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GR86 MT를 시승했다. GR86은 3세대 풀체인지 모델로 AE86(1983년), 토요타 86(2012년)을 계승한다. GR86은 '펀 투 드라이브' 모터 아래 별도의 튜닝을 하지 않아도 서킷 주행을 즐길 수 있음은 물론, 기존 대비 펀치력을 높이고 승차감은 좋아져 매력적이다.

전동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현재 자동차 업계 상황에서도 전통적인 내연기관 펀카에 대한 수요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소비자들에게 가장 주목받는 모델이 바로 토요타 GR86이다. GR86은 경량화와 후륜구동(FR), 수동변속기로 구성돼 정통 스포츠카의 가치와 일치한다. 

국내에서 스포츠카로 부를 수 있는 차량의 계보는 스쿠프-티뷰론-투스카니-제네시스 쿠페, 그리고 벨로스터와 아반떼로 대표되는 N 라인업과 제네시스 G70, 기아 스팅어의 럭셔리 고성능 세단으로 이어졌다. 이미 90년대에 고성능 스포츠카를 선보인 일본과 다른 양상이다.

토요타는 르망 24시 4연패, WRC 우승 등 굵직한 모터스포츠 경기에서 유럽 자동차 제조사를 제치고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모터스포츠를 주도하는 부문은 '토요타 가주레이싱(TGR)으로, GR86 개발에 가주레이싱의 엔지니어와 드라이버가 직접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제 스피디움에서 만난 GR86의 첫인상은 작고 낮은 차체가 인상적이다. 전장 4265mm, 전폭 1775mm, 전고 1310mm, 휠베이스 2575mm의 차체에는 무려 후륜구동 플랫폼(FR)과 수평대향 박서엔진이 자리잡고 있다. 수평대향 엔진은 포르쉐의 박서엔진과 유사한 구성이다.

저중심 플랫폼 위에 낮게 위치한 엔진과 함께 운전자의 시트포지션 역시 바닥에 가깝게 위치한다. 시트포지션이 낮지만 일자형 대시보드와 가파르게 떨어지는 보닛으로 인해 전방 가까운 곳의 시야가 좋은 구성은 포르쉐가 즐겨 사용하는 방식으로 비슷한 구석이 꽤나 많다.

차체 경량화를 위해 보닛과 루프에 알루미늄 소재를 확대 적용해 전후 5:5 무게배분과 함께 무게중심을 낮췄다. 공기역학성능을 위한 전방 범퍼 좌우의 공기흡입구와 앞바퀴 뒤에 위치한 공기배출구는 페이크가 아닌 실제 역할을 담당한다. 물론 듀얼 머플러도 리얼 구성이다.

토요타 86에서 GR86으로 풀체인지를 거치며 헤드램프와 리어램프 등 외관 디자인은 물론, 실내 디자인과 소재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전자식 계기판, 안드로이드 오토,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하는 모니터, 좌우 독립식 오토 에어컨, 후방 카메라가 엔트리 모델에도 기본이다.

프레임리스 도어를 열면 윈도우가 살짝 내려가는 숏드랍 동작을 취하는데, 도어를 여는 감각이나 창이 내려가는 동작이 깔끔하다. 2열 공간이 마련되긴 했지만 성인이 타기에는 좁다. 다만 2열 폴딩이 가능해 트렁크와 시트 폴딩을 함께 사용하면 부피가 큰 물건도 적재된다.

GR86의 파워트레인은 2.4리터 4기통 수평대향 엔진과 6단 수동변속기 조합으로 최고출력 231마력(@7000rpm), 최대토크 25.5kgm(@3700rpm)를 발휘한다. 공차중량 1285kg, 복합연비는 9.5km/ℓ(도심 8.2, 고속 11.9)다. 리터당 100마력 가까이 발휘하는 고성능 유닛이다.

토요타가 자랑하는 D-4S 시스템의 박서엔진에는 토요타와 스바루 레터링이 함께 적혀있다. 보닛 중앙에 위치한 엔진은 배터리와 함께 윈드실드 쪽으로 치우쳐 무게배분을 고려했다. 토요타 다른 모델 라인업의 엔진과 달리 공회전이나 가속시 엔진 사운드가 상당히 크다.

GR86은 풀체인지를 통해 무게 증가는 35~45kg에 그쳤지만 엔진 파워는 기존 203마력, 20.9kgm 대비 28마력, 4.6kgm 증가했다. 공차중량 증가를 억제해 늘어난 파워는 가속력에 그대로 더해졌다. 케이블 방식처럼 리스폰스에 민감한 가속페달은 이런 감각을 더한다.

GR86이 먼저 출시된 해외에서는 GR86의 100km/h 정지가속을 6초 초반으로 표기하는 곳이 많다. 수동변속기에 아주 능숙하지 않다면 빠른 가속이 어렵겠지만, 일단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가속시 답답한 감각은 거의 없다. 리니어하게 가속되는 자연흡기 감각이 좋다.

펀카를 소유하려는 운전자에게 GR86과 비교될 수 있는 국산차로는 아반떼 N이 떠오른다. 비교적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펀카라는 공동 분모가 있지만, 둘의 성향은 꽤나 다르다. 아반떼 N이 운전을 잘하게 느껴지게 하는 친구라면, GR86은 솔직한 독설가 친구에 가깝다.

GR86의 움직임은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는 양과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타각, 코너링에서 재가속하는 타이밍, 변속을 위해 클러치 페달을 밟고 있는 텀까지 다양한 변수의 조합으로 수백가지의 다른 움직임을 보여준다. 운전자의 컨디션에 따라서도 다양한 결과가 예상된다.

직선로에서 풀가속을 하면 기존 86과는 단번에 비교될 정도로 빠른 가속을 이어간다. 시각적으로 작아 보이는 브레이크 캘리퍼는 제동시 충분한 제동력을 끌어내는데, 밟는 양에 따라 리니어하게 반응한다. 가속시 흡기음을 증폭시키는데, 배기음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코너에서의 회두성은 정말 정말 경쾌하다. 낮고 가벼운 차체가 바닥에 붙은 채로 타각에 따라 차의 머리가 코너를 파고든다. 로터스를 제외하면 경량 스포츠라고 불릴 수 있는 국내에선 유일한 모델로 생각된다. 215mm에 불과한 PS4 타이어는 그립이 좋지만 솔직하다.

305mm에 가까운 리어 타이어를 사용하는 고성능 스포츠카의 막강한 그립이 아니기 때문에, 차의 움직임과 하중 이동이 그대로 전달된다. 적절한 진입 속도로 코너에 진입하면 기막히게 탈출하지만, 과진입이나 불필요한 조향이 가미되면 언더나 오버가 바로 나타난다.

서킷 주행 내내 이렇게 즐거웠던 경험은 정말 오랜만이다. 트랙 모드에서는 최악의 순간에만 ESC가 개입해 충분히 즐기도록 지원한다. 300-600마력의 고출력 차량의 움찔거리는 리어 움직임이나, 모든 것을 다해주는 사륜구동 스포츠카의 감각과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주행성능을 높여주는 GR86 전용 액세서리가 적용된 차량은 좀 더 안정적이고 빠른 거동을 보이는데, 베이스 모델에 충분히 익숙해지고 업그레이드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시장의 모든 관심이 전기차로 향하는 상황에서 마니아들의 열정에 불을 지필 진짜가 등장했다. 

이한승 기자 〈탑라이더 hslee@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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