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환의 캠핑폐인]내 낡은 텐트

[김산환의 캠핑폐인]내 낡은 텐트

겨울캠핑

발행일 2011-12-28 13:00:45 김산환 칼럼리스트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해가 많이 남아 있었다. 우선 좋은 자리를 골라 텐트를 쳤다. 텐트를 다 쳐놓고 보니 많이도 낡았다. 이 텐트는 15년간 나와 함께한 캠핑의 동지다. 연둣빛 본체에 감홍색 플라이가 반짝반짝 윤이 나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빛이 바랬다. 당김줄을 세게 당기면 부르르 찢어질 것처럼 탄력을 잃었다. 연륜이라 하기에는 이제 너무 초라하다. 습기를 막아주는 플라이의 방수막은 헤질 대로 헤져 보푸라기가 일었다. 그 모습이 안쓰럽다. 내 젊은 날을 함께 뒹굴던 친구 아닌 친구가 퇴락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씁쓸하다. 나는 이 텐트와 함께 무슨 일을 했던가.

▲ 캠핑폐인

이 텐트를 메고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이 텐트는 산을 오르는 고통에 악을 쓰고, 사람이 그리워 절망하던 밤에 말없이 제 속에 나를 품어주었다. 눈이 무릎까지 쌓인 지리산에서 모진 삭풍을 막아주던 것도 이 텐트였다. 나무마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처럼 단풍이 물든 시월의 주왕산에서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쓸 때도 녀석은 제 품을 내주었다. 빗줄기가 우악스럽게 퍼붓던 설악산 서북릉. 몸을 날려버릴 것 같은 바람에 오도 가도 못하고 꼬박 하루를 능선에서 보낼 때도 이 텐트는 온몸이 부서져라 나를 껴안았다.

▲ 김산환 캠핑폐인

이 텐트에게서 사람됨의 도리를 배웠다. 안도현 시인이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너에게 묻는다)며 골목에 나뒹구는 연탄재에게서 각박한 시절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마지막 양심을 찾았다면, 나는 이 텐트에게서 희생정신을 배웠다.

▲ 김산환 캠핑폐인

텐트는 얇은 천조각과 그것을 세워주는 가느다란 폴이 전부다. 텐트는 그 것만으로 자연계의 모든 변화에 맞서 캠퍼를 지켜준다. 태양이 이글이글 불탈 때도, 빗발이 송곳처럼 박힐 때도, 바람이 제 몸을 가리가리 찢어버릴 것처럼 불 때도, 사람들의 꿈마저 꽁꽁 얼어붙는 겨울밤에도 텐트는 서 있다. 그 안에 잠든, 태양과 비, 바람과 눈보라를 맞기에는 너무 나약한 인간을 품고 말이다. 텐트의 희생을 모성애에 비유한다면 언어도단일까.

이제 나의 텐트는 퇴역을 앞두고 있다. 나의 텐트는 더 이상 빗줄기를 막아주지 못한다. 비가 조금만 와도 텐트 속이 흥건하게 젖는다. 나의 텐트는 더 이상 바람을 막아주지 못한다. 플라이가 삭아 ㄱ자로 찢어진 구멍을 통해 바람이 제 집처럼 드나든다. 나의 텐트는 더 이상 추위와 싸우지 못한다. 겨울밤마다 머리맡에 둔 물병이 꽁꽁 어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다.

▲ 김산환 캠핑폐인, 마방오토캠핑장

그럼에도 캠핑을 떠날 때 으레 손이 가는 것은 이 텐트다. 이 텐트 말고도 싱싱한 텐트가 몇 개 더 있다. 하지만 날씨가 나쁘지 않으면 나의 선택은 늘 이 텐트다. 언젠가 이 텐트의 플라이가 살풀이춤을 추다 가르는 명주천처럼 찢어지거나 폴이 부러져 털썩 주저앉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이 텐트의 최후를 함께 하고 싶다. 그것이 한 시절을 함께 한 동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에는 희생에 대한 서글픈 단상이 등장한다. 노인이 젊은 소에게 먹일 꼴을 베러 제 몸도 건사하지 못하는 소를 끌고 가는 장면이 그 것이다. 병들어 지친 노인과 소,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며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한다.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 스러지는 순간까지 함께 해주는 것, 그것이 지금껏 나를 위해 헌신했던 텐트에 대한 마지막 배려가 아닐까.

