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분야에 출입하고 있어서인지, "요즘 어떤 차가 좋으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를 들어가보더라도 "어떤  차는 좋고, 어떤 차는 나쁘다"식의 단정적인 문구가 나온다. 이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마치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우수한 차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좋은 차란 무엇일까

좋은 차를 선택하기 위해선 본인이 어떤 자동차를 원하는지를 먼저 돌이켜봐야 한다. 자동차를 장보러 갈 때 사용하려는 것인지, 구멍가게에 담배를 사러 가기 위해선지, 생활 필수품인지, 취미로 즐기기 위한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막연히 경제와 공업기술의 총아로서 소유하고 싶은 것인지, 혹은 허세부리기나 여자 꼬시기용으로든, 혹은 친구나 연인 대신으로 구입하는 경우도 있겠다. 혹은 영업용 생존수단이거나 감정의 배출구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서든 자동차란 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선택해야 할 차는 전혀 달라진다.

예를 들어서 8천만원짜리 BMW Z4 컨버터블을 보자.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하드톱을 열면 트렁크에는 손가방 하나를 간신히  넣을 수 있을 정도로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 남는다. 게다가 2인승이기 때문에 처자식이 있는 남자라면 구입할 때 눈총을 받게 될 듯 하다. 당연히 골프장에 가지고 가기도 민망하고, 마트에 다녀오는데도 부족하다. 그렇다면 이 차는 전혀 쓸모 없는 차인가.

▲ BMW Z4

하지만 이 차는 운전의 재미가 여느 스포츠카 못지 않게 훌륭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수준의 드라이빙 취미를 만족 시키는데는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이 차는 인기리에 방영된 TV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백화점 재벌 현빈이 타고 나와 하지원을 비롯한 수많은 여성들을 한눈에 반하게 한 바로 그 차다. 말하자면 하드톱 천장을 열면 저절로 길라임이 뛰어들 것 같은 디자인이다. 이런 차를 원했던 사람에게는 더 없이 좋은 차다.

패밀리 세단을 볼때도 마찬가지로 그에 맞는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르노삼성 SM7에 스포츠카 같은 강력한 엔진이 장착되지 않았다고 해서 비난하는 것도 역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아름다운 코끼리를 보며 얼룩말의 늘씬한 다리가 아니라고 흠잡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하겠다.

차량의 용도를 먼저 선택하자

국내는 소형차, 중형차, 대형차라는 식으로 크기나, 2000cc급, 3000cc급 하는 식으로 단순히 배기량 따위를 기준으로 차를 구분해왔다. 그러다보니 판단기준조차 모호해진다.

자동차 선진국에서도 차량을 구분하는 방법은 이와 조금 다르다. 상황에 따라 매번 달라지겠지만 컨슈머리포트가 매년 뽑는 '최고의 차(Top Picks)'의 분류를 예를 들어보자. 이 기관은 차량을 저가차, 패밀리세단,  소형 세단, 스포티카, 소형SUV, 패밀리 SUV, 스포츠세단, 미니밴, 픽업트럭 등으로 나눠 놓고 있다.

이처럼 자동차 선진국에선 일반적으로 차량의 크기나 배기량보다는 용도에 따라 나눠 놓는게 보편적이다.
내가 사려는 차가 어떤 것인지를 확고하게 정한 후 차량을 선택해보면 의외로 선택이 쉬워진다.

- 저가차(Budget car)

업무용차라거나 실생활형 차량처럼 무엇보다 예산이 중요한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경차나 소형차들을 선택할만 하다.

사실 요즘 시대에 싸고 훌륭한 차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 싼 차는 필연적으로 저렴한 실내 소재로 만들어졌거나, 남에게  보여주기 좀 창피하거나, 그리 멋진 디자인이 아니다. 그렇게 만들어야만 자동차 제조사들도 비싼 차를 팔 수 있을테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 기아차 모닝

그러나 싸면서 나쁘지 않은 차는 찾아보면 꽤 있다. 차량의 가격대는 카톡(http://www.cartok.co.kr)이라는 사이트에서 비교해보면 좋다.

싼 차를 구입할 때는 실내가 충분히 넓은지, 조작이 불편한 부분은 없는지, 수납공간이 넉넉한지 등을 반드시 실제로 주행해가며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최근 경차나 저가 소형차에도 다양한 옵션을 선택할 수 있는데,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는게 아닌만큼 저렴한 차를 구입할 때는 당초 목적에 맞게, 비싼 옵션들을 모두 제외하는게 낫다.

그러나 안전옵션은 결코 포기해선 안된다. 에어백 같은 장비는 이제 표준화 되고 있지만, 이 못지 않게 중요한 ABS나 VDC 같은  장비는 은근 슬쩍 빠지는 경우가 있다. 아무래도 작은 차일수록 차량간 사고가 발생하면 인명 피해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고, ABS와 VDC 같은 안전장비는 폐차할 때까지 사고를 단 한번만 막아줘도 본전은 톡톡히 하는 것이므로 무슨 수를 써서든 장착하는게 좋다.

- 패밀리세단 (Family sedan)

수입차로는 도요타 캠리나,  혼다 어코드, 폭스바겐 파사트 등이 이 분류에 속할 것이고 국산차로는 쏘나타나 K5 등이 패밀리세단이라 할 수 있다. 패밀리세단은 말 그대로 가족을 위한 차다. 나만을 위한차가 아니기 때문에 가족의 의견을 가장 중요하게 반영해서 차를 골라야 한다.

