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스포츠에는 이런 격언이 있다.
빠른 차를 만들기는 쉽지만, 튼튼한 차를 만들기는 어렵다.
 
어떤 차가 가장 빠른지 겨루는 레이스에 이런 격언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실제로 빠른 차를 만드는 것보다 튼튼한 차를 만드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튼튼하다’는 것은 얼마나 안전한가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모터스포츠에서 충돌 테스트와 각종 규정을 통해 안전 문제에서는 각 팀 별로 특별한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튼튼한 차’라는 것은 ‘신뢰도가 높은 차’를 가리킨다. F1을 기준으로 이야기한다면 가능한 빠르게 두 시간 가까이 달리면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차를 말한다. 그리고 이 격언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F1 2014 시즌의 판도에 대해 한 가지 재미있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
 
▲ 첫 프리시즌 테스트부터 많은 문제가 드러난 레드불 RB10
 
지난 1월부터 F1 2014 시즌의 개막을 앞둔 프리시즌 테스트가 시작됐다. F1 64년 역사를
통틀어 가장 큰 폭의 규정 변화가 이뤄진다고 평가 받는 2014 시즌을 앞두고 각 팀들은 비장한 각오로 스페인 헤레즈를 찾았다. 그리고 하루 여덟 시간씩, 나흘 동안 진행된 테스트에서는 각 팀의 희비가 엇갈렸다. 같은 메르세데스 파워 유닛을 사용하는 맥라렌과 메르세데스가 웃었고, 르노 파워 유닛을 차지하는 디펜딩 챔피언 레드불은 사실상 제대로 테스트를 해보지도 못한 채 헤레즈를 떠났다.
 
헤레즈 테스트로부터 2주가 지나 이어진 바레인 사키르 테스트를 앞두고 르노 파워 유닛을 사용하는 팀들은 더욱 비장한 각오로 업데이트를 준비하고 사막 위의 서킷으로 향했다.
 
결과적으로 르노 파워 유닛을 사용하는 팀들의 경우 상황이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문제는 여전했다. 메르세데스 파워 유닛을 사용하는 팀들은 가장 많은 마일리지를 기록하면서 다양한 테스트를 모두 수행할 수 있었고, 맥라렌과 메르세데스 두 팀만이 단기간 가장 빠른 랩타임을 노리는 숏런 테스트를 진행했다. 레드불은 여전히 중간 수준에도 크게 못 미치는 신뢰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 2010 코리아 그랑프리에서 엔진 블로우로 리타이어한 베텔과 레드불 RB6
 
아직 한 차례의 프리시즌 테스트가 더 남아있지만 르노 파워 유닛을 사용하는 팀들은 비
상이 걸렸다. 그리고 르노를 파트너로 지난 4년 동안 F1 챔피언 타이틀을 싹쓸이한 레드불이 더욱 바빠졌다. 분명 지난 세 시즌 동안 가장 빠른 차를 보유하고 있었고, 가장 빠른 레이스카를 만들 때 함께했던 드림 팀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 ‘신뢰도 높은 차량 제작’에 실패하면서 챔피언 타이틀 5연패 도전에는 일단 노란 불이 켜진 상황이다. 시즌이 개막되어도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노란 불은 곧 빨간 불로 바뀔지 모른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레드불은 챔피언 타이틀을 독식한 기간 동안, 특히 2010년과 2012년 신뢰도 문제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은 팀 중 하나였다. 레드불이 자랑하는 아드리안 뉴이를 위시한 기술 진용은 ‘극단적인 패키징’으로 공기역학적 효과를 극대화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쉽게 말하면 냉각 문제에 약간의 단점이 생기더라도 레이스 카 뒤쪽을 작고 가늘게 만들어 다운포스를 높였다는 얘기다. 덕분에 레드불과 베텔이 처음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던 2010년 RB6는 이래저래 많은 문제를 겪었다. 지난 시즌까지도 발열 문제가 매우 큰 파츠인 KERS 때문에 이슈가 가장 많았던 팀 역시 레드불이었다.
 
다행히 2010년과 2012년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할 때까지 레드불이 겪은 신뢰도 문제는
임계점을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았다. 덕분에 문제가 컸던 시즌의 타이틀 경쟁은 마지막 그랑프리까지 이어졌다. 드라이버 챔피언 타이틀 경쟁의 경우 각각 4 포인트와 3 포인트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베텔은 빠르지만 신뢰도에 약간의 우려가 있는 레드불 레이스카로 타이틀을 차지했는데, 알론소의 페라리는 속도에서는 분명한 2~3위권에 불과한 상황에서도 높은 신뢰도를 통해 챔피언 타이틀 경쟁을 시즌 막바지까지 끌고 갈 수 있었다.
 
