마나 바뀌길래 이렇게까지 이야기가 나오는 걸까? 규정 변화에 대한 단편적인 뉴스를 접해도 일반인들이 따라가기에는 쉽지 않은 면이 있다. 그래서 정리했다. 지금부터 2014 시즌 F1의 변화 중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을 망라해 총정리 해보겠다.
2014 시즌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파워트레인 규정의 변경이다. 엔진이 바뀐다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런데 규정 속의 수치 몇 가지 바뀌는 게 뭐가 그렇게 큰 일인가? 이 부분은 좀 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는데, 일단 수치상의 변화부터 확인하고 가자.
▲ 완전히 새로워진 2014 시즌 F1 레이스카의 파워트레인 규정
일단 배기량만 놓고 본다면 2014 시즌 F1 엔진은 확연하게 작아졌다. 출력은? 최대 출력
은 분명 내려갔다. 싱글 터보가 추가되면서 힘이 보충되었지만 최대 회전 수 기준이 크게
낮아지면서 일단 최대 출력 기준으로는 지난 시즌보다 150 마력 이상 약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말 엔진의 힘 자체가 약해진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게 보기 어렵다.
2014 시즌의 새로운 파워 트레인은 터보와 함께 강력한 토크를 뽑아낸다. 안 그래도 토크
가 강한 F1 엔진은 이제 지난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한 힘으로 드라이브샤프트를 돌리게 된다. 드라이버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스핀과 사고가 난무할 수 밖에 없다.
4반세기만에 부활한 터보는 F1 그랑프리의 양상을 바꿔놓을 것이다.
25년 전과 비교한다면 최대 출력 면에서 오히려 현재의 엔진이 낮지만, 휠까지 전달되는
동력 효율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이미 20%를 훌쩍 넘기던 F1 드라이브트레인의 동력 전달 효율은 2014 시즌에는 3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TCS가 없는 F1 레이스카로 저속 코너를 빠져나가며 빠르게 쓰로틀 페달을 밟아야 하는 드라이버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다.
엔진의 사운드 변화도 주목할 만 하다. 지난 시즌까지 F1 엔진의 사운드는 성악가로 비유
하면 소프라노, 동물로는 독수리와 같은 높고 날카로운 소리를 들려줬다. 하지만 2014 시즌부터 F1 그랑프리에는 성악가로는 베이스, 동물로는 사자 같은 낮고 깊게 울리는 소리가 가득 찰 전망이다. 공연할 곡이 ‘명태’인데 소프라노의 아리아를 기대하고 공연장을 찾으면 낭패를 볼 수 밖에 없다.
▲ 2014 시즌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새로운 파워 유닛 운영
F1 2014 시즌에는 파워트레인의 운용도 완전히 바뀐다. 일단 레이스에 새로운 100 kg의
연료 제한이 생긴다. 지난해까지 레이스에서 최대 160 kg 정도 사용한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효율 향상의 압박이 생긴 셈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레이스에서 완주하지 못하는 레이스카도 속출할 가능성이 있다. F1이 인기 스포츠로 막 발돋움하던 추억의 1970, 80년대의풍경이 재현될지도 모른다.
파워트레인의 의무 사용 규정도 크게 바뀐다. 일단 ‘파워 유닛’이란 개념이 엔진의 자리를 대체했다. 이전에는 연간 8개의 엔진과 다섯 그랑프리 연속 기어박스 사용을 제외하면 다른 의무 사용 규정은 없었다. 하지만 2014 시즌부터 기어박스는 한 차례 늘어난 여섯 그랑프리 동안 사용해야 하고, 시즌 중 기어비 변경도 제한된다. (불가피할 경우 한 차례의 변경이 가능하다. ) 덕분에 기어비를 바꾸면서 부담을 분산시키는 방법이 통하지 않게 된다.
