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도요타의 회복이 가히 폭발적이다. 미국시장에선 전년보다 40%가 넘는 판매 신장을 기록하며 세계 1등 기업으로 다시 올라섰다. 2009년의 리콜 충격을 만회하려는 듯 도요타는 여러면에서 큰 폭으로 변화했고, 그 중심에는 바로 86이 있었다.

어쩌면 자신들도 왜 86이 '새로운 도요타'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모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면,  86이야 말로 '신의 한수'라 할 만하다. 바로 도요타의 전환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도요타는 캠리나 렉서스 RX350을 만드는 무난한 회사로 여겨졌다. 말하자면 혁신이나 공격보다는 방어에 능한 이미지였다. 하지만 사실 도요타는 닛산, 혼다같은 일본 기업은 물론, 포르쉐, 아우디, BMW 같은 독일 회사보다도 더 많은 레이스에 참가해 우승까지 수차례 거머쥔 회사다. 
▲ 1999년 WRC에 출전해 시즌 우승을 차지한 도요타 코롤라.
본래 셀리카, 수프라, 코롤라 같은 스포츠카가 분위기를 주도하는 젊고 강한 회사, 뼈속까지 모터스포츠의 피가 흐르는 회사였는데, 그동안 지나친 수익 위주 정책으로 무난함의 수렁에 빠져있던 느낌이다.
 
레이서 출신인 신임 아키오 토요다 사장은 취임 직후부터 슈퍼카 LFA와 스포츠카 86을 내놓았다. 도요타의 이미지를 '그저 무난해서 사는 차'에서 '사랑해서 사는 차'로 탈바꿈하겠다는 의지다. 도요타가 이제야 제대로 된 옷을 입게 된 느낌이다. 그런 이미지 변화는 미국 시장 판매량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이달 초엔 도요타 86을 다시 시승하기 위해 독일 쾰른까지 날아갔다. 가까운 일본에서 생산한 차를 시승하기 위해 독일까지 가야 하다니 아이러니다. 더구나 이미 출시된 차를 다시 해외에서 시승하는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 독일 아우토반에서 타는 86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온 관계자는 도요타 86과 TMG(Toyota Motorsport GmbH)의 이미지가 잘 맞기 때문에 이곳에서 시승행사를 개최하게 됐다고 말했다. 듣고보니 도요타의 레이싱을 책임지고 있고, 최근 들어 양산차에도 기술을 전수하고 있는 TMG가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쾰른이다. TMG가 86 개발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더라도 어떻게든 영향을 끼쳤을 것은 분명했다.
 
그러고보니 독일 쾰른은 일반인들이 취미삼아 주행할 수 있는 서킷인 뉘르부르크링과도 불과 70km 가량 떨어진 도시다. 뉘르부르크링은 산을 끼고 있어 고저차가 심하고, 좁은 국도 같은 느낌이어서 86을 설명하는데는 더 없이 좋은 공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속도가 무제한인 독일 아우토반을 달리는 경험도 86을 표현하는데는 꼭 필요했을 것이다.
 
▲ 독일 쾰른에서 시승한 도요타 86
 
◆ 도요타 86, 맨디히 공군기지를 달렸다
 
도요타 관계자들은 도요타 86의 첫번째 시승장소로 역사적 장소인 맨디히 공군기지(Heeresflugplatz Mendig)를 택했다. 맨디히 공군기지는 1938년부터 나치 전투기들의 이착륙장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됐다가 복구하기를 거듭해 전쟁이 끝난 후엔  독일군의 헬기 이착륙 연습장으로 사용돼 왔다. 2008년에는 일반에 개방됐으며 지금은 주로 자동차 테스트를 위한 임시 서킷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하필 시승장소로 2차대전 나치 공군 기지를 선택하다니, 86으로 유럽 침공을 하겠다는 의미는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자들이 도착했을 때 이곳은 이미 자동차 주행테스트 장으로 바뀌어있었다. 크게는 슬라럼, 급코너 주행, 급제동 등 차량의 안정성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는 코스와 86 특유의 드리프트를 시험해 볼 수 있는 코너가 있었다.
 
▲ 도요타 86을 시승하는 자리에 전시된 지티원(GT-ONE) 르망머신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웅웅 거리는 음악 소리와 함께 비행기 격납고가 스르륵 열렸다. 영화 예고편에 등장하는 것 같은 내레이션도 연출됐다. 격납고 안에는 도요타 86 외에도 르망 레이스카인 지티원(GT ONE), F1머신, 레빈 86 등이 줄지어 서 있었다. 기자들이 격납고 안에 들어서자 이번에는 바깥에서 3대의 86이 연달아 원을 그리는 드리프트 쇼가 이어진다. 가운데 멈춰선 차에서 누군가 내리고, 뽀얀 타이어 연기가 걷히자 86의 치프엔지니어인 타다 테츠야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실로 감동적인 등장이었다. 
 
