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2014시즌이 끝난 지 한 달여 만에 2014년도 저물었다. 시즌 초부터 메르세데스의 압도적인 퍼포먼스와 해밀튼, 로스버그의 치열한 챔피언 타이틀 경쟁으로 뜨거웠던 2014년은 적어도 ‘어느 팀이 가장 뛰어났는가?’라는 질문에만큼은 어렵지 않게 답을 낼 수 있는 한 해였다. 차량 성능에서나 업데이트 면에서나 팀 퍼포먼스 면에서나 메르세데스는 2014년 최고의 F1 팀이었다.

그렇다면 2014년 최고의 F1 드라이버는 누구일까? 물론 ‘성적’을 기준으로 얘기한다면 이론의 여지가 없다. 두 번째 챔피언 타이틀을 따낸 메르세데스의 루이스 해밀튼은 F1 규정이 정한 2014시즌 최고의 F1 드라이버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조금씩 관점을 바꿔 본다면 다른 의미로 해밀튼과 같거나 더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2014년 최고’라고 불릴만한 드라이버들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다른 관점으로 봤을 때 2014년 최고의 F1 드라이버로 꼽을만한 드라이버는 누가 있을까?

 

▲ 두 번째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쥔 루이스 해밀튼

루이스 해밀튼

2014시즌 해밀튼의 활약은 눈부셨다. 여러 가지 불운과 심리적인 압박을 딛고 자신의 두 번째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 것이 가장 큰 성과인 것은 분명하다. 특히 계속해서 챔피언 타이틀에 도전할만한 팀에 머물면서 2년 연속으로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하는 것보다, 첫 타이틀을 차지하고 6년 동안 챔피언 타이틀 경쟁에서 멀어져 있다가, 특히 팀을 옮긴 뒤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넘기 힘든 장벽이었다.

하지만 해밀튼을 2014시즌 챔피언으로 ‘당연히’ 인정하더라도 2014년 최고의 드라이버로 꼽는 데는 반론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해밀튼이 매우 뛰어난 활약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최고라고 꼽기에는 아쉬운 점도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메르세데스의 레이스카가 올 시즌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과시했기 때문에 해밀튼의 챔피언 타이틀 획득의 가치를 조금 더 저평가하기도 한다.

이런 평가가 나오는 이유 중에는 팀메이트 로스버그를 압도하지 못했다는 이유도 있다. 자신의 강점이라고 여겨져 왔던 퀄리파잉 배틀 에서 오히려 로스버그에게 압도를 당했고, 시즌 거의 대부분 동안 팀메이트에게 포인트 순위에서 뒤져 있었다. 해밀튼이 시즌 후반 로스버그를 추월하기는 했지만, 시즌 최종 전까지 로스버그가 역전할 수 있는 여지가 적지 않게 남아 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관점은 로스버그의 역량을 다소 저평가하는 경향과 맞물려 있다. 팬들은 물론 전문가들 중 일부도 로스버그가 우수한 드라이버인 것은 인정하지만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할만한 최정상 급의 드라이버인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스버그가 언제나 레이스카의 성능을 넘어서는 성적을 거둬왔고, 메르세데스에 합류해 F1의 황제 슈마허와 팀메이트를 이뤘을 때 3년 동안 슈마허를 완전히 압도했던 것만으로도 로스버그가 결코 저평가할 드라이버가 아니라고 반론할 수 있다.

오히려 해밀튼은 로스버그와 2년간 같은 팀에서 활약하면서 연속으로 팀메이트를 압도해 슈마허와는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실수가 적은 로스버그와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심리적으로 흔들릴만한 상황이 많았지만, 시즌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집중력을 유지했다. 동갑내기에 어린 시절부터 서로에 대해서 너무 잘 아는, 그리고 드라이빙 능력에서도 큰 차이가 없는 팀메이트를 상대로 깔끔하게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던 해밀튼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꼭 챔피언 타이틀 때문이 아니라도 2014년 최고의 드라이버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 또 한 명의 플라잉 핀, 발테리 보타스

발테리 보타스

비록 단 한 번의 우승도 차지하지 못했지만, 2014년 가장 빛났던 드라이버 중 한 명이 윌리암스의 발테리 보타스다. 한 시즌 동안 그랑프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눈여겨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의 성적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연습 주행과 퀄리파잉, 레이스 모두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보타스는 어떤 의미에서 2014시즌 최고의 드라이버 중 한 명이다.

