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TV로 시청하는 스포츠 중 하나다. 1년에 스무 번 정도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그랑프리가 개최되기 때문에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면 현장을 모두 따라다니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공식 세션이 펼쳐지는 동안 여러가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에 경기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TV 중계를 시청하는 편이 낫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F1의 TV 중계 시스템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엄청난 기술과 노하우들이 집약돼있다. 특별한 것이 없는 양 자연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을테니.

 

 

 


▲ F1 중계 시스템으로 전세계에 생중계되는 프레스 컨퍼런스 현장

F1 그랑프리에서 레이스의 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두 대의 레이스카가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며 코너로 접어든다. 이들이 카메라 앵글을 벗어나려고 할 무렵 자연스럽게 진행 방향에 맞춰 다른 카메라가 잡은 영상으로 이어진다. 카메라들의 릴레이가 이어지는 가운데 화면 한쪽에는 두 대의 레이스 카 사이에 얼마만큼의 시간 차가 있는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정보가 표시된다. 경쟁이 좀 더 치열해지고 추월 시도가 일어나면 보다 자세한 주행 정보가 표시되기도 한다. 그 사이에도 카메라와 카메라의 릴레이는 끊이지 않는다.

하나의 피사체를 계속 추적하는 기술 한 가지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어떤 스포츠에서건 카메라와 카메라를 넘나들며 공이든 사람이든 하나의 대상을 보여주는 장면은 모두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그 피사체가 300km/h를 넘나드는 F1 레이스 카라면? 게다가 탁트인 경기장 가운데가 아니라 ‘꼬불꼬불한’ 코너들을 지나고 언덕을 넘나든다면? 빼어난 기술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면 탁탁 끊어지는 영상을 보게 될 가능성도 높고, 장면이 바뀔 때마다 어색함에 인상을 찌푸리게 될지도 모른다.

F1 중계에 익숙해진 사람이 두 세 등급 정도 낮은 클래스의 레이스 장면을 보게 된다면 누구라도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 국내 모터스포츠의 중계는 상황이 좀 더 열악하다. 절대적인 장비의 양도 차이가 나지만 시스템의 문제는 더욱 열악하다. 해외에서 방송의 피드를 받는 경우는 문제가 없지만 자체 제작한 영상은 이게 레이스의 중계 화면인지 바둑 중계 화면인지 알 수 없는 수준일 경우가 많다. 모터스포츠 중계를 많이 경험한 해외에서도 하위 클래스에서 영상이 썩 만족스럽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내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 공식 세션 전날인 목요일 이른 아침부터 준비중인 카메라맨

그렇다면 F1 중계 시스템은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런 영상을 내보내 사람들이 어색함을 느끼지 않게 하고 필요할 때 딱 맞는 화면을 내보낼 수 있을까?

일단 물량도 무시할 수 없다. 경기에 투입되는 카메라의 숫자부터 많다. 각 코너와 요소요소마다 배치되어 있는 카메라들은 70대에 육박한다. 카메라를 20대 이상 동원하고 운영하는 스포츠 중계는 아무리 인기 스포츠 중계라도 국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실제 국내에서도 F1 코리아 그랑프리에 70대 가량의 카메라가 배치되어 중계가 이뤄졌는데, 같은 코리아 인터내셔널 써킷에서 펼쳐진 다른 경기의 국내 경기에 투입된 카메라는 12대에 불과했다. 그나마 국내 스포츠 중계 중에는 이례적으로 많은 카메라가 투입된 것이었다.

카메라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단 카메라마다 한 명 씩의 카메라맨이 배치되어야 하고, 카메라의 숫자에 비례해 수많은 기술 지원 인력이 배치된다. 보조와 대기 인력을 반드시 배치하는 서구의 전통에 따라 배치되는 예비인력까지 생각하면 그 숫자는 크게 늘어난다. 위성과 유선으로 국제 신호를 송출하는 인력 역시 만만치 않다.

더 놀라운 부분은 ‘F1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는 비닐하우스 형태의 건물(형태만 그렇지 비닐하우스는 아니다. ) 속에 있다. 수많은 영상들을 실시간으로 접하며 방송에 내보낼 화면을 골라내는 인력들이 건물 안에 모두 모여 있다. 동시에 작업되는 PD의 숫자는 열 명이 넘는다. 작은 케이블TV 방송국을 하나 꾸려도 될만큼의 PD들이 생중계에 투입되는 것이다.

