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F1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가장 큰 사건은 뭐니뭐니해도 2랩째 벌어진 로스버그와 해밀튼의 접촉 사고였다. 접촉과 함께 로스버그의 프론트 윙 오른쪽 엔드플레이트가 파손되며 하늘로 날아올랐고, 해밀튼의 타이어는 펑처가 생긴 뒤 터져버렸다. 결국 해밀튼은 의미 없는 레이스를 이어가다 리타이어했고, 로스버그는 프론트 윙 교체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면서 우승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문제는 단지 소속팀 메르세데스가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원하던 성적을 거두지 못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해밀튼은 리타이어 직후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고, 팀 수뇌부도 격노했다. 사건 당사자인 두 드라이버는 경기 후 서로 엇갈린 인터뷰를 남겼고, 팀의 긴급 소집과 형식적인 화해가 이어졌다. 과거 더없이 친했던 해밀튼과 로스버그의 관계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됐다. 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펼치는 치열한 승부 앞에, 더 이상 팀메이트도 친구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F1 2014 시즌 후반기를 뜨겁게 달굴 것으로 예상되는 로스버그와 해밀튼의 갈등을 둘러싼 이야기 몇 가지를 아래에 정리해 보았다.

 

▲ 2014 벨기에 그랑프리의 운명을 바꾼 해밀튼과 로스버그의 사고

 

1. 로스버그는 고의로 사고를 일으켰나?

로스버그와 해밀튼 사이에 벌어진 접촉 사고의 책임은 로스버그에게 있다. 사고에 대해 보다 많은 책임이 있다고 해서 고의로 사고를 일으켰다는 뜻은 아니지만 메르세데스 팀 미팅에서 로스버그는 책임을 인정했고, ‘의도적이었다’는 점을 시인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물론 고의로 해밀튼의 타이어에 펑처를 일으키기 위해서 사고를 일으켰다는 뜻은 아니다.
의도적으로 사고 상황을 불러온 것과 상대에게 해를 입히기 위해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것 사이에는 미묘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일단 의도적으로 상대의 타이어에 펑처를 일으키기 위해 접촉을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뒤따르는 F1 레이스카의 프론트 윙과 앞선 레이스카의 타이어가 접촉했을 때, 앞선 차량의 타이어가 펑처를 일으킬 확률은 채 절반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뒤따르던 차량의 프론트 윙이 손상될 확률은 90%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로스버그가 ‘접촉’ 자체는 의도했다고 하더라도 해밀튼의 펑처와 리타이어까지 생각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하위 포뮬러에서는 이런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심심치 않게 앞선 차량의 타이어에 슬쩍 접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앞 차량이 잠시 자세를 잃을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펑처가 생길 수 있다면 프론트 윙 손상에 비해 피해가 막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스버그가 스파-프랑코샹에서 가장 자세 제어가 어려운 곳 중 하나인 레 꽁브에서 이 모든 것을 순간 생각하고 가속 페달을 밟았을 가능성은 많지 않다. 오히려 상대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는 로스버그는 ‘배틀 이 벌어졌을 때 나도 과격하게 밀고 들어갈 수 있다’고 얘기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로스버그가 의도적으로 해밀튼의 레이싱 라인을 침범했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 행동이 정당했다고는 볼 수 없더라도.

 

▲ 유소년기 우정을 쌓았던 해밀튼과 로스버그

 

2.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은 두 드라이버의 책임인가?

해밀튼과 로스버그가 돌이킬 수 없는 갈등 상황에 접어들고 직접적인 접촉 사고로까지 이어진 것은 과연 두 드라이버의 책임일까? 최소한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벌어진 사고는 로스버그 혹은 해밀튼이 책임져야 하는 일일까? 아마도 팀에서는 로스버그에게 책임을 묻고 어떤 불이익일 주었겠지만, 적어도 제3자의 입장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은 드라이버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다.

