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싱가포르 그랑프리가 펼쳐지는 동안 재미있는 소식이 들려왔다. 2016년부터 서울 도심에서 시가지 나이트 레이스로 F1 그랑프리를 열자는 제안이 나왔다는 소식이었다. 2013년까지 4년간 개최된 코리아 그랑프리가 2014년 F1 캘린더에서 제외됐고, 2015년은 물론 앞으로의 미래가 매우 불투명한 상황에서 의외의 돌파구가 제시된 셈이다. 물론 현재는 아이디어가 제안된 수준이고 뉴스라기보다는 루머에 가까운 이야기가 전해진 셈이라지만, 서울에서의 나이트 레이스라는 개념만으로도 신선한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진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데 왜 ‘나이트 레이스’라는 보통의 그랑프리 이벤트보다 주목을 받고, ‘서울 나이트 레이스’는 어째서 관심을 가질만한 아이디어가 되는 것일까? 일단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는 맨 뒤로 미루고 F1의 패러다임을 조금씩 바꾸고 있는 나이트 레이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 화려한 불꽃놀이가 이어진 2014 싱가포르 그랑프리

1. 싱가포르 그랑프리의 성공

2008 싱가포르 그랑프리가 치러지기 전까지만 해도 나이트 레이스가 성공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다른 모터스포츠에서 야간에 펼쳐지는 레이스가 적지 않긴 하지만, 모터스포츠의 정점이라고 일컬어지는 F1 그랑프리를 야간에 치른다는 것은 상식을 조금 벗어난 얘기였기 때문이다. 주간에도 충분히 위험한 F1 레이스를 야간에 펼치는 것은 너무 위험해 보였다.

하지만 싱가포르 그랑프리는 보란 듯이 성공을 거뒀다. 이유야 어쨌든 많은 관중들이 싱가포르 그랑프리를 찾았고, F1 관계자나 팬들 모두 싱가포르 그랑프리에 만족했다. 사실 2008년이나 2009년만 해도 경기 내용과 추월이 어려운 서킷의 레이아웃에 대해서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니 사실 불만이 더 많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싱가포르 그랑프리는 꾸준히 얘기했다. 경기 내용이 재미없더라도 레이스가 펼쳐지는 배경은 아름답지 않냐고.

그 말 그대로 싱가포르의 야경은 아름다웠고 레이스가 지루한 국면에 접어들면 비춰지는 마리베이의 화려한 불빛과 멋진 조형물들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드라이버와 팀들에게는 경기 내용이 가장 중요했지만, 흥행을 위해 필요한 것은 경기 내용이 아니었다. 싱가포르는 모나코와는 전혀 다른 접근으로 ‘레이스가 어떻게 진행되든 볼만한 서킷’으로 자리 잡았다. 모든 것은 삭막한 도시를 아름답게 보이게 만들 수 있는 야간의 화려한 불빛 덕분에 가능했다.

 

▲ 2008년 싱가포르와 함께 처음 F1 그랑프리를 유치했던 발렌시아 시가지 서킷

2. 발렌시아 vs 아부다비

싱가포르 그랑프리가 처음으로 F1 캘린더에 이름을 올린 2008년, 또 하나의 시가지 서킷이 그랑프리를 유치했다. 바로 유럽 그랑프리의 이름으로 스페인에서 한 해 두 개째의 그랑프리를 펼치게 된 발렌시아 시가지 서킷이었다. 발렌시아에서의 경기 내용은 싱가포르에 비해 양호했고, 제법 괜찮은 항구 도시의 풍경은 눈요기를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발렌시아는 단 다섯 번의 대회를 치른 뒤 F1 캘린더에서 사라졌다.

싱가포르와 발렌시아의 시가지 서킷에서 F1 그랑프리가 열린 이듬해인 2009년, UAE의 인공 섬에서 또 하나의 그랑프리가 새로 개최됐다. 바로 아부다비 그랑프리였다. 아부다비 그랑프리는 독특한 스탠스를 취했다. 늦은 오후에 레이스를 시작해 해가 진 뒤 레이스가 끝나는 반 쪽짜리 나이트 레이스를 펼쳤고, 서킷은 마리나 구간과 서킷 내의 호텔 아래를 가로지르는 어느 정도 시가지 서킷의 느낌을 가진 레이아웃이 제공됐다. 경기 내용은 F1 그랑프리 중 최악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좋지 않았지만, 악평에도 불구하고 아부다비 그랑프리는 시즌 종반 F1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발렌시아와 아부다비의 성패가 갈린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자국 내 수퍼 스타를 보유한 스페인에서, 지중해의 제법 지명도 있는 항구 도시를 배경으로 삼았지만 발렌시아는 경기 내용이 조금이라도 재미없다는 비판이 나왔을 때 이를 상쇄할 매력 포인트가 없었다. 반면 아부다비는 F1에서도 유례가 없는 물량 공세로 ‘가진 자들의 잔치’를 더욱 사치스럽게 만드는데 초점을 맞췄다. 모나코, 싱가포르와 나란히 가장 사치스러운 무대는 아부다비에 해가 진 뒤 더욱 아름답게 빛났다.

단순하게 나이트 레이스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가 발렌시아와 아부다비, 나아가서 싱가포르의 흥행을 결정했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나이트 레이스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무대를 만들었는가, 그리고 한없이 사치스러운 F1 그랑프리와 어울리는 배경그림을 제공했는가의 여부가 이들의 성패에 영향을 줬다고 보는 것은 가능하다. 결국 21세기 들어 새로 F1 그랑프리를 개최한 곳 중 ‘모터스포츠 인프라와 자동차 문화가 튼튼한 나라’를 제외하고 자신 있게 성공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단 두 개의 그랑프리, 싱가포르 그랑프리와 아부다비 그랑프리는 모두 화려함과 사치스러움이 극에 달한 밤의 불빛에 걸맞은 대회를 꾸려나감으로써 F1 무대에 성공적으로 발을 들였다고 할 수 있다.

