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파리모터쇼에서 현대 유럽 디자인 센터를 이끌고 있는 토마스 뷔르클레(Thomas Bürkle) 수석 디자이너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토마스 뷔르클레 유럽 디자인 센터장은 2005년에 BMW를 떠나 현대에 조인한 인물이다. BMW 3시리즈와 6시리즈 쿠페와 카브리오레의 책임을 맡았으며, 현대차의 핵사고날 디자인 등을 주도했다. 또한 유럽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최근 현대차 i시리즈 디자인의 책임자이기도 하다.

한국 문화를 디자인에 접목시키는 그의 시도 또한 세계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다음은 토마스 뷔르클레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토마스 뷔르클레, 그가 이끄는 현대차 유럽 디자인센터란

▲ 토마스 뷔르클레 현대차 유럽 디자인센터장이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Q. 현대차는 전에 다니던 BMW와 비교해서 어떤가

BMW는 강력한 이미지와 첨단 기술을 갖고 있는 매우 프로페셔널한 회사다. 더구나 당시는 현대차에서 뭔가 새롭고 대단한 것을 내놓을 거라고는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BMW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에서 현대차와 같은 젊은 브랜드로 옮기면서 새로운 팀을 꾸리고, 회사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말하자면 도전을 택했다. 

BMW는 매우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를 갖고 있었지만 현대차는 그렇지 못했다. 현대차에는 이미 수많은 차종이 있었지만 각기 다른 전면부를 갖고 있었다. 나는 현대차의 여러 차에 일관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Q. 일관성 있는 디자인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2006년 제네바모터쇼에서 처음 게누스(Genus, i40 콘셉트카)를 선보였는데, 여러분들이 잘 아는 핵사고날 그릴 디자인을 이 차에 처음 선보였다.

또 현대 게누스의 D필러(가장 뒷부분 기둥)에 보면 단순한 선이 아니라 곡선을 집어넣었다. 지금의 i40의 D필러에도 이 디자인이 있다. 이 곡선은 한국의 처마 디자인에서 가져온 것이다. 서울이나 한국의 여러 절을 다니면서 이 곡선에 관심을 갖게 됐다. 독일의 건물들은 직선이지만, 한국 고유의 건축물들은 우아한 곡선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 토마스 뷔르클레가 디자인 책임을 맡은 현대차 i40. 2006년 선보인 콘셉트카 게누스(Genus)의 양산모델이다. 처마를 형상화한 D필러가 눈길을 끈다.

Q. 유럽 디자인센터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유럽디자인센터는 프랑크푸르트 부근에 있으며 디자이너 모델러 등 50명의 디자이너가 함께 일하고 있다. 2명의 디자이너가 있고, 3명의 코디네이터가 있다. 남양에서 와서 일하는 방문자들도 있고, 우리도 남양에 가기도 한다. 

나는 이 그룹을 위한 책임자며,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이미 현대는 유럽에서 매우 잘 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 현대차를 '모던 프리미엄(현대적 고급 자동차)'으로 만들기 위해 퀄리티와 디자인을 향상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과거 유럽 소비자들은 현대 겟츠(국내명 클릭)의 값이 싸서 구입했다. 하지만 지금은 소비자들이 i30를 좋아하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돈이 아니라 가슴(Heart)으로 선택할 수 있는 차를 만들고자 한다.

대표적인 모델은 i20, i30, i40, ix35(투싼)등 i시리즈 전 모델이 우리 스튜디오에서 내놓은 제품이다. 아이오닉 콘셉트카도 우리 작품이다.

Q. 미국 유럽 한국 등 디자인센터 성향이 전혀 다른데, 어떻게 통일된 디자인을 하나.  

당연히 시장도 다르고 모든 것이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우산을 쓰고 있다. 플루이딕 스컬프처라 불리는 우산이다.

우리가 각기 디자인을 하면 한국의 미스터 오(오석근 디자인센터 부사장)가 이 철학에 맞는지 최종 결정을 내린다. 또, 여러 프로젝트가 서로 오버랩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디자인한 것은 i20, i30, i40 등이다.  i10은 우리에게 영향을 받긴 했지만, 글로벌 프로젝트여서 우리가 만든건 아니다.

Q. 지금 미국과 독일에서 디자인한다고 말한 차종이 신차 대부분인데, 그럼 한국 디자인 팀은 놀고 있는거 아닌가.

공동작업이 대부분이다. 쏘나타 같은 차는 미국과 한국의 프로젝트고, 아반떼는 한국, 미국 순이었다. 한국은 가장 큰 디자인 팀을 갖고 있어서 더 많은 차를 디자인한다. 특히 최근 나온 싼타페 등의 디자인은 미국과 공동이지만, 한국에서 많은 작업을 했다.

또 본사 디자인센터는 비록 초기 디자인에 참여하지 않은 경우라도 디자인과 양산 단계에서 큰 책임을 갖고 일하고 있다.