해밀튼의 입장에서는 로스버그와의 배틀 에서 보였던 몇 차례의 거친 움직임에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다. 지난 헝가리 그랑프리에서는 로스버그를 보내주라는 팀 라디오의 지시에 ‘어떤 이유로든’ 따르지 않았다. 로스버그는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레이스가 시작되고 한랩 반이 채 지나기 전에 메르세데스 팀 내부의 절대적인 규칙 ‘두 대가 무사히 레이스를 마치는 한에서의 경쟁’을 명백하게 어겼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경우, 두 드라이버는 문제의 원인이 될만한 행동을 계속해왔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는 메르세데스의 팀 수뇌부가 이런 문제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계속 갈등이 커지는 것을 방치한 것이다. 팀 수뇌부는 승부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드라이버들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팀의 방침과 어긋나는 행동을 할 수 있다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F1 드라이버들을 통제하려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다른 모든 팀 관계자들도 알고 어지간한 팬들도 알고 있다.

아쉽게도 메르세데스는 올 시즌부터 유례가 없는 집단 지도 체제를 구성했는데, 팀의 책임자가 패디 로인지 토토 울프인지, 혹은 니키 라우다인지 혼동될 때가 있을 정도다. 레이스에서는 분명 패디 로가 책임을 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가 전면에 나서는 장면을 프레스 컨퍼런스 이외의 장면에서 목격하기는 매우 힘들다. 이처럼 팀의 지도 체제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가뜩이나 승부에 집착하는 F1 드라이버들이 쉽게 말을 들을 가능성은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드라이버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 바레인 그랑프리에서 치열한 배틀을 벌인 뒤의 로스버그와 해밀튼

3. 팀메이트간의 과열 없는 경쟁 관계는 불가능한가?

로스버그와 해밀튼의 경우에서 극명하게 나타난 팀메이트간 과열 경쟁은 F1에서 보기 드문 일이 아니다. 60년이 넘는 F1 역사에서 팀메이트간에 불화를 넘어 심한 갈등이 나타난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아일톤 세나와 알랑 프로스트의 경우가 그랬고, 디디에 피로니와 질 빌너브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F1 초창기인 1950년대에도 페라리에서는 팀메이트간 갈등이 극에 달한 역사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팀메이트간에 갈등이란 표현이 필요 없는 선의의 경쟁은 불가능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하다. 두 드라이버의 성향이 현저하게 다를 경우, 경력이나 나이 차이가 심할 경우 팀메이트가 서로 협조하거나 별다른 충돌 없이 제 갈 길을 가는 경우도 많았다. 무엇보다 소속 팀의 레이스카가 경쟁력이 없거나 챔피언 타이틀 도전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무난한 모습을 보인 예가 많다. 안타깝게도 해밀튼과 로스버그의 관계는 이 모든 조건에 모두 부합하지 않는다.

로스버그와 해밀튼은 같은 1985년생으로 나이가 같은 것은 물론 거의 비슷한 커리어를 통해 F1에 진출했다. F1 데뷔는 로스버그가 1년 빨랐지만 GP2 챔피언에 오른 뒤 바로 F1에 진출한 것도 똑같다. 두 드라이버의 드라이빙 스타일은 약간 차이가 있지만, 페라리의 알론소와 라이코넨처럼 현격하게 다른 것이 아니다. 각자의 브레이킹 포인트와 레이싱 라인을 참고하고 떠라 할 정도면 크게 다른 스타일이라고는 볼 수 없다. 무엇보다 현재 메르세데스는 눈에 띄는 위협 없이 챔피언 타이틀을 노리고 있다. 로스버그와 해밀튼 두 명 중 한 명이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은 경쟁을 과열시키고 있다.

