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EV9 4WD를 시승했다. EV9은 기아의 전기차 플래그십 모델로 대형 SUV 차체에 3열 6~7인승 구조를 갖춘 신개념 전기차다. 고가 전기차에 어울리는 우수한 정숙성과 승차감이 특징이다. 특히 운전보조장치 동작이 정교하며, 레벨3 자율주행 HDP 완성도가 기대된다.

기아의 전기차 출시 행보가 남다르다. 기아는 오는 2025년부터 출시되는 풀체인지 신차를 모두 전기차로 채울 예정으로, 2030년부터 전기차만 출시할 현대차보다 5년 빠른 전동화를 계획하고 있다. EV9은 기아 전기차의 플래그십 SUV 모델로,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기아는 브랜드 정체성에서 그룹내의 현대차나 제네시스와는 다른 색채를 띄고 있다. 동일한 플랫폼에서 디자인과 구성을 달리해 출시하는 것으로 비용절감을 이루고 있지만, 고급화에서만큼은 기아는 혁신성, 현대차는 소재와 마감의 고급화로 분명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일례로 EV9에는 현대차그룹 최초의 3세대 자율주행 시스템 HDP가 탑재됐다. 레벨3 자율주행은 주어진 조건내에서 사고의 책임이 제조사에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가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데, EV9의 HDP는 사실상 세계 최초로 양산차에 적용됐다.

시승차는 EV9 4WD 어스 7인승으로 차량가 8169만원에 6인승 옵션을 제외한 나머지 옵션이 663만원 추가되며, 보조금 319만원(4WD, 21인치 기준) 적용시 약 8513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 원격 스마트 주차보조2는 평생이용 구독시 50만원, 연구독시 12만원이 더해진다.

3열 구성의 대형 SUV 전기차를 8천만원 중반에 구입하는 셈이다. 국내에서 구입 가능한 3열까지 제공하는 전기 SUV는 메르세데스-벤츠 EQS SUV가 유일한데 가격은 1억5270만원이다. EV9의 경우 실내공간이 3열 미니밴에 가까운 구성을 보여 사실상 경쟁차가 없다.

EV9의 외관 디자인은 직선과 면을 강조한 미래지향적인 분위기다. 동글동글한 EV6와는 공통점이 전혀 없는데, EV9 이후 출시될 EV5 역시 EV9과 유사한 디자인을 갖는다. EV9의 전장 5010mm, 전폭 1980mm, 전고 1755mm, 휠베이스 3100mm는 실차가 더 거대해 보인다.

차량 구분상 대형 SUV 전기차에 속하지만, 카니발의 전장 5155mm, 전폭 1995mm, 전고 1775mm, 휠베이스 3090mm와 유사하다. 다만 편평한 보닛과 보디의 볼륨감, 넓은 회전각으로 인해 주차시 난이도가 높다. 서라운드뷰 모니터는 선택이 아닌 필수 옵션 중 하나다.

실내는 넓은 공간에 직선 중심의 디자인이 적용돼 쾌적하다. 좌우는 물론 레그룸까지 여유롭다. 전기차의 지속가능성을 강조하기 위해 쓰인 친환경 소재는 고급스럽다고 얘기하기 어렵지만, 부품간 조립 마감이 좋다. 중앙부 우드패널에 스며든 버튼은 조작감이 불분명하다.

실내 공간과 적재공간은 체감상 현대차 팰리세이드에 가깝다. 3열 시트를 사용해도 트렁크공간에 여유가 있다. 비교적 낮고 편평한 실내 바닥을 통해 거주성은 오히려 좋다. 3열 진입시 공간이 다소 애매한데, 3열을 자주 사용한다면 6인승 시트 구성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EV9 4WD 모델은 전륜과 후륜에 2개의 전기모터가 적용돼 최고출력 283kW(384마력), 최대토크 600Nm(61.2kgm), 부스트 옵션 선택시 700Nm(71.4kgm)다. 배터리팩은 99.8kWh, 주행거리 454km, 복합전비 3.9km/kWh다.(2WD 기준 주행거리 501km, 복합전비 4.2km/kWh) 

EV9의 시트포지션은 대형 SUV 보다는 다소 낮은 크로스오버와 SUV 사이 수준으로, 넓은 그린하우스를 통해 전방은 물론 측방 시야가 좋다. 편평한 보닛으로 인해 전방 바로 아래, 넓은 전폭으로 인해 우측 사이드미러 부근에 사각이 생기는데, 서라운드 뷰로 해결된다.

도심을 비롯한 일상주행에서는 내연차와 유사한 가감속이 인상적이다. 회생제동 1단계 기준, 더 이상 전기차만의 이질적인 가감속에 적응하지 않아도 된다. 21인치 휠 옵션에는 셀프 레벨라이저가 포함되어 있는데, 후륜 대용량 댐퍼 개념으로 승차감 개선에 크게 일조한다.

21인치 휠은 고효율 타이어를 사용해 전비면에서도 19인치를 앞서는 만큼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옵션이다. 전반적인 승차감은 무겁고 안정적인 타입으로, 무게감을 강조하는 동시에 롤과 피칭에 대해 어느정도 허용한다. 하지만 본격적인 달리기에서는 자세 제어가 좋다.

스포츠 모드나 빠른 가감속을 반복하는 상황에서는 일상주행에서의 여유로움과 달리 필요한 만큼의 탄탄한 주행감을 전한다. 느리고 부드러운 쇼크와 빠르고 날카로운 쇼크를 구분하는 감각이다. 다만 고속에서의 잦은 조향시 전륜 서스펜션이 좀 더 단단하면 좋겠다.

만족스러운 승차감과 함께 정숙성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 최고속도에 가까운 초고속주행시에도 풍절음이 적다. 대부분의 영역에서 승차감은 제네시스 GV80을 앞선다. 측면 유리는 모두 이중접합유리가 적용되는데, 유리면적이 크고 비교적 얇아 두께를 늘릴 필요가 있다.

전후 구동배분은 발진시 사륜에 고른 구동력으로 시작, 스포츠 모드는 전 구간 5:5 지향, 에코 모드는 100km/h 이상에서 후륜만 구동된다. 기본적으로 후륜 전기모터를 주로 사용해 후륜구동의 밀어주는 감각이 있다. 최고속도는 207km/h, 에코 모드에서는 180km/h다.

파노라믹 와이드 디스플레이 중앙에는 공조장치 조작부가 위치하는데, 주행시 스티어링 휠에 가려져 시인성이 좋지 않아 개선이 필요하다. 구독 서비스의 경우 점등같은 불필요한 부분이 아니라, 차박 모드를 별도로 만들어 차박에서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추천한다.

EV9에서 가장 진보된 부분은 운전보조장치 동작의 적극성이다. HDA2라고 불리는 현대차그룹의 최신 시스템 중에서도 차로중앙유지가 가장 정확하다. 스티어링 휠을 90도 가까이 돌려야 하는 고속도로 램프에서도 차로를 정확히 인식해 돌아나가는데 놀라운 수준이다.

EV9은 기아의 전기차 기술력이 집약된 모델이다. 커다란 덩치와 단면폭 285mm에 달하는 21인치 휠에도 4.5km/kWh 수준의 전비를 쉽게 넘어서며, 공차중량도 2565kg 수준으로 가벼운 편이다. 차박을 비롯해 캠핑용 전기차를 원하는 소비자에게 EV9의 대안은 없다.

이한승 기자 〈탑라이더 hslee@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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