우선 윌리암스라는 팀에서 챔피언십 포인트 순위 4위를 차지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전통의 강팀 윌리암스라지만 최근 몇 년 간의 부진은 너무 심각했고, 지난해 F1에 데뷔한 보타스가 포인트를 획득한 그랑프리는 단 한 차례뿐이었다. 하지만 보타스는 지난해 17위에서 올해 4위로 순위가 수직 상승했고, 그 가운데에는 여섯 번의 포디엄 피니시가 포함되어 있다. 완주에 성공한 레이스 중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모두 포인트를 획득한 것도 높게 평가되어야 할 부분이다.

경기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타스의 활약은 더 놀랍다. 개막전에서는 두 차례나 대열 최후미로 쳐지는 악조건 속에서 수많은 드라이버들을 연이어 추월하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였다. 특히 차량의 신뢰도가 좋지 않았던 시즌 초반에도 꾸준히 포인트를 뽑아냈고, 스타트를 제외하면 레이스 내내 항상 빨랐다. 시즌 중후 반 퀄리파잉에서 메르세데스를 압박할 수 있었던 유일한 드라이버도 보타스였다. 2014시즌 윌리암스의 차량 성능이 좋기는 했지만 그다지 압도적이지도 않고 단점도 많았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보타스의 빠른 스피드와 꾸준한 성적은 다소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성과였다.

특히 펠리페 마싸라는 정상급 드라이버를 팀메이트로 두고도 팀메이트 배틀 에서 확실히 앞섰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비록 마싸가 올해 윌리암스로 이적했다고는 하지만 보타스 역시 고작 2013년에 데뷔한 신인급이기 때문에 레이스카 적응 등에 큰 차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보타스는 올 한 해 ‘상당히 우수한 성적’을 거둔 마싸를 압도하는 ‘매우 뛰어난 드라이빙’을 보여준 셈이다. 팀메이트와의 비교가 드라이버의 퍼포먼스에 대해 평가하는 가장 좋은 지표 중 하나라고 봤을 때, 보타스는 분명 2014년 최고의 드라이버 중 한 명이었다.
 

▲ 페라리의 소년 가장과 같았던 페르난도 알론소

페르난도 알론소

팀메이트 배틀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보타스보다 더 뛰어난, 엄청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라고 평가할 정도로 크게 활약한 드라이버가 페라리의 페르난도 알론소다. 가세가 기운사대부 집안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는 페라리에서 5년 동안 활약하면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마치 소년 가장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이 알론소였다. 2014시즌은 결국 알론소가 페라리에서 활약한 마지막 시즌이 됐지만, 소년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여전했다.

2014시즌 F1 그랑프리의 결과를 종합했을 때 퀄리파잉에서의 기록이나 레이스 성적 모두에서 팀메이트와 비교해 가장 압도적인 결과를 얻은 것은 단연 알론소였다. 특히 상대가 그저 만만한 드라이버가 아니라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던, 과거의 라이벌이었던 라이코넨이라는 점에서 알론소가 거둔 성과는 놀랍다. 어떤 의미에서 마싸를 크게 앞선 보타스의 경우보다 라이코넨을 압도한 알론소의 성적에 대해서는 어떤 칭찬도 아깝지 않다.

