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G90 3.5T AWD를 시승했다. G90는 제네시스 브랜드의 플래그십 모델로 4세대로 진화하며 글로벌 경쟁차 수준으로 성장했다. 출시 만 1년을 넘어선 시점에서 혁신적인 면모는 희석됐지만, 연비를 제외한 실내 소재와 구성의 고급감과 정숙성, 가성비는 우수했다.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 중 F 세그먼트 대형세단을 보유한 나라는 많지 않다. 제조업 강국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중 글로벌 시장에 선보일 만한 럭셔리 대형세단의 판매를 이어가는 곳은 벤츠, BMW, 아우디의 독일, 캐딜락의 미국, 렉서스의 일본 정도다.

특히 한국 시장은 럭셔리 대형세단에 대한 선호와 판매가 높은 곳으로 손꼽힌다. 벤츠 S클래스의 국가별 판매량에서 한국은 매년 3~5위를 기록할 정도로 럭셔리 대형세단에 대한 수요가 많다. 2022년에는 G90가 2만2345대 판매되며 1만1645대의 S클래스 판매를 압도했다.

2022년은 반도체 이슈로 인한 수급 불안정 등 수입차에 상대적으로 불리한 여건이 있었음을 고려해도 G90의 상품성이 국내 시장에서 통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다만 2022년 미국내 판매의 경우 1172대로 신형 G90를 투입하고도 2021년의 1821대 대비 판매량은 줄었다.

신형 G90의 외관은 3세대 G90 대비 미래지향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기존 모델이 보수적이면서 실패하지 않을 디자인을 고수했다면, 신형 G90는 앞으로의 5년을 버텨내기 위한 앞선 디자인 요소를 다수 채용했다. 젊은 소비자가 직접 운전해도 어색하지 않을 디자인이다.

전면부에서 눈에 띄는 디자인 요소는 MLA(Micro Lens Array) 기술의 슬림한 헤드램프다. 양산차 중 가장 슬림한 타입으로 방향지시등과 미등, 전조등 역할을 겸한다. 하나의 알루미늄 패널로 제작된 크램쉘 보닛은 제조 단가는 물론 조립 정밀도에서의 자신감이 만든 결과다.

범퍼 하단부 좌우에 위치한 레이더 패널은 올해 상반기 출시가 예상되는 레벨3 수준의 고속도로 자율주행 시스템 HDP(Highway Driving Pilot) 적용을 위해 미리 사용된 디자인 요소다. 기존 대비 완만한 곡선으로 형태가 변한 전면부 그릴은 향후 제네시스 신차에도 적용된다.

후면부는 슬림한 리어램프가 두 줄로 이어지는 형태다. 제네시스 라인업의 패밀리룩을 이어가는 디자인을 기반으로 하지만, 어두운 외장 컬러에서는 비교적 평범한 모습이다. G90만의 고급감을 높일 디테일이 추가될 필요는 있겠다. 밝은 컬러와 어울림이 좋은 디자인 요소다.

측면부는 긴 보닛과 휠베이스, 완만하게 낮아지는 트렁크리드를 통해 후륜구동 고급차의 전형적인 프로포션을 확보했다. 헤드램프에서 펜더로 이어지는 두 줄 방향지시등은 제네시스 만의 아이코닉한 디자인이다. 처음 사용된 형태의 윈도우 그래픽은 다소 어색한 모습이다.

실내는 수평형 대시보드를 중심으로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모니터가 이어진 형태다. 계기판 좌우로 솟은 조명 조절장치는 불필요한 디자인으로 보여진다. 부드러운 시트 가죽을 비롯해 소재의 고급감과 다른 소재간의 통일된 컬러감은 세계 정상 수준에 가까워졌다.

이같은 고급감은 시그니쳐 디자인 셀렉션(550만원)을 추가해야 누릴 수 있다. 제네시스에 사용되는 가죽이 고급감과 컬러감이 몇 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한 부분은 메르세데스-벤츠 출신 전문가의 역할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시트의 디자인은 렉서스 LS와 유사한 점이 많다.

파워트레인은 3.5리터 V6 T-GDi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 AWD 사륜구동이 조합돼 최고출력 380마력, 최대토크 54.0kgm를 발휘한다. 5인승 AWD 20인치 기준 공차중량은 2110kg, 복합연비는 8.3km/ℓ(도심 7.2, 고속 10.1)이다. 롱보디의 48V E-슈퍼차저 버전은 415마력이다.

기존 3.3 터보를 대체하는 3.5 터보는 센터 인젝션과 수냉식 인터쿨러가 적용된 새로운 엔진이다. 배기량이 200cc 늘어났지만 출력은 10마력 높이는데 그쳤는데, 효율성과 일상주행시 편안함이 강조된 셋업이다. S클래스나 7시리즈 대비 낮은 연비는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다.

일상주행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실내 정숙성이다. 정차는 물론 아이들링 상태에서도 실내로 전달되는 소음과 진동은 거의 없다. 또한 엔진룸에서 외부로 전달되는 소음의 차음도 좋은 수준이다. 아이들링스탑과 재시동 과정이 다소 느린 점을 제외하면 완벽에 가깝다.

시트포지션과 전방시야는 꽤나 좋은 편에 속한다. 1열 시트의 착좌감은 좋은 소재와 디자인이 더해져 대단히 안락하다. 에어셀 타입 안마 기능도 좋았다. 과거 독일산 경쟁차와 비교시 시트의 높이가 다소 높은데, 전기차까지 고려된 최근 출시되는 모델과는 유사한 수준이다. 

신형 G90는 에어 서스펜션과 후륜 조향장치가 함께 적용된 최초의 국산차다. 에어 서스펜션은 기존 전자제어 서스펜션과 비교시 전후 차고 조절 기능이 추가돼 기울어진 노면에서 차체의 평형을 유지시켜 준다. 평형 유지 기능은 주차시에도 유지돼 승하차를 돕는다.

승차감은 기존 G90 대비 미묘하게 단단하지만 부드러워졌다. 차체강성이 향상되면서 견고한 주행감각이 확대됐는데, 에어 서스펜션 특성상 요철 말단에서 전달되는 뾰족한 충격은 줄었다. S클래스와 7시리즈의 중간이라고 하고싶지만, 신형 7시리즈가 꽤나 부드러워졌다.

후륜 조향장치는 조향시 타이어에 가해지는 힘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전륜만 조향하는 상황에서는 후륜이 강한 횡력을 견뎌야 하지만, 속도에 따라 내측 혹은 외측으로 후륜이 움직이며 타이어 부담을 줄여준다. 보다 빠른 속도의 코너링도 보다 부드럽게 소화한다.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쇼퍼드리븐을 위한 차량 셋업은 민첩한 움직임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느긋하게 움직인다. 주행성능에 보다 무게를 두는 벤츠 S클래스나 BMW 7시리즈가 유사한 상황에서 꽤나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독일차의 고집으로도 생각된다.

제네시스 G90는 독일산 경쟁차 대비 30% 저렴한 가격으로 90%의 성능을 보여준다. 부족한 면은 주행성능과 연비, 유저인터페이스(UI) 부문으로, 일반적으로 럭셔리 대형세단에 기대하는 고급감과 승차감, 정숙성에서는 비슷하거나 오히려 앞선다. G90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이한승 기자 〈탑라이더 hslee@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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