최근 쿠페 스타일의 패밀리 세단이 늘고 있는데, 이 차들의 가장 큰 취약점은 뒷좌석의 머리공간이다. 뒷좌석에 성인이 타는 경우가  많다면, 뒷좌석에 똑바로 앉아 머리공간이 넉넉한지 살펴봐야 한다. 의외로 남성이 앉으면 천장에 머리가 닿는 차가 많다.

▲ 현대차 쏘나타

때로는 천장에 머리 공간만 깊숙히 파놓고 좌우는 낮게 떨어지는 형태도 있다. 그조차 어려우면 반대로 시트 바닥을 움푹 패이게 해서 머리공간을 억지로 만든 경우도 있다. 이런차는 착좌감이 불편하거나 차에 드나들 때 머리가 부딪치기 쉽다.

더구나 선루프가 있으면 뒷좌석에 앉았을 때 개방감이 좋아지지만, 선루프 시스템이 작동하는 두께만큼 천장이 낮아지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차의 뒷편에 앉아 단면을 잘 살펴보면 좋다. 옆유리가 안쪽으로 상당히 기울어진 차라면 비록 실내 공간의 폭이 넓더라도 좌석이 안쪽으로 몰리게 되므로 옆사람과의 간격이 좁아지게 된다. 차는 넓은데 실내가 왜 이리 좁은가 싶은 차들이 이런 경우다.

일부 차종은 의외로 컵홀더가 변변치 않아 운전 중 캔 하나 제대로 세워 둘 수 없는 차도 있고, 핸드폰 하나 놓는 공간조차 없는 차도 있으니 꼼꼼히 살펴야 한다.

- 스포티카 (Sporty car)

스포츠카, 혹은 스포티카는 목적이 분명히 '멋과 재미를 중시하는 사람'이 사야 하는 차다.스포티카는 거의 반드시 시끄럽고, 핸들은  무겁고, 짐을 넣는 공간은 부족하게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특별한 이유없이 스포티카를 사게 되면 단점만 크게 부각될 수 있다.

▲ 현대차 벨로스터

또 스포티카를 살 때는 출력을 위주로 할 것인지, 스타일을 위주로 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해야한다. 예를들어 현대차 벨로스터를  구입하면 스타일이야 마음에 들지 몰라도 아반떼보다 못한 주행 성능에 실망할게 분명하다. 반대로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을 구입한다면 성능에는 분명 만족하겠지만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받게 될게 된다.

-스포츠세단 (Sports sedan)

스포츠세단이라는 표현은 독일 BMW가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용어다. 한대의 차로 가족을 위하기도 하면서 주말에는 스포티하게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차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단점도 있다. 일반적으로 스포츠세단은 핸들을 돌리는데 힘이 들어가고  서스펜션이 단단해서 노면 충격이 실내로 유입되기도 한다.

▲ BMW 3시리즈

하지만 최근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운전의 즐거움을 느끼는 점도 중요하게 부각되고, 또한 이같은 특성이 고속주행이나 위급한 상황에서도 운전을 더 안전하게 돕는 역할도 한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스포츠세단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 미니밴 (Mini Van)

흔히 봉고차라고 하는 미니밴은 많은 인원이 편안하게 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차다. 5명 가량의 인원이 차에 타는 일이 한달에 두어번 이상 있다면 고려 해볼 만 하다. 과거에는 단순히 실용성만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 싸구려차나 짐차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요즘은  미니밴에도 고급화가 이뤄져 상황이 전혀 다르다.

▲ 도요타 시에나

압도적으로 넉넉한 공간을 제공하고, 편안한 좌석이 장착되기 때문에 각 회사의 사장급이면 반드시 한대쯤 갖고 있을만한 차가 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초기에 벤츠 차량을 마다하고 '그랜드 카니발  리무진'을 탔을 정도다. 최근에는 일본 도요타가 시에나 등 7인승 미니밴을 내놓아 국내서 인기를 모으고 있고, 인피니티도 고급형  미니밴인 JX를 금년내 내놓을 예정이다.

- 픽업트럭 (Pickup Truck)

미국에서는 픽업트럭인 포드 F-150이 세단을 제치고 베스트셀링카가 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미국은 농축산업 국가라 할 정도로 산림과 농업이 발달해 있고,  도심이 아닌 지역에 사는 인구가 수천만에 이르니 당연한 일이다.

반면 대다수 인구가 도심지에 사는 국내 실정에선 픽업 트럭이 꼭 필요해서 산다기보다 단순히 세금을 조금 줄여볼 심산으로 트럭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같은 선택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감면되는 세금이 연간 30여만원 정도인데 비슷한 실내 공간을 가진 경쟁사 소형SUV에 비해 초기 가격이 비싸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그리 큰 금액이 아니다.

▲ 쌍용차 코란도스포츠

더구나 픽업트럭은 무게  중심이 높아 주행성이 떨어지고, 전복 우려도 높다. 심지어 국내 유일한 승용 픽업 트럭이라 할 수 있는 코란도 스포츠의  경우도 아직 미국에 수출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전복시 루프 강성 테스트조차 공개되지 못한 상황이다.

다음 회에서는 자동차의 기본기를 통해서 내게 적합한 차를 고르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김한용 기자 〈탑라이더 whynot@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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