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마니아들이 열광하던 폭스바겐 시로코R이 우여곡절 끝에 국내에 출시됐다. 이제야 '무늬만 고성능'이라는 허물을 벗을 수 있겠다. 혹시 시로코R을 기다리다 지쳐 시로코R라인을 선택한 소비자들도 있겠지만 너무 배 아파할 필요는 없다. 그저 출력만 높다고 '좋은 차'가 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 폭스바겐 시로코R

본격적인 스포츠쿠페를 표방하고 있는 폭스바겐 시로코R을 시승했다.

◆ 폭스바겐의 ‘얼굴마담’

외관은 시로코R라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안개등 대신 LED 주간주행등이 장착됐고 휠디자인, 트윈 머플러 정도가 다르다. 관심을 갖고 눈여겨보지 않는 이상 분간하기 힘들다. 

▲ 외관은 시로코R라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로코는 CC와 함께 폭스바겐의 ‘얼굴마담’을 맡고 있는데 보는 이를 자극하는 디자인임은 분명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뛰게 할 정도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에서나 느낄 법한 자극이다.

시로코R은 부릅뜬 눈과 꽉 다문 입술로 앙칼진 얼굴을 하고 있다. 바디 라인은 매끈하면서도 말 그대로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갔다. 은근히 근육질이여서 위압감도 느껴진다. 야무진 외관 디자인은 누구든 좋다 나쁘다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을 정도다.

▲ 호불호가 없을 정도로 디자인 완성도는 높다

실내 디자인도 크게 바뀐 점은 없지만 레이싱카에서나 볼 법한 스포츠 버킷시트가 적용돼 이미지가 크게 바뀌었다. 버킷시트만으로도 이 차의 성격을 확연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생김새와 달리 실제 앉았을 때의 만족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 스티어링휠, 알루미늄페달, 시인성이 우수한 계기반 등은 이 차의 성격을 말해준다

버킷시트와 썬루프가 장착된 것을 제외하면 실내 역시 시로코R라인과 다른 점을 찾기 힘들다. 그나마 썬루프는 오픈은 안되고 틸트만 지원된다.

폭스바겐 특유의 정갈함이 묻어나는 실내지만, 화려한 외관과 조금 어울리지 않는 면도 있다. 좀 더 차별화를 뒀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계기판 바늘이 외관색과 같은 파란색인 점이 재미있다. 적당한 크기의 스티어링휠은 그립감도 좋고 밑부분이 평평하게 잘려있어 사용감도 우수하다. 스티어링휠 뒤편이 붙어있는 패들시프트는 사용감이나 내구성도 좋다.

▲ 계기반 바늘이 파란색인 점이 눈에 띈다

뒷좌석은 의외로 좁지 않다. 썬루프가 달려서 답답함도 어느 정도 해소된다. 하지만 장거리 탑승에 적합한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아이나 체구가 작은 여성이라면 문제가 없을 듯 하다.

◆ 강력하고 강력하지만 시트포지션은 더 낮아져야

생각보다 크고 무거운 문을 여니 큼지막한 버킷시트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중세시대의 갑옷 같이 단단함이 느껴지고 운전자를 안전하게 감싸줄 것만 같다. 일단 운전석에 앉아서 시동을 걸었다. 배기음이 골프 GTI보다 더 우렁차게 느껴진다.

▲ 인위적인 느낌이 들긴 하지만 배기음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본격적으로 시승을 하기 위해 시트포지션을 조정하는데, 시트가 이상하다. 포지션이 너무 높다. 버킷시트가 달린 차 중에서 아마 가장 높은 듯 싶다(이보크는 제외다). 운전시야가 향상되는 것은 좋지만 도통 스포츠카의 느낌이 살지 않는다. 시트포지션이 높다보니 속도감도 덜하고 짜릿한 쾌감도 반감된다.   

▲ 보기엔 그럴싸한 버킷시트지만 시트포지션이 너무 높다

시로코R은 시동을 건 순간부터 시종일관 아드레날린을 발산한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난폭함이 느껴질 정도로 달려 나간다. 빠르기도 빠르지만 청각을 자극하는 요소가 더해지기 때문에 운전 재미도 상승된다.

변속할 때마다 독특한 배기음이 느껴지며 운전자를 자극한다. 레이싱카에서나 들릴법한 소리다. 이 소리가 처음에는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이게 '사운드 제너레이터' 장치를 통한 것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조금 실망스럽다. 과장된 소리는 쉽게 질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카랑카랑한 엔진소리는 역시 매력적이다.

▲ 엔진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자

엔진의 제원성능만 봐도 이 차가 빠르다는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거기에 변속기는 운전자의 마음을 꿰뚫어본다는 6단 DSG 변속기다. 어느 정도는 과속을 조장하는 변속기다. 힘껏 달리다가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도 변속기는 엔진회전수를 최대한 유지한다. 마치 ‘왜 멈춰. 더 밟아’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한참이나 버티다 소식이 없으면 그제야 기어를 낮춘다. 

무게중심이 낮고 회전반경도 극히 좁아 구불구불한 산길에서는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출력이 센 전륜구동차는 보통 언더스티어가 극심하게 발생하는데 시로코R은 매우 안정적이다. 웬만해선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속도를 줄이고 방향을 틀고 다시 가속하는 과정이 완벽하게 이어진다.

▲ 누구나 쉽게 와인딩을 즐길 수 있다

운전하기 어려운 차는 아니지만 고속에서는 까다로운 부분도 있다. 고속에서 서스펜션은 원초적일 정도로 단단해진다. 요철을 지날 때 충격을 상쇄한다는 느낌보다는 받아치는 기분이다. 그래서 고속에서 종종 중심을 잃고 ESP가 작동할 때가 있다.

▲ 최고출력 265마력을 발휘하는 2.0 TSI 엔진은 고급휘발유를 좋아한다

◆ 가격대비 뛰어난 성능, 시로코R은 매력적인 차

시로코R은 흥미롭고 매력적인 차임에는 분명하다. 단순히 얼굴만 멋진 것이 아니라 내실도 튼튼하다. 본격적인 스포츠쿠페를 지향한다면 스포츠카가 가져야 할 필수요건을 더 가다듬어야 한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이 개선되면 곱절 이상의 가격이 되는 스포츠카도 부럽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4천만원대의 가격대에서 이러한 운전재미를 느낄 수 있는 차는 그리 많지 않다. 뻔하디 뻔한 차들이 즐비한 도로에 개성 넘치는 시로코R이 튀어나오니 무척이나 반갑다. 스포츠주행을 즐기는 소비자들은 더욱 기뻐할 일이다.

김상영 기자 〈탑라이더 young@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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