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 바위에 부딪힌 파도가 해변까지 날아오는 스산한 날
우도의 비바리들이 물질을 한다.
성급한 서울 처녀가 제주를 찾은 감흥에 겨워
신발을 벗은 채 산호사 해변을 거닐 때,
그녀의 친구들이 너무 춥다며 어서 나오라고 호들갑을 떠는 그날
비바리들은 머리를 타넘는 파도 속에서 자맥질을 하며
소라나 해삼, 전복을 건져낸다.

그들이 잿빛 하늘을 향해 오리발을 치켜들고 물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해변에서는 감탄의 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들은 선수다.
물개다.
아니다.
그들은 사람이다.
두 발로 걸어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바람이 맵찬 날에는 구들장을 지고
세상만사 이야기로 풀기 좋아하는 아주머니, 혹은 할머니다.

그들이 이 추위에 물질을 하는 것은 살기 위해서다.
포기할 수 없는 삶 때문이다.
주석덩어리를 천형처럼 허리에 두르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숨을 참으며
파도를 넘고 다니는 것은
살기 위해서다.

비바리들은
해삼이나, 소라, 전복
혹은,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 문어를 잡아내는 갈퀴손으로
생떼 같은 자식들 공부시켰다.
그 자식들 모두 떠난 지금,
빈 소라껍질 같은 집에서
또 모진 목숨 잇기 위해
물질을 하는 것이다.

몸에 비늘이 돋고,
뱃속에 부레가 생길만큼
많은 시간을 물속에서 살아온 그들,
그들도 사람이다.
그들도 고단한 몸을 뭍에서 말리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니 소라 해삼 전복 한 접시 만원
우습게 보지마라.
투박하게 썰어내는 소라 한 접시에
누군가의 고단한 한 생애가 담겨 있다.
그대의 입속에서 오돌오돌 씹히는
상큼한 바다향이 물씬한 해삼 한 점은
이 바다가 삶의 전부였던 한 비바리가 온몸으로 쓴 인생사다.

김산환 칼럼리스트 〈탑라이더 mountainfi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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