 

▲ 2014년부터 나이트 레이스로 탈바꿈한 바레인 그랑프리


3. 나이트 레이스로의 비중 확대

2014년 F1에 또 하나의 나이트 레이스가 탄생했다. 2013년까지는 평범한 낮 시간에 레이스를 펼치던 바레인 그랑프리가 그 주인공이었다. 낮 시간대의 레이스 중에서도 재미없는 레이스로 악명 높았던 바레인 그랑프리는, 경기 내용과 관계 없이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의 트랙이 볼 품 없는 것으로도 말이 많았다. 바레인 그랑프리는 이런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 나이트 레이스라는 새로운 선택을 했다.

결국 나이트 레이스로 펼쳐진 2014 바레인 그랑프리는 경기 내용과 볼거리 면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우연하게도 레이스는 F1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각 팀의 팀메이트간 치열한 배틀로 뜨겁게 달아올랐고, 트랙 전체에 배치된 화려한 조명이 빛나는 레이스의 배경은 이전까지 바레인 그랑프리와는 전혀 다른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어냈다. 나이트 레이스의 선택은 적어도 첫 해에는 성공적이었다.

물론 나이트 레이스로 탈바꿈했다고 해서 바레인 그랑프리가 바로 싱가포르 그랑프리나 아부다비 그랑프리의 수준에 근접했다고 볼 수는 없다. 나이트 레이스로 어느 정도 포장이 되기는 했지만 황량한 사막의 배경은 허전함을 완전히 감출 수 없었고, 도심 레이스에서와 같은 관중들의 열기를 찾아볼 수도 없었다. 결국 바레인 그랑프리의 나이트 레이스는 미봉책의 한계를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저 나이트 레이스로 포장하지 않았다면 대회의 미래가 불투명할 정도로 좋지 않았던 이미지를 어느 정도 상쇄한 데 만족해야 했다.

 

▲ 2016년 나이트 레이스 추진 이야기가 나온 서울의 야경

4. 서울 나이트 레이스?

그렇다면 과연 서울에서의 나이트 레이스는 성공적일 수 있을까? 일단 대회의 성사 여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아직 이른 느낌이다. 국내의 제반 여건을 준비하는 것부터 문제는 산적해 있다. 그나마 서울 나이트 레이스의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F1 수푸리모 버니 애클스톤을 비롯해 F1 수뇌부의 반응이 좋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여건만 마련된다면 2016 F1 캘린더에 이름을 올리는 과정은 생각보다 순탄할지 모른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여건이 마련될 수 있을지 여부는 짐작하기 어렵다. 당장 영암에서의 코리아 그랑프리가 4년만에 장벽을 만난 상황이고, 국내 모터스포츠 열기가 크게 달궈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서울시에서 장기간 도로 교통 통제나 제한이 불가피한 시가지 레이스를 쉽게 허가해줄지 여부도 알 수 없다. 세상 모든 일보다 도로 교통 상황에 민감한 서울 시민들의 관점 전환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모든 상황을 종합해 봤을 때 서울 나이트 레이스의 실현 가능성은 안개 속이라고 할 수 있다.

실현 가능성에 대한 얘기를 배제하고 서울 나이트 레이스가 펼쳐졌을 때의 성공 가능성만을 예상하자면 제법 전망이 밝다. 전용 서킷에서의 주간 경기와 비교하면 시가지에서의 나이트 레이스는 장점이 뚜렷하고, 서울은 영암과 비교하면 관중 동원이나 숙박 문제에서도 여유가 많다. 무엇보다 서울의 야경은 외국인들에게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 한강이나 남산 등에 5km 전후의 시가지 서킷을 디자인할만한 도로 여건도 좋은 편이다. 보기 좋고 흥행 가능성이 있다면 이벤트가 성공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결과적으로 서울 나이트레이스의 가장 큰 난관은 기관으로부터 승인을 받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서울 나이트 레이스에서 철저히 대비해야 되는 문제는 ‘경제 효과’와 관련된 부분이다. 이미 영암에서의 코리아 그랑프리가 수익성 문제로 언론과 여론의 집중 포화를 받은 상황에서, 보다 출혈이 클 수 밖에 없는 도심 시가지 레이스를 어떻게 홍보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여부가 대회의 성공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싱가포르 그랑프리는 대회 자체의 수익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막대한 홍보 비와 엄청난 규모의 부대 행사를 함께 진행해 성공을 담보했다. 싱가포르 그랑프리 수준의 각오와 준비가 없다면 영암에서의 코리아 그랑프리 이상의 후 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서울 나이트 레이스는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자동차와 모터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별다른 의미가 없겠지만, F1 팬이라면 서울 나이트 레이스의 추진 소식은 그 실현 여부와 관계 없이 기분 좋은 소식이다. 앞으로 구체적인 추진 계획이 공개되고 대회 유치가 현실화된다면 국내 자동차 문화와 산업 전체에도 큰 이슈가 될 것이다. 서울 나이트 레이스가 추진된다면 부디 철저한 준비와 과감한 투자로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멋진 이벤트가 되기를 바란다. 반대로 여러 가지 문제를 간과하고 무리하게 대회가 추진되는 상황만큼은 절대 없어야 하겠다.

윤재수 칼럼리스트 〈탑라이더 jesusy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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