▲ 김산환 캠핑폐인, 칠족령

텐트 속에 누웠다. 바람이 잔가지를 훑고 지나는 소리가 귓가에 머문다. 그 소리 가운데는 텐트의 밭은 기침소리도 들린다. 플라이가 찢어진 구멍 사이로 바람이 드나들 때마다 텐트는 바르르 떤다. 아무래도 집으로 돌아가면 훈장을 달아주어야겠다. 찢어진 자리에 천을 덧대 텐트를 위로해줄 작정이다. 나는 아직 이 텐트와 작별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300
[시승기] 미니 JCW 에이스맨, 코너링이 재밌는 전기차

[시승기] 미니 JCW 에이스맨, 코너링이 재밌는 전기차

미니 JCW 에이스맨을 시승했다. 미니 JCW 에이스맨은 JCW 최초의 전동화 모델로, JCW 고유의 역동적인 주행성능과 함께 부스트 모드를 통해 재미까지 더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고성능 전기차에서 아쉬원던 코너링 성능을 비교적 가벼운 공차중량과 로드홀딩으로 재밌게 풀어냈다. 미니 에이스맨은 신설된 전기차 전용 라인업으로, 몸집이 커진 3세대 컨트리맨과 4세대 미니 쿠퍼 사이를 채운다. 가격 포지셔닝이나 체감상으로는 기존 컨트리맨의 후속 모

수입차 시승기이한승 기자
BMW 뉴 iX3 공개, 6세대 eDrive 기술..주행거리 805km

BMW 뉴 iX3 공개, 6세대 eDrive 기술..주행거리 805km

BMW는 5일(현지시간) 차세대 전기차, 뉴 iX3를 공개했다. 노이어 클라쎄(Neue Klasse) 기반의 첫 양산형 모델로, 올 연말부터 생산이 시작된다. 뉴 iX3에는 새로운 디자인 언어의 내외관 디자인을 비롯해 BMW 파노라믹 비전과 BMW OS X가 적용돼 차세대 BMW 신차를 가늠할 수 있다. 뉴 iX3에는 6세대 BMW eDrive 기술이 적용됐다. WLTP 기준 최대 805km의 주행거리, 최대 400kW 충전을 통해 효율성과 장거리 성능을 높였다. 또한 역동적이고 정밀한 핸들링도 강조했다. 2026년

신차소식이한승 기자
푸조 스마트 하이브리드 시승 개최, 월 30만원대 할부 제공

푸조 스마트 하이브리드 시승 개최, 월 30만원대 할부 제공

푸조가 올 가을 도심 속 일상에 색다른 즐거움과 스마트한 효율을 선사하는 스마트 하이브리드 라인업 알리기에 나선다. 오는 30일까지 전국 푸조 전시장에서 푸조의 최신 전동화 기술이 적용된 ‘올 뉴 3008 스마트 하이브리드’와 ‘408 스마트 하이브리드’, ‘308 스마트 하이브리드’ 대상으로 시승행사를 진행한다. 이번 시승행사는 푸조가 제안하는 세련되고 효율적인 주행의 즐거움이 일상에 기분 좋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업계소식탑라이더 뉴스팀 기자
기아 레이 2026년형 조용히 출시, 가격은 1490~2003만원

기아 레이 2026년형 조용히 출시, 가격은 1490~2003만원

기아는 2026년형 레이를 조용히 출시했다. 2026년형 레이는 연식변경으로 전방 충돌방지 보조와 차로 유지 보조 등 최신 ADAS 시스템이 기본 적용됐으며, 상위 트림은 후측방 충돌 경고와 충돌방지 보조 등이 추가됐다. X-라인 트림이 도입됐다. 가격은 1490만원부터다. 2026년형 레이 가격은 트렌디 1490만원, 프레스티지 1760만원, 시그니처 1903만원, X-라인 2003만원이다. 기존 2025년형 가격과 비교해 트렌디 90만원, 프레스티지 85만원, 시그니처 70만원 인상됐다.