◆ 현대차 디자인 왜 발전했나, 자세히 물으니

Q. 현대차 디자인이 어떤 식으로 발전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i30의 예에서 보듯 디자인의 향상은 매우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좋은 자세(스텐스), 좋은 밸런스, 큰 바퀴, 핵사고날 디자인 같은 기업 아이덴티티, 플루이딕 스컬프쳐와 같은 디자인 언어, 흐르는 듯한 디자인, 빛과 그림자의 선명한 대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i30를 보면 바퀴 위에 두개의 라인이 지나가는데 이건 마치 근육질 같은 느낌이어서 힘, 견고함을 강조하게 된다. 보닛의 실루엣은 A필러를 지나서 뒤편까지 이어지게 되는데 우아하고 역동적인 디자인이다.

Q. 플루이딕 스컬프처는 누가 처음 만든건가.

그건 글로벌적인 접근이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세계 회의를 하는데 미국 디자인센터와 유럽 디자인센터, 한국 남양 디자인센터가 모두 같이 만들었다.

Q. 한국 소비자들을 보면 일부는 플루이딕 스컬프처를 좋아하지만 일부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유럽에 한해서 말하자면, 유럽은 이 디자인을 모두 좋아한다.

한국에서 쏘나타가 나왔을 때 이런 논의가 있었던 것 같은데, 미국에서 판매를 개시하자 핫셀러가 됐다. 왜냐하면 디자인이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형 쏘나타와 신형 쏘나타(YF)간에는 '커다란 발걸음'이 있었다. 때문에 일부 소비자들은 따라가기 조금 어려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쏘나타가 환상적인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매우 플루이딕하고 매우 우아한데다 진취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기존 쏘나타에 비해서는 프로포션과 퀄리티, 우아함 등이 큰 발전이 있었다.

가끔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예고를 하는 듯한 경우가 있다. 소비자 들도 새로운 시대에 맞춰 시각을 변화 시켜야 한다. BMW가 크리스뱅글이 신형 7시리즈를 내놨을때 사람들이 약간 혼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모두 이 디자인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일부 모델이 큰 발걸음을 옮길때면 사람들이 따라잡기 힘든 경우도 있는 것이다.

Q. 나도 '큰 발걸음'을 좋아한다. 그런데 조금전 당신이 만든 i30 3도어를 봤더니 '발걸음' 자체를 찾기 어렵던데.

(웃음) 그러나 이건 알아야 한다. i30 웨건, 5도어, 3도어 등은 모두 패밀리다. 예를 들자면 폭스바겐 골프는 3도어와 5도어가 완전히 똑같다. 그런데 i30 3도어의 모양은 앞뒤 범퍼나 사이드 윈도우의 형상도 조금 다르다. 이 정도라면 꽤 큰 차이다.

▲ 패밀리룩이 강조된 현대차 i30 3도어 모델이 2012 파리모터쇼에서 공개되고 있다.

독일인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현대차가 한국에서는 60%를 넘는 점유율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 소비자들은 모든 차가 다른 디자인을 하길 원하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30개 정도의 많은 브랜드가 있어 상황이 다르다.

예를들어 현대차 독일 점유율은 3.5%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패밀리 아이덴티티를 보여줘야만 한다. 그래야만 소비자들이 차를 보고 "아 저게 현대의 핵사고날 디자인이구나", 혹은 "두개의 근육질 디자인이구나"하고 인식할 수 있게 된다.

Q.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의 마찰은 어떻게 해결하는가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간에 다툼이 있는건 당연하다. 예를 들어 디자이너는 언제나 더 큰 바퀴를 요구하고, 이게 아주 중요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엔지니어들은 비용, 기술적 문제 등을 들어 난색을 표한다. 우리는 또 스포티한 느낌을 주기 위해 벨트라인은 높이고 루프를 낮추려고 한다. 그럼 엔지니어는 머리공간이 부족하다거나 시야가 적게 나온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이런 상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디자인센터 내에 '스튜디오 엔지니어'를 두고 있다. 이는 디자인팀에 있는 엔지니어를 말한다. 디자인팀을 위해 엔지니어들과 싸울때도 있지만 엔지니어링 부서에 들어가서 디자인에 대해 얘기하기도 하면서 해결책을 찾는다.

Q. 현대차가 갑자기 발전하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나는 현대차도 좋아하지만, 한국도 매우 좋아한다. 한국은 매우 빠르게 치는(fast paste) 스타일인데다 매우 경쟁적이다.

우리 디자인센터도 매우 경쟁적이다. 5명의 디자이너가 스케치를 하고 우리가 몇개 디자인을 선택해 1미터 디자인을 내놓으라고 하고 그걸 (정의선) 부회장에게 보여준다.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부회장이 디자인에 매우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매우 영리하고 현명하며 회사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인물이다.

현대차는 도요타와 비교해 훨씬 유연한 사고를 하는 회사고, 결정이 더 빠르게 이뤄진다. 현대차는 또한 기꺼이 여러 시장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회사기 때문에 현대차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또 2009~2010년 같은 자동차 산업계의 위기에도 현대차는 오히려 유럽향 신모델을 투입하면서 투자하면서 현대차가 유럽에서 최고의 아시아 메이커가 될 수 있었다.

현대차가 여러 마켓에 분산 투자를 하는 점도 강점이다. 브라질, 한국, 인도, 유럽, 미국... 일부 시장이 어려우면 다른 시장이 떠오르는 식으로 건강한 구조를 만들었다.