사실 지난해 메르세데스가 챔피언 타이틀을 노리기엔 많이 부족했던 때에도 두 드라이버의 갈등은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특히 시즌 초반 말레이지아 그랑프리에서 팀을 이끄는 로스 브런의 팀 오더가 이런 갈등을 미연에 방지했을 뿐 갈등의 싹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3위 자리를 놓고 팀 오더를 따른 로스버그는 ‘이 날을 기억하라’고 이야기했었고, 1년이 지나 결국 그 갈등은 폭발하고 만 것이다. 아쉽게도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팀메이트간의 선의의 경쟁은 메르세데스의 영건들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 서서히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로스버그와 해밀튼

 

4. 메르세데스의 라인업은 다음 시즌에도 유지될까?

일단 2014시즌은 두 드라이버간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큰 이변이 없다면 메르세데스의 챔피언 타이틀 획득이 매우 유력하다. 컨스트럭터 타이틀은 물론 드라이버 타이틀 역시 어지간한 변수가 괴롭히지 않는 한 로스버그 또는 해밀튼 중 한 명이 차지할 것이다. 둘 중 누가 승자가 될지는 모르지만, 미봉책으로 화해한 두 드라이버는 ‘표면상’ 틀을 지키는 경쟁을 펼칠 것이다. 두 드라이버 모두 가슴이 머리를 앞서는 드라이버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현재 메르세데스의 드라이버 라인업이 2015시즌에도 유지될지에 대해서는 장담하기 어렵다. 둘 중 한 명이 팀을 떠날 가능성도 있지만, 반대로 불만을 품고라도 최강 팀에 남으려는 의지가 우선할 수도 있다. 메르세데스 팀으로서는 독일 내셔널 팀을 추구하면서 기대를 걸었던 로스버그가 남기를 바랄 것이고, F1 데뷔 이후 항상 챔피언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었던 해밀튼을 놓치기 싫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르세데스가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현재의 드라이버 라인업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현명한 결정인지에 대해선 의문 부호가 따른다.

로스버그는 일단 메르세데스와 다년 계약을 맺은 상태지만 해밀튼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이미 맥라렌에서 알론소 혹은 해밀튼을 노린다는 (다소 신빙성이 떨어지는) 루머가 나오기도 했다. F1에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종종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난다는 격언은 드라이버의 계약 문제에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다. 튼튼해 보였던 팀과 드라이버의 계약이 휴지조각이 돼버린 예도 많은 이상 섣부른 예상은 어렵다. 분명한 것은 두 드라이버가 그대로 팀에 남든 누군가가 떠나든 앞으로 F1에 큰 이슈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과열 경쟁을 벌인 두 드라이버의 운명은 언제나 호사가들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아무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 것보다는 무언가 특별한 일이 벌어지는 편이 흥행에는 도움이 된다. 팬들도 모두가 순진한 모범생에 마냥 착한 행동만 하길 바라지는 않는다. 과도한 팀오더로 드라이버를 관리하던 2000년대 초중반 페라리의 모습을 싫어하는 팬들도 많다. 하지만 통제를 벗어난 드라이버 경쟁의 과열이 ‘좋지 않은’ 모습을 연출하는 것 또한 F1 팬들이 보고 싶어하는 장면은 아니다. 메르세데스 팀의 정책이 그렇지만 팬들이야말로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가장 빠른 팀의 팀메이트가 치열하게 경쟁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 2014 바레인 그랑프리는 재미 없기로 소문난 그랑프리를 가장 재미있는 그랑프리 중 하나로 바꿔놓았고 그 중심에는 해밀튼과 로스버그의 치열한 선두 경쟁이 있었다. 두 드라이버는 치열하게 배틀을 펼쳤지만 놀랍게도 수많은 추월 시도 속에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2012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슈마허와 라이코넨이 그랬던 것처럼 ‘어떻게 저렇게 나란히 달리면서 부딪히지 않을 수 있을까?’하는 배틀 이 바로 팬들이 보고 싶은 장면이다. 로스버그와 해밀튼 역시 충분히 그럴 능력을 지닌 드라이버들이다. 문제는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하고 싶은, 이기고 싶은 마음이다. 승부 앞에 친구란 없다.
 

윤재수 칼럼리스트 〈탑라이더 jesusy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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