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명문 졸리팀이 보디를 완성한 뒤 이 차는 다시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돌아와 외장 전문가인 프랜 록사스가 복원작업을 마무리했다. "나는 80년대 초 이 차를 처음 봤을 때를 결코 잊을 수 없다."며 록사스는 회고했다. "수많은 센프란시스코 수집가들이 자동차를 보관하는 오래된 창고로 들어갔다. 앞 윙이 떨어져나가고 올즈모빌 엔진이 들어앉은 들라이예는 무척 쓸쓸해보였다.

실내를 살리는 데는 정말 힘이 들었다. 하지만 운 좋게 프랑스에서 찾아낸 수많은 역사적 사진들이 완벽한 참고자료가 됐다. 아울러 고인이 된 레이먼드 미로가 큰 도움을 줬다. 스티어링 휠은 다시 만들어야 했다. 오리지널의 깨끗한 투명 크리스탈 휠 속에 들어있던 강철로드는 녹이 쓸어 있었다.
그래서 강철대신 스테인리스 심을 박고 투명한 수지로 일체형 휠 림을 떠냈다. 계기는 거의 완전했다. 대시보드는 원형과는 달리 가죽으로 덮여있었다. 모든 시트는 우리 가게에서 다시 만들었다. 작업을 시작할 때 처음으로 엠블럼이 갈매기라는 사실을 알았다. 바다를 테마로 한 디자인과 연관이 있었다. "
1950년대의 컬러 사진을 구할 수 없어 색상 알아맞히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트렁크 안에 오리지널 블루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록사스는 이렇게 말했다. “ 그 페인트는 단 한 번도 햇빛을 받지 않았다. 따라서 완벽한 샘플이었다. 우리는 그 색을 아쿠아 블루(푸른 물빛)라 불렀다. 1949년에는 황당한 색상이었다.
일부 GM 디자이너들은 뒷날 들라이예에서 영감을 받았다. 하지만 1953년의 올즈모빌 피에스타부터 미국 메이커들은 그처럼 대담한 색상을 쓰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자면 시우칙- 보디의 들라이예는 미국의 유행을 훨씬 앞서 있었던 것이다.

록사스는 프랑스의 이 충격적 명작을 “자동차 사상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나아가는 스타일에 끼친 바다의 영향을 무척 좋아한다. 크롬 트림과 펜더라인은 마치 부서지는 파도와 같다.”고 평가했다. 사실 다이애나 도스보다 들라이예를 먼저 소유한 스타는 50~70년대 허리우드의 섹스 심벌이었던 리타 헤이워드 였다. 혈과 사(血과 砂), 길다, 살로매 등에서 요부로 열연했던 헤이워드는 당시 사우디 왕자인 알리 칸 으로부터 1949년형 들라이예135M를 선물 받고 결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영선 소장 kacime@kornet.net <보이는 자동차 미디어, 탑라이더(www.top-rid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