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2014 일본 그랑프리에서 큰 사고가 일어났다. 사건의 시작은 수틸의 사고였다. 빗줄기가 강해진 레이스 후반 자우버의 수틸이 컨트롤을 잃고 그대로 타이어월로 돌진했다. 사고차량을 신속하게 치우기 위해 ‘바로 정차할 수 있을 정도로 서행할 것’을 지시하는 더블 옐로우 플랙이 사고 지점 부근에 펄럭이기 시작했고, 수틸의 차량을 들어 옮길 중장비가 방호벽 안쪽으로 진입했다. 그러나 사고 처리를 막 시작할 무렵 마루시아의 비앙키가 수틸과 거의 같은 지점에서 차량의 컨트롤을 잃는 불상사가 잃어났다. 조종 불능이 된 비앙키의 레이스카는 빠른 속도로 트랙을 벗어났고, 수틸의 차량을 치우기 위해 방호벽 안으로 들어 온 로더의 뒷부분을 강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스가 중단되었고 의식을 잃은 비앙키는 앰뷸런스에 실려 인근 미에 종합병원으로 옮겨졌다. 머리에 큰 부상을 입은 비앙키는 매우 위독한 상황에서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25세의 젊은 나이에 큰 부상을 입은 쥴스 비앙키가 사고의 아픔을 딛고 꼭 건강하게 회복되기를 바라며, 다시는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고 상황과 그 주변을 둘러싼 몇 가지 의문점에 대해 짚어보겠다.

 

▲ 먼저 작은 사고를 당한 뒤 비앙키의 사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수틸

1. 레이스 시간은 바꿀 수 없었나?
2014년 10월 5일 일본 그랑프리가 펼쳐진 스즈카는 이미 태풍 판폰의 간접적인 영향권에 들어있었다. 비가 내리고 트랙이 어느 정도 젖은 ‘웻 컨디션’에서도 F1 레이스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강한 바람과 함께 많은 비가 내리는 태풍 속에서의 레이스는 생각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물론 오후 3시로 예정되어 있던 시간이나,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레이스가 종료될 시간인 오후 5시 정도에 강풍과 폭우가 서킷을 덮치리라는 예보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일기 예보가 100% 정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는 적지 않았다.

강풍과 폭우도 문제지만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시야 확보의 문제였다. 만약 비 때문에 레이스의 흐름이 느려지고 레드 플랙이 나와 시간이 지연된다면, 레이스 후반 서킷에서 드라이버들이 시야를 확보하는 것은 많이 어려워질 수 있었다. 비 때문에 트랙이 젖었다면 차가 지날 때마다 많은 스프레이가 뿌려져 사실상의 물안개가 시야를 방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간이 너무 늦어지면 어두워진 하늘 아래에서 드라이버들은 앞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볼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었다. 눈을 가리고 F1 레이스카를 모는 것에 준하는 상황만큼은 피해야 했다.

실제로 이런 문제를 우려해 2014 일본 그랑프리 레이스 시간을 앞당기기 위한 논의가 있었다. 아쉽게도 이미 예정돼 있던 레이스 시간에 맞춰 전 세계의 TV 방송 시간이 맞춰져 있었고, 많은 방송사의 위성 예약은 하루 사이에 조절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넘어서 있었다. 결국 프로모터 측과 FOM은 계획된 오후 세 시의 레이스 시작 시간을 유지하기로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 레이스의 중계나 상업적 문제가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안전보다 우선된 것이 비앙키의 사고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갖는다.

 

▲ 비앙키를 인근 미에 종합 병원으로 이송한 구급차

2. 긴급 후송 시스템은 정상적이었나?
FOM이나 프로모터가 어떻게 생각하든, 대회를 주관하는 FIA만큼은 철저히 ‘안전을 우선’으로 여긴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FIA의 취지는 그렇다. 사고를 피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발생한 사고를 적절히 처리하고 부상과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도 ‘안전 우선’에 포함된다. 드라이버를 포함해 이벤트 중 발생한 부상자를 신속하게 이송하는 F1 그랑프리의 긴급 후송 시스템도 그런 취지에 맞게 준비된다. 대표적인 것이 의료 헬리콥터를 대기시키는 부분이다.