또 한국에서는 직접 철강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서 국제 철강가격에 영향을 적게 받을 수 있었고, 이런 것들이 모두 합쳐져 성공을 이끌었다.

물론 최근 10년간의 디자인과 품질이 큰 폭으로 올랐으며, 유럽에서는 5년에 무제한 마일리지 보증을 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품질을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게 바로 현대차의 성공 스토리다.

▲ 현대차 i30 3도어 모델의 앞부분.

◆ 앞으로 현대차 디자인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Q. 혹시 핵사고날 프론트 그릴이 사라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까.

우리는 프론트그릴을 언제나 향상시키고 진화시키겠지만, 완전히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에 내놓은 i30 3도어만 해도 우리는 핵사고날 디자인과 현대차 로고를 갖고 있지만, 로고 부분을 깎아냈다. 그릴의 림과 구멍 디자인 또한 달라져서 보다 스포티한 디자인으로 바꿨다.

Q. 혹시 로고라도 바뀌지는 않을까.

로고에는 큰 역사가 담겨있다. 로고를 바꾸는건 좀 위험한 일이다.

현대, 한국은 전쟁 후 큰 역사를 이뤄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지금 같은 산업을 일으켜 세웠다. 현대차의 경우 오너(정주영 회장)는 배를 만들기도 했고, 트럭과 포니 등의 차를 만드는 등 단계적으로 발전해왔다.

지금의 현대차 로고는 그런 현대의 역사를 대변하는 의미다. 유산이기 때문에 바꿀 수가 없고, 약간의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다.

Q. 하지만 제네시스에는 현대로고가 없지 않나.

한국에서 제네시스는 현대로고가 없지만, 모두가 현대차라는걸 알고 있다. 유럽에서는 모두 현대차 로고를 붙이고 있다.

물론 도요타가 렉서스 브랜드를 붙이는 것과 같이 현대 대신 고급 브랜드 뱃지를 붙이는 전략도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고급브랜드로 차를 만들면 도요타는 싸구려 이미지가 되는게 아닌가.

우리는 차를 함께 가져갈 필요가 있다. 만약 제네시스로 인해 매우 우수한 퀄리티의 차라는 이미지를 준다면 낮은급의 차에도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전략 중 하나로 보면 되겠다.

Q. 어떤 사람이 디자이너로서 당신의 롤 모델이 되고 있나. 

우선 60년대 프랑스 디자이너 폴프락(Paul Bracq)을 들 수 있다. 스케치에 놀라운 재능이 있었으며 메르세데스-벤츠에서 일하다가 BMW, 푸조에서 일하고 지금은 은퇴한 사람이다.

현대차의 디자이너 미스터오(오석근 부사장) 또한 디자인에 대해 잘 이해하는 인물이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미팅을 갖기도 한다. 디자인이슈, 전략수립, 세계 전망을 나눈다. 뉴씽킹뉴퍼시빌리티에 대한 것이다.

고급감 있는 재질, 고해상도 모니터, 강한 인상, 공기역학, 흐르는 듯한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대부분 소비자들이 들으면 기뻐할만한 것들이다. 현대차가 발전적이고 흥미로운 차를 만들기 위한 큰 기회라고 본다.

▲ 현대차 차세대 디자인을 보여주는 콘셉트카 '아이오닉(i-oniq)'이 파리모터쇼에서도 공개됐다.

Q. 지금은 플루이딕 스컬프처 등등을 얘기하는데, 다음은 뭐가 될 것인가.

우리 쇼카 '아이오닉(i-oniq)'을 보면 표면의 굴곡이 보다 줄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게 우리의 '새로운 생각(New Thinking)'이다.

표면의 극적인 효과를 줄이고, 비율을 더욱 극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또한 프리미엄 느낌을 주려고 한다. 단순하고 볼륨감이 있는 차를 만들려고 한다.

Q. 그 말은, 독일차처럼 한다는 것인가.

영국차나 미국차도 마찬가지다. 이건 세계적인 흐름이다. 코벳을 예로 들면 멀리서 봐도 비율만으로 멋지다고 느낄 수 있는 점을 보면 되겠다. 

Q. 한국에서는 기아차가 BMW를 너무 닮았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우리는 플루이딕스컬프처를 기반으로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지키려고 한다. 예를 들어 폭스바겐이나 BMW 1이 모두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는것과 마찬가지다.

▲ 메르세데스-벤츠 A클래스 콘셉트카 랜더링. 현대차 토마스 뷔르클레 디자인센터장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최근 모델들이 현대차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사실 요즘은 현대가 다른 차에 영향을 더 많이 주고 있다. 특히 신형 메르세데스-벤츠나 도요타의 디자인이 쏘나타 같은 현대차에서 오히려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따라가려는게 아니라 리더 회사가 되려고 한다. 디자인과 기술에서 리더가 되려고 한다. 연료전지자동차 등 모든 면에서 볼 때 우리 기술이 상당부분 앞서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수 있을 것이다. 

김한용 기자 〈탑라이더 whynot@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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