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은 좋든 싫든 현실적으로 남성 위주의 스포츠다. 대부분의 모터스포츠가 그렇듯 다수의 드라이버는 남성이고 미캐닉이나 엔지니어 중에서 여성의 모습을 찾기는 더욱 힘들다. 일단 현재 22 명의 F1 드라이버는 모두 남성이고, 여성 드라이버가 F1 그랑프리의 공식 세션에 마지막으로 참가한 이후 22년이 흘렀다. 여성 드라이버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F1 그랑프리에서 포인트를 획득한 것은 벌써 39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F1이 남성만의 스포츠인 것은 아니다. 다른 모터스포츠가 다 그렇듯이 성별에 관계 없이 많은 사람들이 F1 그랑프리를 위해 패독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당연히 그 중 상당수는 여성이다. 그리고 이처럼 패독에서 움직이는 여성들이 없다면 F1 그랑프리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F1 팬 중에서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F1 팀원 중에도 여성의 비율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F1 패독의 여성들이 하는 일은 다양하다. 구시대적 관점으로 봤을 때도 여성이 참여한다고 해서 크게 어색하지 않을 호스피탤리티 관련 업무와 홍보 관련 업무에서는 남성보다 여성의 비중이 더 높다. F1 팀의 미캐닉과 엔지니어 중에도 여성이 있고, 시트 확보를 꿈꾸는 테스트 드라이버 중에도 여성의 얼굴이 보인다. F1 팀을 이끄는 최고 관리자 리스트에도 여성의 이름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F1 패독의 여성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F1 드라이버들과 동행하는 그들의 파트너들이다.
 
▲ 젠슨 버튼의 파트너 제시카 미치바타
 
일단 F1 그랑프리의 TV 중계를 처음 보는 시청자들도 몇몇 F1 드라이버의 파트너가 화면에 잡히면 이들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다. 많은 F1 드라이버들이 그랑프리에 그들의 파트너들과 동행하고, 드라이버가 레이스카에 올라 트랙에 질주하는 동안 많은 여성들이 가라지 에서 그들의 파트너가 달리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리고 몇몇 F1 드라이버의 파트너들은 빼어난 미모로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F1 패독에서 가장 유명한 드라이버의 파트너라면 젠슨 버튼의 파트너인 제시카 미치바타를 꼽을 수 있다. 2009년부터 젠슨 버튼과 교제를 시작한 제시카 미치바타는 하마사키 아유미나 비비안 수 등 유명인들이 모델로 활동했던 일본의 란제리 브랜드 피치 존 등에서 활약한 모델 출신으로, 멀리서 보기에도 일반인과는 다른 아웃라인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현재 제시카 미치바타는 태그호이어의 홍보 대사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다.
 
물론 F1 패독을 사로잡은 제시카 미치바타가 단지 F1 팬들의 눈요기거리가 되기 위해 파트너의 곁을 지키는 것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F1 그랑프리에서 미치바타는 버튼의 아버지와 함께 ‘응원군이 되어주는 가족’의 역할을 수행해 왔고, 복잡한 여성 편력 덕분에 호사가들의 좋은 먹잇감이었던 버튼의 성적 역시 미치바타와 파트너가 된 이후 상당한 안정감을 보여주고 있다. 버튼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혼자서 가족의 임무를 다하고 있고,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 버튼과 약혼을 하면서 실제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 페르난도 알론소의 파트너 다샤 카푸스티나
 
많은 드라이버들이 파트너와의 약혼과 결혼, 자녀의 출산 등을 통해 안정감을 찾곤 한다. 극한의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고,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더없이 격렬한 싸움에 나서는 F1 드라이버들 중에도 파트너와 가족을 이루고 아들 딸을 낳으면서 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2005, 2006년 2년 연속으로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줬던 페르난도 알론소는 두 번째 챔피언타이틀을 획득한 뒤 밴드 ‘엘 수에뇨 데 모르페오’의 보컬인 라켈 델 로사리오와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후 알론소의 성적은 만족스럽지 못했고,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5년만에 막을 내렸다. 델 로사리오와 이혼한 뒤 알론소는 2012시즌 중반까지 포인트 순위 선두를 달리며 예전의 강력했던 모습을 되찾았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던 2012시즌 중반 알론소는 새로운 여자 친구를 사귀기 시작했는데, 공교롭게도 파트너가 생긴 이후의 성적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일본을 주 무대로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활동하던 모델 다샤 카푸스티나는 대부분의 그랑프리에서 페라리 가라지를 지키며 알론소를 응원하고 있지만, 적어도 알론소에게 카푸스티나의 존재가 성적을 끌어 올리거나 안정감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알론소와 같은 시대를 풍미한 키미 라이코넨 역시 파트너의 존재가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라이코넨은 2004년 핀란드 출신의 전 미스 스칸디나비아 예니 달만과 결혼했지만 현재 두 사람은 완전히 갈라섰다. 라이코넨은 이미 지난해부터 새로운 파트너인 민투 비르타넨과 교제 중이다. 다만 알론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라이코넨에게 파트너의 존재와 드라이빙 퍼포먼스와의 관계는 찾아볼 수 없다. 현역으로 남아 있는 다섯 명의 챔피언 가운데 알론소와 라이코넨만이 결혼을 했었는데, 현재는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고 있다는 점 역시 작은 공통점이다.
 
