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접어들면서 동계 스포츠가 막을 내리고, 우리나라에서 특히 인기가 많은 야구 등의 하계 스포츠가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메이저리그는 벌써 시범 경기를 시작했고 국내 프로 야구도 곧 시범 경기를 치른다. 그런데, 이런 시범 경기를 접하는 팬들의 반응을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살펴보면 상당히 많은 ‘설레발’들을 만나게 된다. 아직 시즌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시즌의 결과를 장밋빛으로, 혹은 저주에 가깝게 예측하는 글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설레발은 야구 팬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모든 스포츠 커뮤니티에는 설레발이 흔하게 등장한다. 설레발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적당한 수준으로 예측하고 전망하는 자기 생각을 밝히는 것은 몇 달 동안 이어지는 한 시즌을 재미있게 따라가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일 수 있다. 문제는 정도가 심한 설레발들이다. 승부는 났다. 싸워볼 필요도 없다. 단정짓고 결론을 내린 뒤 서로 다른 결론을 낸 사람들끼리 논쟁을 벌이는 것은 어떻게 봐도 좋게 보이지 않는다.
F1 팬들에게도 이런 과도한 설레발은 피하기 힘든 유혹인 것 같다.


▲ 2015시즌 부흥을 꿈꾸는 페라리

조심스런 페라리

2015시즌 개막을 앞둔 프리시즌 테스트가 시작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여러 F1 커뮤니티나 SNS에는 페라리의 성적에 대해 온갖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요 F1 매체들도 이런 대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어서, 조심스럽게 페라리의 성적 향상에 대해 예측하는 기사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물론 인지도 있는 매체들은 과도한 설레발이 되지 않도록 조심했지만, 팬들의 반응은 꼭 그렇게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12일간의 프리시즌 테스트 중 첫 나흘 동안의 테스트가 끝난 뒤 ‘설레발’이 난무하기 시작하자 페라리의 새 수장인 아리바베네는 매우 조심스런 입장을 견지했다. 지난해보다 나아진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메르세데스 등과 겨룰만한) 경쟁력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시즌 초반에는 고전을 예상하지만 시즌 후반 들어 업데이트가 충분히 이뤄졌을 때 2승을 거두는 것이 목표’라는 페라리의 공식적인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페라리의 시즌 성적에 대한 일부 팬들의 설레발은 오래 가지 않았다. 2, 3주 정도가 지나
바르셀로나에서 프리시즌 테스트가 계속되고 메르세데스, 윌리암스, 레드불 등의 전력이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하자 ‘페라리가 올해 일을 낼 것’이라던 설레발은 쑥 들어 갔다. 그리고 시즌 개막을 앞둔 마지막 프리시즌 테스트가 막을 내릴 즈음에는 새로운 설레발이 들끓기 시작했다. 바로 2015시즌에도 메르세데스가 손쉽게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할 것이라는 설레발이다.



▲ 다른 팀보다 분명히 앞선 전력을 확인한 메르세데스

메르세데스가 분명히 이긴다?

사실 메르세데스가 챔피언 타이틀을 노리기에 가장 유리한 위치에서 시즌을 시작하는 것
은 분명하다. 2015시즌은 2014시즌을 기준으로 규정 변화가 크지 않은 편이기 때문에 디펜딩 챔피언의 이점을 살리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메르세데스 파워 유닛은 여전히 최강이고, 같은 파워 유닛을 사용하는 팀들 가운데 메르세데스만큼 균형 잡힌 차량을 찾기가 어렵다. 모든 부문의 퍼포먼스에서 앞서 있는데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메르세데스가 한 시즌을 통째로 지배하리라는 것은 쉽게 결론을 내릴만한 얘기는
아니다. 아직 그랑프리는 단 한 경기도 치러지지 않은 상황이고, 프리시즌 테스트가 끝난
뒤 시즌 개막전 사이에 퍼포먼스가 급변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멀리 갈 필요 없이 바로 지난해 레드불이 그런 모습을 보였다. 프리시즌 테스트에서는 11개 팀 중 최하위권을 다툴만한 문제투성이의 상황이었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리카도가 프론트로에서 레이스를 시작해 (비록 실격 처리되기는 했지만) 로스버그에 이어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하기도 했다. 시즌 초반 서너 그랑프리가 마무리된 뒤라고 해도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메르세데스가 현재 상당한 우위를 점한 것으로 보이지만, 업데이트가 계속되는 중 두세 번 정도 문제가 발생하면 금새 다른 팀에게 따라 잡힐 수 있다. 특히 페라리 등 여러 팀들이 파워 유닛 업데이트를 비롯해 상당량의 업데이트를 시즌 중반에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어, 한여름이 찾아왔을 때 현재의 전력이 그대로 유지될 거라 장담하기 어렵다.

