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그랑프리가 진행 중이던 2014년 10월 4일 아침, 베텔이 레드불을 떠나기로 했다는 소식은 F1 미디어들을 흥분시켰다. 루머로만 맴돌던 F1 정상급 드라이버들의 대이동이 시작될 분명한 전조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베텔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지난 6년간 함께 했던, 그리고 네 차례나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했던 레드불을 떠난다면, 어딘가 갈 곳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베텔이 팀을 옮길만한 최상위권 팀들에 빈 자리는 없다. 최소한 두 세 명의 자리바꿈은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지난 2006시즌이 끝난 뒤 일어났던 제법 규모가 컸던 정상급 드라이버들의 이동이 올 시즌이 끝난 뒤 재현될 가능성은 한껏 높아졌다. 문제는 베텔의 발표 이후로 열흘 이상이 지나도록 추가적인 뉴스가 들려오지 않는다는 점뿐이다.

과연 베텔을 시작으로 정상급 드라이버들이 재거 소속 팀을 옮기면서 지각 변동이 일어날 수 있을지, 이들의 2015시즌 소속 팀 선택의 쟁점은 무엇인지 네 명의 현역 챔피언들을 중심으로 정리해봤다.

 

▲ 2014 시즌을 끝으로 레드불을 떠나게 된 베텔

1. 베텔: 목적지는 페라리?

레드불을 떠나기로 했지만 아직까지 목적지를 밝히고 있지 않은 베텔에 대해 대부분의 미디어는 그가 페라리로 향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레드불의 팀 수석 크리스찬 호너는 베텔이 팀을 떠나기로 했다는 발표 직후 그가 페라리로 이적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열흘이 지나도록 베텔의 페라리행은 확정 발표되지 않고 있다. 페라리가 거느리고 있는 두 명의 챔피언 중 한 명이 자리를 비워야 하는데, 그 문제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베텔이 페라리로 이적하는 것과 동시에 페라리를 떠날 것이라고 전망되는 드라이버는 알론소다. 라이코넨의 경우 올 시즌 페라리로 이적해 한 시즌 동안 어려운 적응기를 보내고 있지만, 페라리에서 이미 다섯 시즌이나 활약했지만 원하는 성과, 챔피언 타이틀 획득에 번번이 실패한 알론소가 팀을 떠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베텔의 페라리행이 발표되지 않는 이유는 알론소의 거취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전망이 많다.

물론 가능성이 낮긴 하지만 의외의 결과를 예상하는 이들도 있다. 베텔이 맥라렌으로 이적할 것이라는 것이 그 예상인데, 상황에 따라서는 알론소와 베텔이 모두 맥라렌으로 이적할지 모른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현실성이 부족한데도 이런 예상이 나오는 것은 베텔이 일본에 대해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고, 맥라렌의 엔진을 공급할 일본의 혼다가 알론소 혹은 베텔 수준의 최정상 급 드라이버를 원하고 있다는 루머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베텔의 행선지를 조금 무리하더라도 예상해 보면 페라리행이 90%, 맥라렌행이 10% 정도로 추측해 본다.

 

▲ 가장 많은 관계자와 미디어의 관심을 받고 있는 알론소

2. 알론소: 내 미래는 내가 정한다.

보통 정상급 드라이버가 팀을 떠날 때는 어떤 팀으로 이적하기로 했다고 발표하거나, 은퇴를 선언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베텔은 은퇴를 선언하지도 않았고 그럴만한 상황도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답은 페라리에서 한 명의 드라이버가 이미 팀을 떠나기로 정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F1 패독에서는 오피셜만 나오지 않았지 알론소가 이미 마음을 정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알론소의 행선지는 맥라렌-혼다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알론소는 열흘 가까이 자신의 거취에 대해 함구하고 있고, 미디어의 질문에 내 미래는 내가 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비췄다. 하지만 알론소와 맥라렌의 계약이 몇 가지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고, 알론소가 다른 팀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나왔다.

알론소의 메르세데스 행, 혹은 레드불 행에 대한 추측은 근거가 빈약해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메르세데스는 딱 잘라서 알론소가 들어올 자리가 없다고 밝혔고, 레드불은 베텔의 이탈로 빈 자리는 다닐 크비앗이 채울 것이라고 이미 발표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2015 이적 시장의 최대어 알론소가 무리한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만약의 경우 페라리를 나오고 어느 팀으로도 이적을 하지 못할 경우 알론소가 1년의 안식년을 갖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결국 현실적으로 알론소의 미래를 예측한다면 맥라렌으로의 이적이 70%, 페라리 잔류가 20%, 그리고 1년의 안식년을 보내는 것이 10% 정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016시즌까지 염두에 둔 알론소가 1년 동안 맥라렌에서 활동하고 이후 다시 팀을 옮길 것이라는 복잡한 예상도 나오고 있다. 알론소의 미래에 대한 가장 복잡한 전망은 그의 종착지는 메르세데스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 다음 시즌 거취가 불분명해진 뒤 빼어난 성적을 내기 시작한 버튼

3. 버튼: 최악의 경우는 은퇴?