F1 레이스카가 달리던 중 누군가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다면 큰 부상인 경우가 많고, 큰 사고가 났다면 일분일초를 다투는 빠른 후송이 필요할 수 있다. 때문에 F1 그랑프리가 열리는 서킷에는 긴급 후송을 위한 의료 헬리콥터의 대기가 의무화돼 있다. 4, 5년에 한 번 사용할까 말까 한 의료 헬리콥터지만, 2013 미국 그랑프리의 첫 번째 연습 주행처럼 의료 헬리콥터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아예 트랙에 레이스카가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FIA다.

그러나 2014 일본 그랑프리에서 머리에 큰 부상을 당해 신속한 치료 혹은 수술이 요구됐던 비앙키는 헬리콥터가 아닌 구급차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처음에는 악천후 때문에 헬리콥터가 뜨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얘기가 나왔고, 그 뒤로는 헬리콥터가 뜰 수 없었던 게 아니라 미에 종합 병원에 헬리콥터 착륙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구급차 이송을 택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시간이 좀 더 지나서 사고 상황이 면밀히 검토되어야 알 수 있겠지만, 두 상황 모두 ‘헬리콥터를 긴급 후송에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레이스를 진행한 것은 용납될 수 있는 일일까?

 

▲ 시야 확보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던 2014 일본 그랑프리의 레이스

3. 레이스카의 안전 기준은 충분한가?
1995년부터 FIA의 철저한 검토와 연구, 실험과 개발을 통해 진화된 현재의 F1 레이스카는 모든 모터스포츠는 물론 그 어떤 자동차와 비교해도 가장 안전한 자동차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250km/h의 속도로 방호벽을 들이받은 드라이버가 스스로 만신창이가 된 사고 차량에서 빠져 나오는 장면은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20년 간 레이스카 안전 기준의 발전은 그 어떤 분야보다도 빠르게 이뤄졌다. 적어도 현재의 F1 레이스카는 매우 안전해졌고, 동시에 그랑프리가 개최되는 서킷의 안전 기준을 끌어올려 사고 상황에서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공교롭게도 비앙키와 같은 마루시아 소속의 테스트 드라이버였던 데비요타는 테스트 주행 중 사고로 한쪽 눈을 잃었고, 1년 뒤 사고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무리 안전한 레이스카가 되었다고 해도, 100% 안전을 장담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번 비앙키의 사고는 현재 F1 레이스카의 안전 문제를 다시 한 번 총 점검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안전 기준이 높다고 생각했던 F1이었지만, 단 한번의 사고가 이런 생각을 뒤엎어버렸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도대체 어디를 손봐야 할 것인지 쉽게 답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이 2009년 마싸의 사고 이후 실험 중인 ‘캐노피’에 대한 부분이다. 캐노피는 드라이버의 머리 부상을 현저하게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이지만, 다른 안전 문제에 오히려 취약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있는데다가, ‘오픈 콕핏’이라는 포뮬러의 기본적인 개념에 위배된다는 문제가 걸림돌이 된다. 캐노피의 도입 주장은 심하게 말하면 ‘경주용 싸이클이 위험하니 세 바퀴 자전거로 하자’는 주장과 같은 느낌을 준다. 덕분에 캐노피는 몇 차례 실험만 되었을 뿐 실제 투입 가능성은 극도로 낮은 상황이다.

레이스카의 노즈 높이를 조절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과거 비요타의 사고도 그랬던 것처럼, 비앙키의 사고도 상당히 낮은 차고가 부상을 더 크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포뮬러 레이스카를 일반 승용차처럼 높게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심지어 비앙키의 사고를 막을 정도로 충분히 높았던 것도 아니지만, F1의 규정은 점차 노즈를 낮추는 쪽으로 변화돼왔다. 이 역시 안전한 레이스카를 만들기 위한 조치였다. 어떻게 보면 레이스카의 노즈를 높이는 것도 문제, 낮추는 것도 문제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은 극도로 난해한 문제 일 수 밖에 없다.