▲ 루이스 해밀튼과 니콜 셰르징거
 
많은 드라이버들에게 파트너의 존재는 안정감을 더해주고 집중력을 높여주는 훌륭한 지원군의 역할이고, 알론소나 라이코넨의 경우에는 아내의 존재가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파트너의 존재가 해가 되는 경우도 있을까? 단정지어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루이스 해밀튼의 파트너인 니콜 셰르징거의 경우에는 파트너의 존재가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해밀튼의 역사적인 데뷔시즌이었던 2007시즌이 끝난 뒤 교제를 시작한 두 사람의 관계는 한마디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관계였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를 반복하면서 공식적으로 이별했다는 발표가 몇 번이나 나왔는지도 세기 힘들 정도다. 그리고 공교롭게 라기보다는 그도 그럴만하다는 이야기가 어울릴법하게 해밀튼의 성적은 복잡한 개인사에 따라 부침을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해밀튼과 셰르징거의 이별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2013년 여름인데,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 프리-시즌 테스트를 치르는 해밀튼의 모습을 트랙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셰르징거의 모습이 다시 카메라에 잡히며 두 사람이 여전히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 현재진행형의 관계라는 이야기가 많다. 적어도 해밀튼에게만큼은 파트너의 존재만으로 성적에 좋은 영향을 기대하기 힘든데, 실제 사실 관계가 어떻든 셰르징거가 ‘해밀튼의 성적이 좋을 때만 나타난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 세바스찬 베텔과 한나 프라터
 
결국 사생활이라는 것은 충분히 안정된다면 성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드라이버들이 파트너와 함께 하면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집중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지지만, 파트너가 있다고 해서 성적이 좋아진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때로는 파트너와의 복잡한 관계와 어지러운 사생활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부 드라이버들은 자신의 사생활을 기자와 팬들의 눈으로부터 가능한 보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지난해까지 4년 연속으로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던 베텔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베텔은 다른 챔피언들과 달리 파트너와의 사생활을 최대한 언론의 시선에서 보호하고 있다. 베텔이 고등학생 시절 만난 ‘일반인’인 한나 프라터의 경우 다른 드라이버들의 파트너와는 달리 유명인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언론의 노출을 꺼리는 편이다. 여기에 사생활은 사생활로 남겨두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베텔 덕분에 공식적인 몇몇 이벤트를 제외하면 프라터의 모습을 만나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그랑프리에서도 그녀는 가라지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텔과 프라터의 관계는 상당히 오랫동안 흔들림 없이 잘 유지되어 왔고, 올 시즌을 앞두고 자녀가 태어나면서 더욱 안정을 찾을 전망이다. 베텔의 딸은 현역 F1 드라이버의 유일한 자녀기도 하다. 물론 베텔은 딸과 관련된 질문은 사생활이라는 이유로 긴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언론에서도 자제하는 분위기다. 파트너와 가족이 드라이빙에 도움을 주는 것을 기대하지만 사생활에 따른 논란과 그에 따른 부작용은 피하고 싶은 욕구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어떤 성인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F1 드라이버에게는 가족과 파트너의 존재가 큰 힘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는 파트너와의 이런저런 사건들이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 다른 건 몰라도 F1 패독에 출입하는 드라이버의 파트너들에게는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 간혹 팬들 중에는 왜 팀원이 아닌 드라이버의 파트너가 가라지에서 자꾸 카메라에 잡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불평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녀들의 존재가 더 재미있는 레이스를 만들고 더 멋진 드라이빙을 이어가는데 도움이 된다면 응원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여주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 단순히 눈요기거리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인 F1의 일부로서 드라이버의 파트너들의 존재가 받아들여지면 좋겠다.
 

윤재수 칼럼리스트 〈탑라이더 jesusy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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