신차소식탑라이더 뉴스팀 기자
폭스바겐 폴로 전기차 티저 공개, 고성능 GTI까지 나온다

폭스바겐 폴로 전기차 티저 공개, 고성능 GTI까지 나온다

폭스바겐은 ID.폴로(Polo) 티저를 4일 공개했다. ID.폴로는 폭스바겐 ID.2all 콘셉트카의 양산형 버전으로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탑재해 작은 차체 크기에도 불구하고 넓은 실내 공간을 제공한다. 또한 폭스바겐 첫 고성능 전기차 GTI가 도입된다. 내년에 공개된다. ID.폴로는 폭스바겐 ID.2all 콘셉트카의 양산형 버전이다. 폭스바겐은 ID.폴로를 시작으로 익숙한 이름의 기존 폭스바겐 차명에 ID.를 붙이는 전기차명 체계로 변경한다. ID.티구안과 같은 모델이 새

업계소식탑라이더 뉴스팀 기자
포르쉐 카이엔 일렉트릭 무선 충전 탑재, 스마트폰처럼 편하게 충전

포르쉐 카이엔 일렉트릭 무선 충전 탑재, 스마트폰처럼 편하게 충전

포르쉐는 신형 카이엔 일렉트릭의 무선 충전 기술을 5일 공개했다. 신형 카이엔 일렉트릭의 무선 충전 기술은 스마트폰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하며, 최대 11kW급 충전 출력으로 유선 완성 충전과 동일한 수준이다. 신형 카이엔 일렉트릭은 올해 하반기에 공개된다. 카이엔 일렉트릭은 차세대 카이엔의 전기차 버전이다. 신형 카이엔 일렉트릭은 포르쉐 고객들이 기대하는 높은 실용성과 퍼포먼스 제공을 목표로 개발됐으며, 성능이 향상된 포르쉐 액티

업계소식탑라이더 뉴스팀 기자
폴스타5 제원 유출, 884마력..포르쉐 타이칸 정조준

폴스타5 제원 유출, 884마력..포르쉐 타이칸 정조준

폴스타5 제원이 유출됐다. 해외 자동차 전문매체 카스쿱에 따르면 폴스타5는 총 출력 748마력/884마력 사양으로 운영되며, 1회 완충시 주행거리는 WLTP 기준 최대 669km다. 폴스타5는 4인승 고성능 그랜드 투어러로 연내 공개될 예정이며, 국내에도 출시된다. 폴스타5는 4인승 고성능 그랜드 투어러(GT)다. 폴스타5는 포르쉐 타이칸, 아우디 e-트론 GT 등과 경쟁한다. 폴스타5는 연내 공개되며, 월드프리미어와 함께 풀패키지 구성인 런치 에디션을 도입한다. 폴스

업계소식탑라이더 뉴스팀 기자
EX30 크로스컨트리, 한국이 유럽보다 3500만원 저렴

EX30 크로스컨트리, 한국이 유럽보다 3500만원 저렴

볼보자동차코리아는 EX30 크로스컨트리를 출시한다고 4일 밝혔다. EX30CC는 높은 지상고과 독특한 외관 디테일, 사륜구동(AWD) 시스템을 더했다. 출발부터 100km/h까지 3.7초만에 도달하는 브랜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성능을 보여준다. EX30CC의 국내 판매가격은 5516만원이다. EX30 크로스컨트리의 글로벌 주요 국가 판매가격은 영국(4만5560파운드, 한화 약 8520만원), 스웨덴(60만9000크로나, 한화 약 8991만원), 독일(5만7290유로, 한화 약 9295만원), 일본(649만엔, 한화

차vs차 비교해보니이한승 기자
벤츠 G클래스 1980 에디션 출시, 가격은 2억1820만원

벤츠 G클래스 1980 에디션 출시, 가격은 2억1820만원

벤츠코리아는 G클래스 스트롱거 댄 더 1980 에디션(STRONGER THAN THE 1980s, 이하 1980s 에디션)을 출시한다고 4일 밝혔다. G클래스 1980s 에디션은 G클래스 W460 시리즈를 헌정해 제작된 한정판으로 클래식한 디자인이 강조됐다. 가격은 2억1820만원이다. G클래스 1980s 에디션은 1979년 첫 G클래스 모델 시리즈 W460을 헌정해 제작된 한정판 모델이다. G클래스 1980s 에디션은 글로벌 기준 G450d와 G500 두 가지 버전으로 전 세계 총 460대가 생산되며, 그 중 한국에는 G450d 25대

신차소식탑라이더 뉴스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