알론소의 맥라렌행이 가시권으로 들어온 가운데, 현재 맥라렌에서 활약 중인 버튼과 마그누센 중 누가 팀을 떠나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이슈가 되고 있다. 일단 맥라렌의 입장에서는 팀이 키웠다고도 말할 수 있는 마그누센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가능성이 높다. F1에서 노장 드라이버로 꼽히는 버튼보다 젊은 마그누센의 발전 가능성에 배팅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랄 수도 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버튼은 상당히 다급해졌다. 일각에서는 버튼이 맥라렌을 떠날 경우 은퇴를 결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미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며 정상에선 경험이 있는 버튼이 중하위권 팀으로 이적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그 이유다. 베텔이 페라리로 이적하고 알론소가 맥라렌으로 팀을 옮긴다면, 더 이상 상위권 팀에 버튼이 차지할만한 시트는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튼에게 답이 그것뿐인 것은 아니다. 시즌 중반 무기력했던 모습을 떨친 버튼은 시즌 후반 들어 마그누센을 확실히 앞서면서 마치 FA를 앞둔 야구 선수처럼 기대 이상의 기량을 보이고 있다. 맥라렌에, 혹은 맥라렌과 같은 수준의 상위권 팀에 남아 F1 그랑프리에 계속 출전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게 포착되고 있는 셈이다. 맥라렌이 과연 한때 영국을 대표하는 드라이버였던 버튼을 방출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깊어 질만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했을 때 버튼의 맥라렌 잔류 가능성은 40~50%는 될 것으로 보인다. 알론소의 맥라렌 이적 여부가 관건이 되겠고, 마그누센의 거취도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맥라렌에 잔류하지 않는다면 버튼은 은퇴나 1년 이상의 안식년을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맥라렌은 팀의 드라이버 라인업을 올 시즌이 끝나기 전 확정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 최근 메르세데스에서 두 번째 4연승에 성공한 해밀튼

4. 해밀튼: 2015년은 메르세데스, 2016년은?

니키 라우다가 나서서 메르세데스에 남을 것이라고 확인했고, 본인도 SNS 채널 등을 통해 팀 잔류 의지를 분명히 하긴 했지만 해밀튼의 중장기 계획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종반으로 접어든 2014시즌 챔피언 타이틀 경쟁이 로스버그와 해밀튼의 집안 싸움으로 좁혀진 상황에서 해밀튼이 2015시즌 팀을 떠날 것이라고 결정해 발표하는 것은 굉장한 무리수가 될 수 있다. 일단 해밀튼에겐 6년만의 챔피언 타이틀 획득이 지상과제다.

2014시즌의 타이틀 경쟁이 최종 전까지 이어진다는 점은 해밀튼의 2015시즌 이적 가능성을 무한히 0에 가깝게 만든다. 더구나 2014년 압도적이었던 메르세데스의 차량 성능은 최소한 2015시즌에 어느 정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어지간한 도박적인 결심이 아니고서는 다음 시즌 팀을 옮긴다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올 시즌 한 마디로 망했다고 평가 받는 레드불도 다른 팀들을 압도하며 2위를 달리고 있다. 다음 시즌 메르세데스의 모든 일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고 했을 때의 예상 수준이 올해의 레드불이라면 팀을 옮기겠다고 지금 결정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2016시즌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3년 연속으로 메르세데스가 압도적으로 강력할 수 있을까 하는 점도 미지수고, 2015년 F1에 참전하는 혼다의 파워 유닛이 2016년쯤 메르세데스를 능가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쯤 되면 2016년에는 해밀튼이 자신의 고향과 같은 맥라렌으로 복귀할 가능성을 얘기하는 것이 그리 허황된 얘기는 아니다. 만약 알론소가 2015년 맥라렌으로 가고 2016년 메르세데스로 옮기기 원한다면 얘기는 더욱 쉽게 풀린다. 물론 이런 상황이 ‘반드시 그렇게 된다’라고 얘기할 정도로 확실한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 변수가 남아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추측’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2015시즌 해밀튼이 메르세데스에 남을 확률은 90% 이상이고 거의 100%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해밀튼과 로스버그가 팀메이트로 챔피언 타이틀 경쟁에 나서는 것은 적어도 한 시즌 더 이어질 전망이다.

예측은 예측일 뿐 언제나 예측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2015시즌 챔피언들의 대이동이 예상되는 F1의 이적 시장도 마찬가지다. 페라리의 라이코넨이 팀을 떠날 수도 있고, 확실하다던 메르세데스의 라인업에 변화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F1에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종종 그 일이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시즌의 라인업이 확정될 때까지 팬들은 목이 빠져라 새로운 소식을 기다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베텔이 칼을 빼 들면서 드라이버의 대이동은 불가피한 수순을 밟고 있다는 점뿐이다.
 

윤재수 칼럼리스트 〈탑라이더 jesusy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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