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라는 존재가 세상으로부터 따뜻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산다. 우리의 인생이 삼류라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이류, 혹은 일류와 가깝다고 여긴다.

그 러 나,

목포에서 제주 가는 카페리는 우리 인생이 삼류라는 것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의자도 없이 평상처럼 펼쳐진 삼등실에 들어서면 누구랄 것도 없이 스타일이 구겨진다. 설령, 제주를 찾는 기분에 들떠 옷매무시에 힘을 주고, 머리를 매만졌다고 해도 적당한 파도와 너울로 울렁이는 삼등실에서 한두 시간쯤 구르고 나면, 보따리를 베고 누운 할머니나 구멍 난 양말을 신고 나온 줄도 모르고 큰 대자로 누워 자는 고단한 오십줄의 사내, 그들과 우리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삼등실을 뒹굴고 있는 그들은 어쩌면 삼류인생의 끝자락, 우리가 내일이란 시간을 살다가 마주하게 될 우리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당황하거나 서러워만 할 일은 아니다. 일등실의 침대칸에 누운 일류인생, 그들 역시 추자도를 스쳐갈 때쯤이면 첫 아이를 잉태한 여인의 입덧처럼 흔들리는 바다에 고전하고 있을 터. 다만, 벽에 막혀 보이지 않을 뿐 그들에게도 배는, 바다는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일 뿐이다.

그렇다면 목포에서 제주 가는 카페리에 오른 사람들, 그들이 일등실이거나 혹은 삼등실을 차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배 멀미에 힘겨운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점에서는 평등하다. 이것은 아주 작은 평등이라 부를 수 있다. 생각의 방향을 살짝 틀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처럼 사소한 위로를 줄 수 있다.

김산환 칼럼리스트 〈탑라이더 mountainfi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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