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F1 2015시즌이 개막됐다. 메르세데스는 루이스 해밀턴이 폴 포지션과 우승을 휩쓸고, 니코 로스버그가 팀의 원-투 피니시를 완성하면서 다시 한 번 최강자의 면모를 보여줬다. 반면 20년만에 다시 손을 잡은 맥라렌과 혼다 파워 유닛은 버튼이 최하위인 11위로 레이스를 마치면서 명성에 걸맞지 않은 데뷔 전을 마쳤다.

2015 호주 그랑프리에서 실전을 펼치면서, 올해로 두 시즌째를 맞는 F1의 ‘신 개념 파워 유닛’에 대한 성적표도 어느 정도 정리됐다. 재미있는 것은 2년차를 맞으면서 모든 것이 안정되고 발전되기만 할 줄 알았던 파워 유닛에 너무 많은 문제가 드러났다는 점이다. 안 그래도 상당히 복잡한 시스템이었던 F1 파워 유닛은 올 시즌 일부 업그레이드를 통해 더 복잡한 구성을 가지게 됐고, 그들이 만들어낸 문제 역시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것들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시즌 개막전을 통해 드러난 네 종류 파워 유닛의 퍼포먼스를 평가하는 것은 물론, 의외로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는 각 파워 유닛들의 문제를 다룰 것이다.

▲ 맥라렌-혼다의 처참했던 데뷔전, 마그누센은 스타팅 그리드에 서보지도 못했다

 

맥라렌과 혼다, 갈 길이 멀다

맥라렌-혼다는 이미 지난 프리시즌 테스트 당시부터 심각한 문제를 노출했다. 주된 문제는 순수한 테스트 시간의 부족이었다. 테스트 시간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파워 유닛의 한계를 알기도 어려웠고, 결국 호주 그랑프리에서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파워 유닛을 관리하면서 제 성능을 내지 못했다. 20개 그랑프리에서 단 네 개의 파워 유닛만을 사용할 수 있으니 개막전부터 파워 유닛을 잃는 것만은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유가 어쨌든 혼다 파워 유닛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확인했다. 최고의 성능을 끌어냈을 때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는지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연습 주행부터 MP4-30은 결코 정상이라고 보기 어려운 배기음을 자주 들려줬고, 차량 조종성 문제를 호소하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새로운 개념의 파워 유닛이 복잡하게 조종성에 영향을 주는 것은 익히 알려진 내용이지만, 올 시즌 맥라렌이 보여준(그리고 밑에 다룰 레드불에게서도 확인된) 조종성 문제는 복잡한 파워 유닛을 다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문제는 일요일 레이스에서도 이어졌다. 레이스 시작 전 피트를 빠져나와 그리드로 향하던 마그누센의 MP4-30이 연기를 뿜으며 트랙에 차를 세웠다. 파워 유닛 문제였다. 혼다는 문제를 조사해본다고 얘기했지만(당연히 그래야 했지만) 결국 혼다 파워 유닛으로 스타팅 그리드에 선 차량은 단 한 대뿐이었다. 버튼이 완주에 성공하면서 58랩을 전력으로 달린 소중한 데이터를 얻은 것이 그나마 위안이지만, 절대 만족할만한 결과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혼다 파워 유닛의 경쟁력은 회복될 수 있을까? 가능성은 충분하다. 충분한 주행 데이터가 쌓이면 출력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고 조종성 문제도 개선될 수 있다. 자잘한 문제의 발생 가능성도 시간이 지나면 점차 줄어들 것이다. 올 시즌 9개 토큰(F1 규정은 파워 유닛 개발을 파츠 단위로 구분해 1개에서 3개까지 토큰으로 분류하고 있다. )을 사용해 업그레이드가 된다면 전반적인 성능도 더 나아질 것이다. 물론 모든 일이 그렇게 잘 풀리기만 하지는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 페라리는 격세지감이 느껴질 만큼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돌아온 페라리의 강력한 파워 유닛

맥라렌이 혼다 파워 유닛과 함께 악전고투를 펼치는 동안 페라리와 자우버는 모두 성공적인 시즌 개막전을 치렀다. 특히 지난해 기대와 달리 형편 없는 퍼포먼스로 한 시즌 내내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던 페라리 파워 유닛이 누가 봐도 확실히 경쟁력을 회복한 모습을 보여줬다. 단순히 베텔이 포디엄에 오른 것뿐 아니라 주말 내내 스피드가 뛰어났고 안정성이나 조종성과 관련된 문제가 없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결과였다.

