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와 스바루가 각기 새로운 스포츠카를 야심차게 내놨다. 취재진들도 이들 스포츠카를 취재하기 위해 열을 올렸지만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스바루 전시장에서 조금 전 봤던 차가 이름만 바꿔 도요타 전시관에 그대로 전시돼 있는 듯 해서다.

도요타는 지난 30일 도쿄모터쇼에서 4인승 소형 스포츠카 '86'을 공개했다. 같은 날 스바루도 스포츠카 'BRZ'를 공개했다. 이 두 차종은 엔진부터 변속기, 무게, 크기, 주요 디자인까지 모두 동일하다. 차이점은 트렁크 위의 에어스포일러와 옆구리의 장식품 정도다. 주의력이 뛰어난 사람만 몇가지 차이점을 찾을 수 있을 정도다.

실상 이 차는 도요타와 스바루의 합작품으로, 결과물도 양측 회사에서 각기 판매하고 있다. 이같은 이종교합이 이뤄진 까닭은 최근의 도요타의 어려움과 지분구조 변화의 영향 탓이다.

▲ 도쿄모터쇼에 공개된 스바루 'BRZ'(위)와 도요타 '86'(아래)

최근 도요타는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미국과 유럽 시장을 공략할 새로운 저가 스포츠카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특히 도요타는 마케팅은 우수하지만 핸들링과 주행성능에서 닛산 등 경쟁브랜드에 비해 다소 뒤쳐지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기 위한 차량 투입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국내외의 어려움으로 인해 개발비용 절감이 필요했고 주행성능이 우수한 스바루의 플랫폼을 대거 활용했다. 이들 차에는 새로운 직분사 시스템이 더해졌지만, 가장 중요한 4기통 수평대향 엔진은 스바루만 만들 수 있는 독자 기술이다. 또한 주행성능을 좌우하는 서스펜션 세팅 등 대부분 기술도 모두 스바루의 기술력을 이용해 개발됐다.

도요타는 닛산, 스바루 등 경쟁브랜드에 비해 주행성능이 뒤쳐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같은 차를 양쪽 브랜드에서 내놓음으로써 이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스바루의 기술력으로 도요타 차를 만들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결과가 됐다.

스바루(후지중공업)는 본래 60년대부터 31년간 닛산이 20%의 지분을 갖고 있는 자회사였지만, 2005년부터는 도요타가 지분의 16.7%를 인수하면서 대주주가 됐다. 따라서 도요타 입장에선, 닛산이 가진 스포츠 주행 등 선진 기술을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됐다.

닛산이 가장 강력한 경쟁사인 도요타에 자사 기술력이 집중된 회사를 넘겨 줄 리는 만무했겠지만, 1999년 르노-닛산의 합병 당시 카를로스곤 회장 주도로 닛산의 기업 정상화를 진행하면서 스바루를 GM에 매각했고, 이를 다시 도요타가 넘겨 받으면서 이같은 결과가 나왔다.

▲ 출시 예정인 도요타86(위), 2006년식 BMW Z4(아래)

그동안 스바루는 우수한 기술력을 갖추고도 도요타에 비해 '잘 팔릴만한 차'를 만들지 못해 기업운영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러나 이번 86과 BRZ은 도요타가 콘셉트를 잡으면서 어느 정도 판매는 무난하게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디자인에는 도요타의 입김이 많이 작용한 듯 하다. 스바루 답지 않게 무난한 면이 많고, 심지어 외국 메이커를 고스란히 베낀 듯한 부분까지 눈에 띄기 때문이다.

▲ 한 외국인 기자가 도요타 '86'의 실내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헝겊으로 만들어진 시트 등이 비좁고 아쉬워 보인다.

최신 차종임에도 불구하고, 실내의 디자인은 한국인 기준에선 깜짝 놀랄 정도로 저가차 느낌이 강하다. 전시차에는 가죽시트가 아닌 직물시트가 장착돼 있었는데 직물의 질감 또한 너무 저렴해 보였다.

전시 관계자는 "옵션으로 가죽시트를 장착할 수 있겠지만 직물시트를 주력으로 할 생각"이라며 "고속으로 달릴 때는 직물 시트가 더 몸을 잘 잡아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도요타는 당초 실험적인 차들과 스포츠카들을 많이 만들어왔지만, 90년대 들어 압도적인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르고 나서부터는 '안정적이고 무난한 차 만들기'에 주력해 왔다. 하지만 최근들어 세계 시장에서 각종 위기가 계속되자 '다시 태어난다(Re BORN)'를 표어로 내걸고 슈퍼카와 스포츠카, 전기차 제작 등 다양한 시도를 벌이고 있다.

김한용 기자 〈탑라이더 whynot@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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