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 BMW코리아의 'BMW미래재단' 설립행사장에서 한 기자의 질문에 장내가 어수선해졌다. 현대차가 BMW i브랜드 사용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는데, BMW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BMW코리아 김효준 사장은 즉답을 피했다.
이에 앞서 BMW코리아는 22일, 친환경 브랜드 ‘BMW i‘의 독일 상표 등록을 마쳤다고 밝혔다. BMW가 장차 내놓을 전기차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의 이름을 i1~i9 등으로 정하고 판매할 계획이라는 설명이었다. 반면 현대차는 이미 i10, i20, i30등 'i' 시리즈를 세계 시장에 판매중이지만, 정작 상표 등록은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표등록검색시스템(KIPRIS)에 따르면 국내 상표 등록 현황에서도 현대 i시리즈는 'i30cw'와 한글 '아이써티'만이 상표권으로 등록됐고, i30을 비롯해 i10, i20 등은 지나치게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상표권으로 등록되지 못했다. 다만 영문 현대 로고를 붙인 'HYUNDAI i30' 등은 상표등록이 이뤄졌다.
◆ 현대차, BMW…'i' 누가 먼저 썼을까
현대차 측은 'i'시리즈가 현대차의 대표적 해치백 모델로, 2007년 출시 이후 작년 11월까지 세계적으로 179만여대가 팔린 성공적인 서브 브랜드라며 자신이 '원조'라는 입장을 밝혔다.BMW측은 이에 대해 “BMW i는 비록 차는 늦게 나올 예정이지만, 2007년부터 개발해 2008년 3월에 '프로젝트i'라는 팀을 구성하면서 시작된 브랜드”라고 설명했다. “i 뒤에 붙는 숫자가 다르고, 유럽과 미국 등 주요시장 상표권 등록도 했기 때문에 사용에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이미 1991년 '엘란트라(Elantra)'를 해외 시장에 판매하면서 영국 로터스의 엘란의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이름이 '란트라'로 바뀌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후 기아차가 엘란의 명칭을 사들이고 현대와 합병되면서 란트라는 다시 엘란트라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대차의 첫차인 포니도 상표권의 희생양이 될 뻔 했던 전례가 있다. 1974년 출시 당시 '포니'는 미국 포드의 등록상표였다. 포드는 이 이름을 등록만 해놓고 사용하지 않는 상태였기 때문에 현대차는 포드로부터 저렴한 가격에 상표권을 사들일 수 있었다.
이같은 아픈 기억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가 상표권 등록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다. BMW가 독일 현지에서 ’i’ 시리즈에 대한 상표 등록을 마친 동안 현대차 측은 해외 법인이 현지 상표권을 등록했는지 여부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BMW가 상표권을 내세우며 해외시장 판매에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으니, 현대차가 대응을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BMW가 상표권을 내세우는 최악의 상황이 되면 현대차는 BMW를 상대로 상표무효소송까지 제기해야 한다. 하지만 선점을 인정하는 상표권 특성상 승산이 높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만약 BMW와 현대차가 아무런 갈등 없이 서로의 브랜드 영역을 인정한다면 i9은 BMW 자동차, i10은 현대 자동차가 되어버리는 유례없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