 

▲ 비앙키의 사고와 함께 경기 종료로 이어진 두 번째 레드 플랙 상황의 핏레인

4. 같은 유형의 사고 재발을 방지할 방법은 없는가?
당장 레이스카의 디자인을 손봐서 같은 사고를 확실히 막을 수 없다면, 과연 비슷한 유형의 사고 재발을 막는 것은 가능할까? 대부분 극단적이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방법이기 때문에 손쉬운 해결책이 나오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비앙키가 당한 사고와 같은 유형의 사고라면 예방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트랙에 진입하는 중장비에 F1 레이스카의 바디워크와 같은 방식으로 충돌 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크래시 스트럭처를 스커트 형태로 추가하는 방법이 있다. 이 경우 비앙키와 같은 사고가 나더라도 일단 드라이버의 머리가 중장비의 차체에 직접 부딪히는 사고는 줄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방법은 현실적으로는 고려하기 어렵다. 표준화되지 않은 트랙 차량들에 공통된 안전 장비를 구비하는 것도 어렵고, F1 레이스카의 크래시 스트럭쳐나, 텍프로 배리어 방식의 보호대를 두르게 하는 것은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 적어도 당분간 스커트를 추가하는 방법은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더블 옐로우 플랙 기준을 강화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핏레인 속도 제한처럼 더블 옐로우 플랙이 선언된 구간에서는 일정 속도 이하로 달리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각 구간마다 안전한 속도를 미리 정하는 것도 너무 복잡한 일인데다가, 비앙키의 사고가 난 던롭커브가 그다지 빠른 코너 구간은 아니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이 역시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렇다 할 묘수가 떠오르지 않기는 하지만 꼭 추진되었으면 하는 두 가지 방안은 있다. 첫 번째는 유럽 시청자의 TV 시청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레이스 시간대를 옮기는 방법이다.

이번 일본 그랑프리의 사고 역시 오후 5시 무렵 많이 어두워진 트랙의 시야 확보 문제가 악영향을 줬다. 그렇다면 나이트 레이스를 제외한 모든 레이스를 오후 1시에 시작하도록 옮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현장을 찾은 관람객이 충분히 레이스데이를 즐기고 빠져나갈 시간을 마련하는데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 단 하나 남은 문제는 유럽 시청자들이 이른 새벽에 중계를 보기 어렵다는 것 하나 분이다.

또 하나 추진했으면 하는 방안 역시 드라이버의 시야 확보와 관련된 것이다. F1 레이스카에 수백 개의 센서가 달려 있고, FIA와 피렐리 타이어 등도 그랑프리 기간 중 수많은 데이터를 시시각각 측정한다. 마음만 먹는다면 드라이버의 시야 지수나 실시간 강우량 등도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한계를 정해놓고 일정 기간 너무 비가 많이 왔을 때, 세이프티 카 소환과 레드 플랙을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 스핀 하거나 사고가 나기 전에 미리 대비하자는 뜻이다.

드라이버 시야 문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너무 시야가 나빠져 위험한 상황에 이르기 전 레이스 컨트롤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많은 연구가 필요하고 각 팀과 드라이버들의 의견도 반영해야겠지만, 부디 다방면으로 안전‘기준’을 만드는 입장에서 사후약방문이 아닌 방법이 미리 시도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고가 일어난 뒤에는 너무 늦을지 모른다.

2014 일본 그랑프리에서 쥴스 비앙키는 너무 운이 없었다. 다른 드라이버와 정확히 같은 지점에서 사고가 난 것도 운이 없었고, 미끄러지는 진행 방향에 중장비가 들어와있는 위치도 운이 없었다. 하지만 운이 있든 없든 사고는 피해야 한다. 2007 유럽 그랑프리에서처럼 같은 위치에서 여러 대의 차량이 컨트롤을 잃는 상황은 또다시 벌어질 수 있다. 그리고 F1이라는 최고의 모터스포츠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운이 없는 사고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것이 아니라 아무리 운이 없어도 큰 사고나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사전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면 F1은 존폐의 위기에 빠질지도 모른다.

윤재수 칼럼리스트 〈탑라이더 jesusy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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