시즌 극 초반이라고 해서 메르세데스가 우승을 예약해 놓은 것도 아니다. 각 그랑프리에서 어떤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할지 알 수 없다. 레이스를 시작하고 어떤 사건 사고가 해밀튼이나 로스버그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설레발을 쳤던 지난해에도 압도적인 전력을 보유했던 메르세데스는 세 번이나 우승을 놓쳤다. 2014시즌 한이 맺혔던 다른 도전자들이 많은 가운데 메르세데스의 상황이 지난해보다 꼭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 시즌 개막을 앞두고 총체적 난국에 빠진 맥라렌

위기의 맥라렌

메르세데스가 잘 될 것이라는 설레발 못지 않게 맥라렌은 올해 망했다는 설레발도 SNS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맥라렌의 프리시즌 테스트는 망한 것과 다름 없다. 혼다 파워 유닛은 제대로 달려볼 기회를 갖지 못했고, 누적된 데이터는 너무 적다. 혼다의 프리시즌 테스트 마일리지는 지난해 문제투성이에 테스트 양이 부족했다던 르노 파워 유닛의 경우와 비교해 채 1/5도 되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테스트 중 뇌진탕 증세가 있었던 알론소는 시즌 개막전부터 불참한다.

맥라렌이 시즌 초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곧 맥라렌이 시즌이 끝날 때까지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리라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특히 맥라렌-혼다의 스피드만큼은 어느 정도 갖춰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직면한 문제들을 잘 해결할 경우 빠르게 최상위권으로 도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레드불-르노보다 조금 더 힘든 상황인 것은 맞지만, 맥라렌-혼다가 빠르게 위기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0인 것은 아니다. 맥라렌-혼다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좋은 성적을 거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F1 2015시즌의 결과에 대해 쉽게 설레발을 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메르세데스가 앞서 있다고는 하지만 윌리암스, 페라리, 레드불 등이 놀고 있는 것이 아니고 맥라렌이 언제 경쟁자로 불쑥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대가 유럽으로 옮겨지고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됐을 때 메르세데스가 지금과 같은 우위를 유지하고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맥라렌이라는 복병일지도 모른다. 

 


▲ ‘쇼’를 보여주는 대신 자신들의 프로그램에 집중했던 윌리암스

설레발은 금물입니다

어쨌든 설레발은 금물이다. 시즌 초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고 해서 F1 팀의 수뇌부가 너무 섣불리 싸움을 포기하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겠습니다’라고 쉽게 얘기하지 않는 것도 설레발을 피하기 위함이다. F1 팀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꼭 기억해야 되는 사실 중 하나는 ‘일희일비하지 말 것’이다. 실제로 F1 드라이버나 관계자의 인터뷰에서는 늘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 아는 사람들은 일희일비하지 않지만 팬들은 쉽게 동요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애써 강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윌리암스는 프리시즌 테스트의 종반이 될 때까지 두드러지지 않았다. 12일의 테스트 중
초 중반 9일 정도는 타임 시트에서 중간 혹은 그 이후에 머물렀다. 그렇다고 몇몇 팀처럼
엄청난 거리를 달리며 마일리지에서 다른 팀을 압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에 관계 없이 퍼포먼스에 대해서 자신하며 꿋꿋이 정해진 테스트 프로그램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테스트 막바지 그들이 전력을 드러냈을 때 많은 이들이 윌리암스를 메르세데스에 이어 2위의 전력이라고 평가하기 시작했다. 팀이 나서서 설레발을 치지 말고 자기 자신의 역량을 강화하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당연한 교훈을 보여준 사례다.

이처럼 전력을 드러내지 않고 설레발도 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준비를 꿋꿋이 계속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레드불도 윌리암스와 마찬가지로 전력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자신만의 테스트 프로그램에 충실했다. 시즌 개막전에 각 팀의 전력이 객관적인 결과로 나타나더라도 몇 경기 이후 세상이 달라질 수 있는데, 하물며 프리시즌 테스트 결과로 시즌 결과를 재단하고 설레발을 처서는 안 된다. 프리시즌 테스트에 보여준 모습이 시즌 개막 후 도약하기 위한 단순한 준비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듯, 내일도 오늘과 같지 않을 것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페라리가
천년 만년 챔피언 타이틀을 독차지할 줄 알았지만, 2010년대 초반에는 레드불과 베텔은
넘어설 수 없는 벽 같았지만 지난해의 F1 그랑프리는 그런 구도가 아니었다. 지금 메르세데스가 아무리 뛰어나 보여도 영원한 왕좌를 예약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그렇게 예상대로만 흘러가지 않고, 의외의 변수가 튀어나오기 때문에 F1은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다.

올해 그 엔터테인먼트를 제대로 즐기려면 과도한 설레발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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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수 칼럼리스트 〈탑라이더 jesusy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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