엔진을 포함해 터보 차저, MGU-K(지난해까지의 KERS라고 보면 된다 )와 MGU-H(터보차저의 터빈에서 발생한 열을 에너지로 변환 저장하는 장치), 그리고 에너지 저장소(쉽게 말하면 ‘배터리’다 )를 모두 아우르는 ‘파워 유닛’은 그 어느 부품도 6개 이상 사용할 수 없다. 지난해까지는 배터리를 교체한다고 KERS를 교체한다고 어떤 제한도 없었지만, 올 시즌 만약 이런 한 모듈을 여섯 개 이상 사용한다면 페널티를 받게 된다.
결과적으로 올 시즌 승리할 수 있는 레이스카는 ‘효율이 뛰어나고 내구도가 높은’ 차량이 될 것이다. F1 역시 일반적인 승용차들의 개발 지향점과 같은 곳을 바라보는 셈이고 이는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F1의 기술이 일반 시판 차에 영향을 주게 될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KERS가 이제 하이드브리드 기술의 핵심이 된 것처럼 터보와 결합해 엔진의 효율과 토크를 종합적으로 상승시키는 2014 시즌의 파워 유닛 기술은 분명히 매력적인 구석이 있다.
!
드라이버 역시 새로운 그랑프리의 형식과 레이스카 운용에 적응해야 한다. 여러 가지 생각할 것이 많아진 2014 시즌의 상황은 마치 에어로다이나믹스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페라리 등이 이에 적응하지 못하던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무조건 강한 엔진으로 높은 속도를 낼 수 있도록’ 만들어지던 F1 레이스카는 40 여 년 전 ‘엔진이 약하고 최고 속도가 낮더라도 결과적으로 랩 타임이 빠른’ 레이스카들과의 경쟁에서 뒤지며 도태되었다. 이제 강한 엔진과 우수한 공기역학적 성능에 이어 ‘뛰어난 효율’이 더해져 3박자를 고루 갖춘 레이스카만이 레이스에서 승리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 빔 윙이 금지되는 등 다양한 변화가 생긴 F1 레이스카의 뒷모습
변화는 파워트레인에서 그치지 않는다. 현대적인 F1 레이스 카에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
었던 에어로 파츠가 상당 부분 제한되었다. 사실 2014 시즌 에어로 파츠의 변화는 이미
2009 시즌에 이뤄졌어야 했다. 다양한 에어로 파츠가 금지되었던 2009 시즌은 ‘더블 덱 디퓨저’라는 기발한 아이디어의 등장으로 오히려 다운포스가 크게 증가하는 시즌이 되었고, 더블 덱 디퓨저가 금지된 이후에도 블론 디퓨저와 코안다 이그조스트 등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끈질기게 다운포스를 높여 왔다.
하지만 2014 시즌의 혁신은 일단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빔 윙이 사라졌고 배기구의 위치가 더 이상 배기가스를 디퓨저 부근으로 보내지 못하도록 고정됐다. 싱글 터보에 의해 배기구가 하나로 바뀐 것도 연관이 있는 셈이다. 보다 제한된 리어 윙 규정 변경까지 더해지면서 올 시즌 F1 레이스카의 다운포스는 크게 감소할 수 밖에 없다. 프론트 윙의 크기가 작아지고 노즈의 높이를 낮춘 것 역시 레이스 카 뒤쪽으로 흐르는 공기의 흐름을 제어하는데 많은 제약을 만들고, 결과적으로 다운포스는 더욱 낮아진다.