2014시즌 페라리 파워 유닛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다름 아닌 ERS의 에너지 수확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퀄리파잉에서는 한 랩에 모든 것을 짜내 어느 정도 속도를 내기도 했지만, 레이스에서는 좀처럼 힘을 쓸 수 없는 모습이 한 시즌 내내 이어졌다. 변수가 없는 레이스에서 F14-T가 늘 고전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지난해의 페라리는 조종성에도 문제가 많았다. (혼다와 르노에겐 올 시즌 당면 과제 중 하나다. ) 저속 코너에서 갑자기 강한 힘이 실리면서 트랙션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이 많았고, 결국 자세를 잡기 위해 가속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가속의 시작부터 늦어지고, MGU-H가 에너지 수확을 충분히 하지 못해 가속 구간에서 쓸 힘이 없다 보니 최고 속도는 당연히 늦어졌다. 페라리는 물론 같은 파워 유닛을 사용하는 자우버가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다.

2015시즌 페라리는 달라졌다. 최강 파워 유닛인 메르세데스에게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눈에 띄게 큰 문제는 모두 정리됐다. 페라리와 자우버 모두 향상된 섀시는 물론 문제가 보완된 파워 유닛 덕분에 시즌 개막전부터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게다가 쉽게 파워 유닛이 퍼지지 않는 높은 안정성도 확보된 상태기 때문에 페라리는 시즌 중반 이후 업데이트를 계기로 메르세데스에 근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던 목표가 이제 어느 정도 가능할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 레드불-르노는 산적한 과제를 확인하며 호주를 떠났다

 

르노는 머리가 아프다

반면 르노 파워 유닛은 큰 문제를 노출하면서 레드불 등 자신의 고객들에게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모든 종류의 문제가 다 생겼다는 레드불의 탄식처럼 르노에겐 너무나 많은 문제가 공존했다. 재미있는 것은 르노의 출력 자체는 지난 시즌보다 분명히 향상됐고, 순수한 힘만 놓고 따진다면 많이 나아졌다는 페라리와 비교해 나쁠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다른 이유로 그 힘을 쓸 수 없었다는 게 문제다. 결과적으로는? 지난해보다 더 힘을 쓰지 못한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르노 파워 유닛의 가장 큰 문제는 앞서 혼다의 문제나 지난해 페라리의 단점에서 언급했던 조종성이다. ‘차를 몰 수가 없다’는 리카도의 얘기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퀄리파잉에서 여러 가지 악재를 딛고 겨우 6그리드에서 레이스를 시작할 기회가 있었지만, 스타트직후 파워 유닛이 말썽을 부리면서 리카도의 기회는 사라졌다. 물론 퀄리파잉이나 다른 장면에서도 때마다 발목을 잡은 조종성은 전반적인 랩 타임과 탑 스피드 양쪽을 모두 제한하며 레드불의 발목을 잡았다.

그렇다고 신뢰도가 향상됐는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2015시즌 첫 번째 공식 세션이 펼쳐졌던 지난 3월 13일 금요일, 리카도의 RB11은 첫 연습 주행 직후 엔진을 교체했다. 다행히 첫 엔진을 버리는 것까지는 아니라고 얘기가 나왔지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언제든 엔진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지난해 르노 파워 유닛을 사용한 드라이버 중 다섯 명이 여섯 개째의 파워 유닛을 사용했고, 크비앗은 한 번 더 10그리드 페널티를 받았다. 안타깝게도 2015시즌에도 르노의 신뢰도는 여전히 불안하다.