레이스카의 퍼포먼스가 형편 없고 조종성이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알론소의 성적이 꾸준했다는 점도 높게 평가해야 한다. 알론소는 차량 문제로 리타이어한 두 차례를 제외하고는 모든 그랑프리를 한자리 수 순위에서 마무리했다. 페라리의 레이스카가 4, 5위권의 퍼포먼스를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레이스를 4위권 차량으로 기대할 수 있는 순위인 7위보다 높은 순위에서 마쳤다. 헝가리 그랑프리에서 한동안 선두를 유지하다가 2위로 레이스를 마친 것은 2014시즌의 백미였다.

2014년 최고로 손꼽히는 다른 드라이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알론소가 심리적으로 동요 하지 않은 점 또한 높이 평가할 만 하다. 알론소는 시즌 중 팀 수석의 교체를 경험했고, 새로운 팀 수석과의 갈등도 커졌지만, 시즌 후반 팀을 떠나는 것이 결정된 뒤에도 전혀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포디엄에 오르거나 근접하지는 못했지만, 업데이트가 중단된 차량 성능을 고려하면 시즌 후반의 성적은 놀라울 정도로 우수했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봤을 때 알론소를 2014시즌 최고의 드라이버로 꼽는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 메르세데스 천하에서 3승을 거둔 다니엘 리카도

다니엘 리카도

보타스와 알론소가 각각 라이코넨과 마싸라는 강력한 팀메이트를 압도한 것도 놀라운 결과지만, 2014시즌 가장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레드불의 리카도가 베텔을 압도했다는 사실이다. 2014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리카도가 4년 연속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쥔 명실상부 F1 최강의 베텔보다 우위에 설 것으로 예상하는 이는 없었다. 디펜딩 챔피언과 비교하기에 2013년까지 리카도가 보여준 성적은 너무 초라했다.

하지만, 마크 웨버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서 토로로쏘에서 리카도를 불러 올린 레드불의 선택은 적중했다. 리카도는 시즌 개막전부터 베텔이 Q3 진출에 실패한 가운데 프론트로에 서는데 성공했고, 비록 실격 처리되긴 했지만 2위로 포디엄에 오르기도 했다.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리카도가 우승을 차지한 것은 메르세데스가 2014시즌 전승의 대기록을 수립할지 모른다는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리카도가 특히 대단했던 것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둬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뒤, 그보다 더 놀라운 결과를 계속 만들어낸다는 점이었다. 퀄리파잉에서 베텔을 압도한 것은 시즌 개막전만의 일이 아니었고, 이후 베텔이 페이스를 찾은 뒤에도 퀄리파잉에서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었다. 캐나다 그랑프리가 단 한 번의 예외가 되리라고 모두가 예상했을 때, 리카도는 헝가리와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연이어 우승을 차지하면서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1988시즌 맥라렌이 단 1승의 예외만 허용하던 시절에 비견되던 2014시즌의 메르세데스와 경쟁하면서 무려 3승을 거둔 것은 그 자체로 리카도의 놀라운 퍼포먼스를 대변하는 결과다. 리카도가 3승과 함께 여덟 번이나 포디엄에 오르는 동안, 베텔은 단 한 번의 우승도 기록하지 못한 채 단 네 차례 포디엄 피니시를 기록했다. 메르세데스가 너무나 압도적인 전력을 보유했던 2014시즌 흔히 유행했던 표현대로 ‘나머지 중의 최고’에 해당하는 3위를 거머쥔 리카도를 그대로 2014시즌 최고의 드라이버라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2014시즌 F1에서는 최고라고 손꼽을만한 드라이버가 많았다. 챔피언 해밀튼은 물론이고, 윌리암스의 부흥을 이끈 보타스, 페라리의 한 시즌을 캐리한 알론소, 베텔을 압도하고 ‘나머지 중의 최고’로 기적 같은 성적을 남긴 리카도 등이 모두 최고의 드라이버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물론 이들이 2015시즌에도 최고로 손꼽힐만한 활약을 할지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지간히 운이 따르지 않고 상황이 나쁘게 전개되기만 하지 않는다면 다음 시즌에도 이들이 주목할만한 드라이버가 될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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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수 칼럼리스트 〈탑라이더 jesusy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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