크게 감소한 다운포스는 리어 그립이 보다 불안해진다는 뜻이고,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드라이버의 역량이 더욱 강조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레이스 카 뒤쪽 다운포스가 적어지면 그만큼 뒤따른 차량이 헤쳐나가야 하는 공기도 깔끔해지기 때문에, 지난 시즌 과 비교한다면 앞 차량을 따라붙는데 조금이나마 용이해질 것이다. 좁아진 프론트윙은 공기역학적 효과의 변화와 함께 배틀 과정에서의 손상도 줄이게 된다. 쉽게 따라붙고 배틀 환경이 좀 더 나아졌다는 뜻은? 올 시즌부터 추월 시도가 보다 많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
랩당 33초로 대폭 늘어난 재생 에너지의 사용 시간 역시 추월 시도에 도움을 줄 것이고,
100 kg의 연료 제한 때문에 언제 속도를 늦추고 언제 속도를 높이느냐의 전략적인 선택이 크게 영향을 주면서 추월 장면은 더 많이 연출될 가능성이 높다. 모든 규정 변화가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으로만 바뀐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보는 이들의 흥미를 높일만한 구석들이 많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 2014 시즌부터 다양한 홍보에 활용될 드라이버 넘버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2014 시즌 F1의 혁명은 자원 낭비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사회 단체들이나 F1 참가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만을 겨냥한 변화는 아니다. 올 시즌 본격적인 개혁이 이뤄지는 또 다른 부분이 바로 팬 서비스와 관련된 부분이다. 드라이버들은 매년 성적에 따라 주어지던 카 넘버가 아닌 자신만의 영구적인 드라이버 넘버를 갖게 됐다. 이마 각 팀과 스폰서들은 드라이버 넘버를 이용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다. 이름이 아니라 숫자만으로도 드라이버의 구분이 가능해지면서 ‘매 시즌 카 넘버를 외울 필요는 없어졌다. 물론 익숙하지 않은 올 시즌은 번호 외우기가 더 힘들겠지만.
시즌 최종 전에 두 배의 포인트를 배정한 것 역시 팬 서비스 차원이라고 할 수도 있고, 반대로 말하면 마지막까지 팬들의 관심을 어떻게든 붙잡아보려는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기존 팬들이 두 배 포인트가 최종 전에 주어지는 것을 반대했지만, 대부분의 프로 스포츠들이 포스트 시즌을 강화해나가는 추세와 이어져있다. 아울러서 2014 시즌부터 그랑프리 우승자의 우승 세레머니와 관련된 규정이 정비되어 F1 팬들이 도넛을 그리는 우승자의 팬 서비스를 제재 없이 만나게 된 것 역시 의미 있는 변화다.
!
이외의 변화들은 보다 합리적인 스포츠로의 발전을 꾀하는 부분이 많다. 드라이버에게 주어지는 페널티는 이제 페널티 포인트로 누적되어 처벌의 경중에 불합리함을 덜어냈다. 스튜어드들 역시 페널티가 레이스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5초 페널티 등을 새로 부과할 수 있게 되었고, 위험한 핏스탑에 대한 페널티도 강화됐다.
!
미래의 F1 드라이버들이 F1 레이스 카에 적응할 기회를 주고 현장을 찾은 팬들이 금요일 오전 무료한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연습 주행 세션 중 드라이버의 교체가 허용되고 최대 네 명까지 한 세션에 참가가 가능해졌다. 테스트 드라이버의 참가 기회가 늘어나면서 22년만에 여성 드라이버의 F1 공식 세션 출전이 이뤄질 전망이다.
새 시대를 맞이하는 개혁이 F1 전반에 이뤄지는 2014 시즌 ‘일반적인’ 새로운 시즌의 변화도 없지 않다. 세 명의 루키가 F1에 도전하며 일본인답지 않은 공격적인 드라이빙으로 사랑 받은 카무이 코바야시가 복귀한다. 동계 올림픽 개최지 소치에서 최초로 러시아 그랑프리가 열리고,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는 오스트리아 그랑프리가 부활한다. 다니엘 리카도, 키미 라이코넨, 파스토르 말도나도, 니코 훌켄버그 등이 새로운 팀에서 새로운 시즌을 맞는다. 윌리암스와 함께 모터스포츠 전통의 강자 마티니 레이싱이 부활한 것 역시 주목할만하다.
이제 며칠 뒤면 새로워진 F1 무대에 누가 가장 잘 적응했는지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 팀과 드라이버들뿐 아니라 F1 팬들에게도 만만찮은 ‘적응’의 과제가 주어졌다.
과거에 그대로 머무른다면 조금 편할지는 모르겠지만 변화는 불가피했고,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것’이 지금 F1 팬들에게 주어진 해결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질 F1 2014 시즌의 변화를 즐겁게 맞이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