▲ 2005년 가장 빠른 레이스카였던 맥라렌 MP4-20
 
신뢰도 높은 레이스카와 빠른 레이스카의 경쟁은 F1에서 드문 일이 아니었다. 1960년대부터 F1을 주름잡은 ‘가장 빠른 레이스 카’를 만들던 로터스는 F1 데뷔 초기는 물론 1980년대에 이르러서도 항상 신뢰도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레이스카의 신뢰도가 어느 정도 뒷받침해줬을 때 로터스는 그 어떤 팀보다 강했다. 그런 사정을 뻔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튼튼한 차’, ‘완주 가능한 차’를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최근의 사례로는 2005년의 타이틀 경쟁이 비슷한 상황을 보여줬다. F1 2005 시즌 가장 빠른 레이스카는 단연 맥라렌 MP4-20이었다. 맥라렌 MP4-20이 2005 시즌 가장 많은 폴 포지션과 패스티스트 랩을 기록했고 우승 횟수도 가장 많았지만 양대 챔피언 타이틀은 르노와 알론소에게 돌아갔다. 가장 빨랐던 MP4-20의 문제는 바로 신뢰도였다. 라이코넨은 선두로 달리던 중 리타이어한 레이스만 세 차례였고, 그 때마다 알론소가 우승을 차지했다.
 
공교롭게도 신뢰도에 문제가 임계점을 살짝 넘었던 2005년 맥라렌의 기술 책임자 역시 현재 레드불의 아드리안 뉴이였다. 물론 한 사람이 신뢰도의 모든 부분을 책임질 수는 없으므로 아드리안 뉴이가 모든 신뢰도 문제의 근원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누구 한 명에게 책임을 묻고 한 두 가지를 고친다고 해도 신뢰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튼튼한 차를 만드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물론 ‘많이 느려지더라도’ 튼튼한 차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최하위에서 매번 완주만 하는 것을 목표로 할 팀은 없을 테니 그런 대안은 고려할 가치가 없다.
 
▲ 두 차례 프리시즌 테스트에서 가장 안정적이었던 메르세데스 F1 W05
 
그렇다면 2014 시즌 챔피언 타이틀 경쟁은 어떻게 진행될까? 프리시즌 테스트에서의 단
편적 인 모습만으로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다. 시즌 개막까지 아직 몇 주가 남아있고 그 사인 프리시즌 테스트도 한 차례 더 진행된다. 시즌 개막 후 몇 차례의 그랑프리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더라도 2012년처럼 시즌 중반부터 대 역전극이 펼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가능성이 더 높은 쪽은 신뢰도를 먼저 확보한 쪽’이라는 점이다.
 
2014 시즌 F1은 엔진뿐 아니라 파워 유닛 전체의 운용 패러다임이 바뀌었고, 연료 효율
관리와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더욱 복잡하고 민감해진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데이터를 누적시키고 이를 잘 분석해야 한다. 레드불은 아직 기본적인 수준의 데이터도 얻지 못했으니 출발이 너무 많이 늦은 셈이다. 가장 큰 문제는 레드불이 강점으로 가지고 있는 숏런 퍼포먼스 테스트를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짧은 시간 한계까지 레이스카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과정에서는 언제나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이 새로 터질 수 있다. 레드불은 그런 상황을 아예 경험해보지도 못했다.
 
반면 메르세데스와 맥라렌의 상황은 매우 긍정적이다. 윌리암스와 포스인디아까지 네 팀
이 사용하는 메르세데스 파워 유닛은 모든 팀에서 높은 신뢰도를 이미 확인했고 많은 마일리지를 쌓으며 가장 많은 데이터를 축적했다. 바레인에서 지난해보다 20 km/h나 빠른
최고 속도가 나올 수 있다는 것도 메르세데스의 숏런 테스트를 통해 확인했다. 물론 아직 메르세데스 파워 유닛 팀들이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는 의미도 아니고 프리시즌 테스트 결과는 어디까지나 참고일 뿐이지만 가장 많은 데이터를 쌓으면서 랩 타임도 가장 빨랐던 메르세데스가 ‘가능성’이라는 면에서 2014 시즌 전망이 밝은 것만은 분명하다.
 
레이스카나 일반 승용차를 막론하고 튼튼한 차를 만든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어려
운 일이다. 1 ~ 2 km를 빠르게 달린 뒤 부숴져 버리는 차를 좋아라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반 승용차에서라면 속도를 조금 포기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속도를 줄이는
것은 답이 될 수 없는’ 레이스 카에서는 어떻게든 속도를 유지하는 동시에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엔지니어들이 머리를 쥐어짜는 수 밖에 없다. 어쩌면 F1 2014 시즌은 레이스카의 신뢰도가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 바로 “빠른 차를 만들기는 쉽지만, 튼튼한 차를 만들기는 어렵다”는 격언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날 시즌이 될지 모른다.
 

윤재수 칼럼리스트 〈탑라이더 jesusy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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