파워 향상에 집중하다가 조종성을 잃어버린 르노의 문제는 어떤 의미에서 예상 가능한 부분이었다. 르노는 지난해 참가했던 파워 유닛 제조사 중 가장 적은 20개 토큰만을 사용했고, 시즌 중 개발을 위해 12개의 토큰을 남겨놨다. 이미 2015시즌보다 2016시즌에 집중할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가장 안정적인 메르세데스가 25개 토큰을 쓰는 동안 가장 문제가 많았던 르노가 20개 토큰 밖에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현재 르노 파워 유닛의 상태가 매우 나쁠 수 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파워 유닛 자체의 구조나 운용에서 생기는 조종성 문제도 상당히 복잡하지만, 중장기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기 쉽지 않은 파워 유닛 전쟁의 전략 역시 매우 복잡하다.

▲ 최강의 메르세데스 파워 유닛도 문제가 없지 않았다

 

메르세데스는 파워 유닛의 절대 반지인가?

혼다는 아직 궤도에 올라서려면 멀었고, 르노는 수렁에 빠져있다. 페라리는 상당한 발전을 보였지만, 지난해 워낙 좋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메르세데스와의 격차는 현격하다. 그렇다면 메르세데스 파워 유닛을 보유한 팀들은 절대 반지를 손에 넣었다고 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파워 유닛이라는 복잡한 문제는 메르세데스라고 해서 그리 간단하지 않다.

지난 호주 그랑프리의 퀄리파잉에서 해밀턴이 기록한 최고 기록에 가장 근접한 다른 메르세데스 팀 드라이버는 마싸였고, 해밀턴과 마싸의 랩 타임 차이는 1.4초에 달했다. 윌리암스는 그나마 상황이 양호한 편이었는데, 메르세데스 팩토리 팀의 기록과 비교해 로터스는 2.2초, 포스인디아는 2.8초가 뒤졌다. 랩 타임 2초는 어지간히 운이 따라주더라도 극복하기 힘든 엄청난 격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윌리암스의 마싸는 (메르세데스와) 엔진이 같다면 엄청난 격차는 차에서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마싸가 엔진은 같을 것이기 때문에 차가 문제라는 말을 한 것이지만 메르세데스는 서둘러 팩토리 팀과 커스터머 팀에 공급되는 파워 유닛은 완전히 동일하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물론 파워 유닛에 차이는 없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다만 복잡하기 그지 없는 파워 유닛을 운용하는 방법에서는 차이가 나도 이상하지 않다. 복잡한 파워 유닛의 운용에 필요한 데이터의 누적은 메르세데스가 프리시즌 테스트부터 많은 마일리지에 목을 맸던 이유 중 하나다.

메르세데스가 많은 마일리지를 쌓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데는 신뢰도와 안정성에 대한 우려도 섞여 있다. 올 시즌 메르세데스로 파워 유닛을 교체한 로터스는 첫 레이스에 대한 기대가 컸으나, 그로장의 차량이 포메이션 랩부터 출력 저하를 겪으며 결국 첫 랩을 마치지 못하고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메르세데스 역시 아주 큰 문제는 아니지만 지난 2월 이후 몇 차례 파워 유닛 문제를 겪어 왔다.

애초에 파워 유닛을 작동시키는 것조차 힘들다는 사실은 주말 내내 파워 유닛의 시동을 거는 것조차 성공하지 못한 매노어-마루시아의 예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복잡하고 다루기 힘든 파워 유닛을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경쟁에서 이기기까지 하려면 더 복잡한 문제들을 만날 수 밖에 없다. 단순히 강한 것만으로는 파워 유닛의 최강자가 될 수 없고, 조종성이 떨어지거나 신뢰도 문제가 크다면 의미가 없다.

F1의 신 개념 파워 유닛이 자동차의 파워트레인에 새 시대를 여는 기반을 마련하겠지만, 당분간은 실험용 쥐나 테스트 베드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첨단 기술에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 많고, F1은 항상 그 최전선에서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왔다. 이런 모습이 F1의 본질인 이상 피할 길은 없다. 파워트레인 경쟁은 이전부터 F1의 가장 중요한 전장이기도 했다.

문제는 복잡하지만 특별할 것은 없다. 전투는 시작됐고 좋든 싫든 올해도 11월까지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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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수 칼럼리스트 〈탑라이더 jesusy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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