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의 포스트시즌 드라이버 이적 시장에서 마지막 남은 큰 이슈는 젠슨 버튼의 거취에 대한 부분이다. 시즌 종반에는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맥라렌의 다음 시즌 드라이버 라인업은 끝내 최종 전까지 발표되지 않았고, 12월초에 확정하겠다던 이야기가 무색하게 열흘이 더 흘러가 버렸다. 물론 이 글을 쓰고 게시되는 사이에 얼마든지 맥라렌의 공식 발표가 나올 가능성이 있지만, 늦어도 너무 늦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영국을 중심으로 버튼의 앞날에 대해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영국을 대표하는 F1 팀인 맥라렌이 영국을 대표하는 드라이버였던, 그리고 아직도 대표하고 있는 드라이버인 버튼을 내보낼지 모른다는 이야기는 팬들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발표가 너무 늦어지면서 버튼이 다음 시즌을 위한 선택지를 준비할 여유조차 주지 않은 것은 더욱 신경 쓰이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2010 코리아 그랑프리를 전후해 F1을 보기 시작한 사람이라든가 F1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꽤 잘 하긴 하지만 나이도 꽤 먹은 버튼에 대해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버튼을 보내 버릴지 모른다는 맥라렌이 왜 비난 받는지도 모를 수 있다. 이처럼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버튼과 버튼이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 맥라렌에서의 미래가 불투명한 버튼과 마그누센

기로에 선 맥라렌

일단 현재 맥라렌의 2015시즌 라인업과 관련된 드라이버는 네 명이다. 2010년부터 다섯
시즌 동안 맥라렌과 함께 했던 젠슨 버튼과 2014시즌 데뷔한 루키 케빈 마그누센까지 올 시즌 맥라렌 시트에 앉았던 두 명의 드라이버는 당연히 고려 대상이다. 여기에 페라리를 떠나는 것이 확정되고 80% 이상은 맥라렌 행이 유력한 페르난도 알론소와 지난 2년 동안 포뮬러 르노 3.5와 GP2에서 각각 2위를 차지했던 유망주 스토펠 반도어네도 맥라렌의 고려 대상에 올라있다.

버튼과 마그누센이 기존 드라이버로, 알론소와 반도어네가 새로운 드라이버로 대비되어 고려되는 것과 동시에, 버튼과 알론소는 베테랑 드라이버로, 마그누센과 반도어네는 미래
가 기대되는 유망주로 분류된다. 최소한 한 명의 베테랑 드라이버를 보유해야만 레이스카에 대한 피드백과 업데이트에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최소한 버튼과 알론소 중 한 명은 다음 시즌 맥라렌의 시트를 차지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머지 부분은 모두 오리무중이다.

먼저 알론소의 경우 이적 협상이 원만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다. 이미 페라리에서도 여러 가지 요구 조건을 내걸었다가 협상이 결렬됐던 알론소는 익히 알려진 대로 맥라렌과 1년 계약을 원할 가능성이 높다. 맥라렌으로서는 알론소를 잡는다면 당연히 다년 계약을 원할 것이다. 알론소와 협상이 틀어진다면? 맥라렌으로서는 절대 버튼을 놓쳐서는 안 되는 입장이다.

여기에 더해서 마그누센의 입장도 애매하다. 데뷔 첫 경기에서 포디엄 피니시에 성공하면서 기세를 올렸던 마그누센은 한 시즌을 보내면서 ‘스피드가 전부가 아닌’ F1의 무대에 완벽히 적응하지 못했다. 시작은 좋았지만 시즌 중반 이후로는 12살이나 많은 버튼에 점차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당장 성적을 거두지 못하더라도 맥라렌이 원했던 것은 ‘발전하는 모습’이었는데, 마그누센으로선 제자리 걸음을 했다는 인상이 짙다. 반도어네가 언급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맥라렌의 드라이버 라인업 결정은 결과적으로 의사결정권자들의 의지가 중요한데, 현재론 데니스와 TAG 측이 맥라렌의 주도권을 놓고 물밑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도 문제다. 당연히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원하는 드라이버 라인업도 달라질 것이다. 타이틀 스폰서 없이 한 시즌을 보냈던 맥라렌이 어떤 타이틀 스폰서를 새로 영입하면서(마그누센은 타이틀 스폰서는 아니더라도 대형 스폰서로 고국 덴마크의 레고를 끌어들이려 했지만 실패했다. ) 드라이버 라인업 구성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이쯤 되면 한가지 의아해지는 부분이 있다. 주변 상황이 복잡하고 역학 관계가 얽히고 섥혔다고 하더라도 젠슨 버튼이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하는 문제다.