▲ 도요타 최초의 슈퍼카 2000GT와 1980년대 레빈86, 도요타 86(현지명 GT86)이 나란히 서 있다.
 
◆ 진정한 드리프트 머신, "스포츠카란 모름지기 이래야지!"
 
서킷을 주행하는데, 기분이 묘하다. 한국에서 그렇게 여러번 시승한 차가 여기선 전혀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의 86은 물만난 고기처럼 펄떡펄떡 뛰어다니는 느낌이다. 마치 한국에서는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듯 하다.
 
전자제어장치를 끄고 나면 변속기를 1단에 넣고 가속페달을 꾹 밟는 것만으로도 드리프트가 시작된다. 200마력이라는 출력이 시속 200km 이상의 최고속을 겨루는데 충분하다고는 할 수야 없겠지만, 운전자와 승객에게 즐거움을 주는데는 충분했다. 아니 어쩌면 재미를 위해 가장 적합한 출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운전자가 자동차 출력에 끌려가는 느낌이 아니라, 운전자와 자동차가 하나로 결합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 기자들이 도요타 86을 타고 급코너를 돌고 있다.
 
시속 100km 정도로 코너에 진입하는데, 코너 중간에 브레이크를 밟아도 미끄러지거나 기울어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앞머리가 주저앉는 것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탁월한 밸런스는 물론, 수평대향 엔진으로 차체 중심을 매우 낮게 설계한 점도 안정성을 높이는데 한 몫 하는 듯 했다. 반대로 가속페달을 밟으면 뒷부분이 슬며시 미끄러지기 시작하는데, 이 점이 아주 매력적이다.
 
예를들어 포르쉐라면 한계가 매우 높아 잘 미끄러지지 않지만, 일단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이미 손쓰기 늦은 상황이 된다. 그런데 이 차의 타이어는 좀 더 일찍 미끄러지면서도 예측 가능하게 움직여 운전자가 가속페달과 핸들 조절로 극복하거나, 반대로 뒤를 더 미끄러뜨려 예각을 만들며 코너를 돌아나갈 수도 있었다. 진정 드리프트를 위한 차라는 느낌이 들었다. 
 
◆ 86을 타고 독일 아우토반을 달리다

다음 시승코스는 차를 카 페리에 싣고 라인강을 건너갔다 돌아오는 코스였다. 코스맵을 보니 속도 무제한 아우토반 코스가 있는게 눈에 띄었다.

▲ 86을 페리에 싣고 라인강을 건넜다

고속도로를 의미하는 아우토반(Autobahn)은 독일인들에게 핏줄 같은 존재다. 폭스바겐을 비롯, 포르쉐나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이 여전히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로 우뚝선 까닭에도 속도 무제한 아우토반이 큰 역할을 한다. 독일인들은 매일 아우토반을 달리며 독일차가 세계 최고라는 것을 되새겨왔다. 대부분의 수입차들은 겉모양은 그럴듯 해도 최고속의 영역에 올라서면 독일차처럼 안정감있게 주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저가 스포츠카 도요타 86의 아우토반 도전은 그래서 맹랑해 보였다. 

아우토반에 올라서자마자 그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는걸 깨달을 수 있었다. 주행 안정성이 우수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고속으로 올라섰을때 안정적인 느낌이 대부분 동급 독일차를 오히려 능가하는 느낌이다. 핸들의 감각은 고속에서 더 단단해지고, 서스펜션도 착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시속 200km를 넘어 240km까지 속도를 올리자 1차선에 올라선 우리 86 뒤로 독일차들이 한없이 멀어졌다. 도로사정상 더 이상 속도를 올려볼 수는 없었지만, 아우토반에서의 가속감은 독일차와 견줘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주행감각은 3천만원에 불과한 차로는 믿어지지 않을만큼 안정적이었다. 

▲ 도요타 86을 타고 아우토반을 달리고 있다.

이 차는 시트의 힙포지션이 땅에서 불과 4cm 떨어져 있는 차다. 이는 포르쉐 카이맨보다 오히려 더 낮은 수치다. 더구나 차체높이도 1250mm로 땅에 납작 붙어있는 듯한 디자인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장시간 주행하기엔 불편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하루 종일 주행하다보니 이 차가 스포츠카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이 차에는 베이비시트까지 장착 가능한 뒷좌석까지 있어 스포츠카로서는 매우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 쾰른의 도로를 달리는 도요타 86

지나치게 비싼 가격으로 차 혼자 빛나는 '드림카'가 아니라, 가격이나 실용성면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스포츠카. 차보다 운전자의 역할이 빛나는 차. 그게 바로 86의 지향점이고, 세계 젊은이들이 다시 도요타에 열광하게 된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한용 기자 〈탑라이더 whynot@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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