 

 

 


▲ 한 번 올라가면 일정이 끝날 때까지 내려올 수 없는 카메라맨

하지만 물량이 F1 TV 중계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물량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오랜 경험에서 축적된 노하우와 모터스포츠에 대한 이해가 더 중요한 부분이다. 결국 문제는 사람이다. 보다 나은 중계 화면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발로 뛰고 땀을 흘린 결과물이란 얘기다. 연습 주행이 펼쳐지는 금요일도 아니고 공식 세션이 펼쳐지기 전날인 목요일에도 하늘 높이 카메라맨이 배치된다. 목요일이라도 낮시간 내내 내려올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PD의 역할은 더 중요하다. 국제 신호의 메인 피드에 어떤 화면을 내보낼 것인가? 추가적인 피드( F1 중계 시스템의 국제 신호에는 다양한 영상들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 )에는 어떤 영상을 내보낼 것인가? 화면에 표시할 타이밍 정보는 어떤 것으로 할까? 팀 라디오는 어느 것을 언제 들려주고 리플레이는 언제 내보낼까? 시청자가 원하는 것들을, F1 그랑프리를 보고 즐기는데 필요한 것들을 골라내는 것은 결코 기계가 알아서 해줄 수 없는 부분이다.

중계 화면의 타이밍 정보도 자세히 보면 세심한 노력이 보인다. 매년 그대로인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매년 조금씩 바뀌고 있는 인터페이스는 보다 나은 정보 전달을 위해 날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글씨와 배경의 색깔 하나 하나 박스의 모양 하나 하나 세밀한 신경을 쓴다. 남들은 안 그러냐고? 잘 만드는 중계 화면들은 물론 다들 많은 신경을 쓴다. 하지만 국내 스포츠 중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가독성만을 위한’ 인터페이스와 덕분에 신경이 거슬리고 결과적으로 싸보이는 자막의 압박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라는 얘기다. 만드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신경을 쓰고 시간과 돈을 들여 노력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디자인 역시 기계가 자동으로 만들어줄 수 없다.

 

 

 


▲ 자체 추가 영상을 위한 촬영 중인 SkyF1 카메라맨

F1의 중계 시스템을 담당하는 FOM의 F1 커뮤니케이션에서 점차 모든 그랑프리의 중계 영상 제작을 도맡으면서 최근 몇년 F1 중계 화면의 질은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부분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물론 FOM이 벌어들이는 돈과 평소의 물량 공세를 생각하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F1 자체가 자본주의의 총아이고 돈잔치의 극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하지만 앞서 새로운 기술과 성능 좋은 기계가 사람을 대신할 수 없다고 얘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돈 역시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다. 돈만 있으면 이런 중계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돈만 있으면 어떤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돈과 기계, 기술로 대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오랜 시간 축적된 노하우와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현재의 F1 TV 중계 시스템은 예술에 가깝다.

이런 시스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여기고 의식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뜻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그것도 좋은 일이지만 이마에 주름이 갈 때까지 같은 일을 하면서 땀을 흘린 사람들의 노력이 간혹 무시되는 모습은 아쉽다. F1 커뮤니케이션을 포함해 추가적인 영상 제작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 국내 TV 중계시스템을 포함해서 )의 땀이 없었다면 시청자들이 안방에서 F1 중계를 즐기며 어색하지 않고 편안하게 TV 화면에 집중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모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알게 됐다면 조금은 그 가치를 인정해주면 어떨까?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TV 중계 시스템에 한정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F1 그랑프리의 모든 부분이 마찬가지다. 기술이 발전하고 기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컴퓨터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 같지만, 결국 문제는 사람이다. 사람이 차를 몰고 사람이 데이터를 분석한다. CFD의 복잡한 계산은 컴퓨터가 할지 모르지만, 시뮬레이션의 환경을 설정하고 그 결과를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차량을 조립하고 정비하고 분해하는 것도 사람이고, 핏스탑도 사람의 손으로 이뤄진다. 보는 관점에 따라 모든 것을 기계가 해결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F1도 결국은 사람의 스포츠다.

윤재수 칼럼리스트 〈탑라이더 jesusy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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