 

▲ 2006년 혼다에서 첫 승을 신고한 버튼

이름값만으로도 쉽게 생각할 수 없다

젠슨 버튼은 F1 데뷔 이전부터 영국 모터스포츠의 미래를 이끌 유망주로 수퍼 스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대 초 ‘황제’ 미하엘 슈마허가 F1을 페라리의 독무대로 만들려고 했을 때, 감히 슈마허에게 도전했던 20대의 젊은 ‘4천왕’ 중 하나였다. 실제로 몬토야, 라이코넨, 알론소와 함께 버튼은 슈마허와 페라리에게 항상 위협이 되었고, 2006년 경쟁력이 부족했던 혼다 소속으로 헝가리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꼭 그랑프리 우승이 아니더라도 버튼은 2000년대 중반 영국 모터스포츠의 최고 수퍼 스타였다. 당시 영국 출신 F1 드라이버라면 쿨싸드와 버튼 두 명만 떠오르는 것이 당연했고, 최정상급이라고 얘기하기에 뭔가 부족한 느낌의 쿨싸드와 달리 버튼은 언젠가 챔피언이 될 수 있는 재목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수많은 화보 촬영과 광고 출연이 버튼의 인기를 증명했다. 적어도 2007년 해밀튼이 데뷔하기 전까지 버튼은 영국의 독보적인 스타였다.

그런 버튼이 혼다에서 수 년 간 (차량의 퍼포먼스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2009년 브런GP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했을 때 사람들은 더욱 환호했다. 2006년 단 한 번의 기회를 제외하고는 우승과 거리가 멀었던 젊은 스타가, 약체로 전락한 과거의 명가에서 어려움을 겪고 스폰서 하나 없는 팀의 저 연봉 드라이버가 되었고, 2009년 시즌 시작과 함께 화려하게 그리드 맨 앞 자리로 복귀한 것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일이었다.

결국 버튼은 2009시즌 고대하던 챔피언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챔피언 팀이었던
브런GP가 메르세데스의 팩토리 팀이 될 때 버튼은 고국 영국을 대표하는 맥라렌의 드라이버가 되었다. 맥라렌 이적 후 두 번째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한 버튼은 여덟 차례나
포디엄 정상에 올랐고 2011시즌에는 포인트 순위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010년과 2012년에는 팀메이트 해밀튼에게 뒤지긴 했으나 큰 차이는 없었고, 2013, 2014시즌에는 젊은 팀메이트들을 압도했다.

2014시즌을 기준으로 현역에서 활약 중인 챔피언 다섯 명 중 하나라는 것 이상으로 버튼의 활약은 충분히 빛났다. 고국에서의 인기도 인기지만 전 세계적으로도 버튼만의 유려한 드라이빙에 반한 팬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맥라렌 소속 기간 동안 충분한 성적을 냈다. 그런 버튼을 맥라렌이 쉽게 교체하는 것이 마땅한 일일까? 적어도 그의 이름값만으로도 이런 대우는 옳지 않아 보인다.

 

▲ 맥라렌 이적 후에도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온 버튼

버튼은 아직 녹슬지 않았다!

그렇다면 만약 맥라렌이 2015시즌에 버튼을 선택한다면 버튼은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까?

가장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부분은 그의 나이다. 현역 최고령 드라이버 순위에서 무려 2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실제보다 조금 과장된 느낌이 있다. 1980년생의 버튼은 이제 고작 34살일 뿐이다. F1 드라이버의 수명이 짧다고는 하지만 아직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할만한 나이는 아니다.

지난 2012시즌만 해도 최고령 드라이버였던 슈마허의 나이는 무려 43세였다. 2015시즌
버튼이 활약할 경우 35세의 드라이버라는 점을 생각하면, 여덟 살이나 더 어린 버튼의 나이를 걱정하는 것은 기우로 보인다. 나름 나이가 많은 편이었던 드라이버들이 한꺼번에 사라졌던 2013시즌에도 최고령 드라이버였던 웨버는 37세였다. 당장 현역 최고령 드라이버인 라이코넨은 다음 시즌 36세가 된다. 버튼의 나이를 걱정할 이유가 있을까?

