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사건 사고가 많은 세상은 나같이 단순한 인간들은 살기 힘겨울 정도로 어지러운 세상이다. 이럴 때면 세상에 큰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영웅적 존재가 그리워진다.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위치한 다산 유적지는 나라의 부패를 당당하게 꾸짖고 맞섰던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가 여유당, 이백 년 세월의 흐름 앞에 절로 고개 숙여지는 다산의 묘,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의 업적과 자취가 전시된 다산기념관과 다산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조명해 보는 다산문화관이 있다. 특히 양반가의 집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검소한 생가 여유당은 낮은 담장만 보더라도 다산 선생의 백성을 향한 열린 마음을 알 수가 있다. 또한 매년 9월말~10월 다산유적지에서 펼쳐지는 다산문화제는 다채로운 시민행사와 공연 등 모두 함께 어우러지는 축제의 한 마당으로 다산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문화적 시각으로 재조명, 우리 문화를 통해 다산 선생을 직접 체험하는 시민문화축제이다.

 

 

 

그렇다면 다산 정약용은 누구인가?

다산(茶山)은 1762년(임오년 영조38년) 음력 6월 16일,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당시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에서 아버지 나주정씨(羅州丁氏) 재원(載遠) 과 해남윤씨(海南尹氏)의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다산의 아명은 귀농(歸農), 자는 미용(美庸), 용보(頌甫)이고 호는 사암(俟菴), 열수 (冽水), 자하도인(紫霞道人), 문암일인 (門巖逸人) 등이며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이다.

그는 실학을 집대성한 조선조 후기의 학자이다.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답게 정치 · 경제 · 역리 · 지리 · 문학 · 철학 · 의학 · 교육학 · 군사학 · 자연과학 등 거의 모든 학문분야에 걸쳐 방대한 양의 저술을 넘겼다.

 

우리는 정약용 하면 목민심서와 거중기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다산 유적지를 둘러보니 이 두 가지는 그의 단순한 업적일 뿐이고, 부패한 나라에 당당히 맞섰던 용기야 말로 진정한 그의 업적이 아닌가 한다.

그는 가난하고 핍박받는 백성들의 고통을 진정으로 아파했으며, 관리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최선을 다했다. 더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현대인으로서 참으로 많은걸 뉘우치고 깨우치게 하는 그의 삶이다.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모든 걸 누리며 살기보다는 백성들의 안녕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천했던 다산 정약용이야말로 이세대가 필요로 하는 영웅이 아닌가 한다.

* 다산 유적지 정보

위치 :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산85-2
- 시설내용 : 다산 정약용선생의 묘(경기도 기념물 제7호), 다산 정약용선생의 생가, 문도사(사당), 기념관, 문화관, 문화의 거리
- 전시물품 : 총58종 304점 (동상, 영정, 목민심서등 저서, 거중기, 녹로, 디오드라마, 영상자료 및 조형물)
- 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1월~12월) (입장가능시간 : 오전 9시 ~ 오후 5시30분)
- 입장료 : 무료
남양주시청 문화관광과 (전화 031) 590-2064, 2067)
다산유적지관리사무소 (전화 031) 590-2481, 2837)
다산 유적지 http://www.nyj.go.kr/dasan/index.jsp

* 다산 유적지 교통안내

1. 인천공항 - 올림픽대로(목동 - 여의도 - 강남 경유) - 미사리 - 팔당대교- 팔당댐 -다산유적지
2. 강변대로 이용 : 김포공항 - 행주대교 - 강변대로(마포 - 한남동 - 워커힐 경유) - 덕소 - 팔당댐 - 다산유적지
3. 시내도로 이용 : 서울시청 - 동대문 - 청량리 - 망우리 - 구리시 - 도농삼거리(검문소) - 덕소 - 팔당댐 - 다산유적지 

 

변성진 칼럼리스트 〈탑라이더 herbmed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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