버튼의 강한 체력과 자기 관리 또한 정평이 났다. 현역 F1 드라이버 중 가장 많은 15시즌 동안 활약하면서 역시 가장 많은 그랑프리에 참가해온 버튼이 체력이나 건강 문제를 겪은 적은 없다. 게다가 준 프로급의 실력을 선보이면서 자주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하는 버튼의 체력을 걱정하는 것은 브라질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출전을 걱정하는 것만큼 부질없어 보인다.

그런 바탕 위에서 버튼은 실적으로 자신의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해왔다. 2014시즌 강력한 수퍼 루키로 기대를 모았던 마그누센과 짝을 이뤄 시즌 초반 경쟁에서 많이 밀리는가 싶더니, 시즌 중반이 넘어서면서 확실히 팀메이트를 압도했다. 시즌 후반에는 단지 경기 운영뿐 아니라 단기적인 스피드에서도 버튼이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버튼도 언젠가는 노쇠할 날이 오겠지만, 올 시즌 버튼이 살아나는 모습을 봐서는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버튼의 실력이 녹슬고 성적이 따르지 못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알론소와 버튼의 조합? 안 될 이유는 없다

맥라렌의 선택은?

그렇다면 과연 맥라렌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지난 아부다비 그랑프리에서는 알론소의 맥라렌 행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이었지만,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버튼을 팀메이트로 두는 것’에 대한 질문이 알론소를 향했다. 버튼은
짓궂게 알론소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자기를 선택해달라는 애교 넘치는 애정 공세로 사람
들을 웃음짓게 만들기도 했다. 과연 맥라렌은 라이코넨-베텔의 페라리에 맞서는 버튼-알론소의 더블 챔피언 라인업을 만들게 될까?

일단 알론소와 버튼의 드라이빙 스타일은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레이스카 개발 방향에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게다가 2000년대 초반 엔스톤 팀 시절부터 가까웠던 두 드라이버의 친목에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두 명의 챔피언을 팀메이트로 만드는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F1에서 탑 클래스에 속하는 높은 연봉을 가진 드라이버 두 명을 한꺼번에 거느리는 것은 맥라렌에게 조금 부담스럽다. 페라리, 레드불, 메르세데스와 함께 대형 팀으로 분류되는 맥라렌이라고는 하지만 배경에 초대형 기업이 없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게다가 F1 팀 자체만 고려했을 때 재정 상태가 나빠지는 것은 오너나 대주주 입장에서 꺼릴만한 일이다.

미래를 생각하는 문제도 있다. 당장 2015시즌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혼다와 함께 2020년까지 줄기차게 성장해야 하는 입장에서 2020년이 되면 40세가 되는 버튼과 39세가 되는 알론소를 모두 거느리는 것은 무모해 보인다. 당장 2016년에 알론소가 다른 팀으로 떠나게 될 가능성까지 고려한다고 하면 팀의 미래를 이끌 드라이버를 착실히 키울 필요가 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버튼과 알론소 두 드라이버가 모두 맥라렌에서 활약하게 될 가능성을 높게 보기는 어렵다.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무언가 특별한 이슈가 있거나 오너, 대주주, 대형 스폰서, 엔진 공급자 등의 강한 의지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역시 버튼이 F1 무대를 떠나게 될 가능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살펴봤던 것처럼 맥라렌이 버튼을 보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되겠지만, 맥라렌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지 말란 법은 없다.

이제 맥라렌의 결단이 다가오고 있다. 그와 함께 버튼이 2015시즌 어디에서 활약하게 될
지 여부도 결정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우리는 영국 최고의 스타였고, 2009시즌 챔피언이
었던, 다른 누구에게서도 찾을 수 없는 유려한 드라이빙을 보여줄 수 있는 드라이버를 다음 시즌 다시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누군가 의도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맥라렌이 버튼의 앞날을 놓고 이런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F1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입장이고, 젊은 드라이버들에게 너무나 적은 기회를 주
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당위에도 불구하고 올드 팬들에게 너무나
소중한, 게다가 아직 실력도 녹슬지 않은 독보적인 스타일을 가진 드라이버를 다른 무대로 떠나 보내는 것 역시 가혹하다. 고지식하고 고리타분한, 과거에 얽매이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버튼이 어떻게든 F1에, 가능하다면 맥라렌에 남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윤재수 칼럼리스트 〈탑라이더 jesusy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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