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비자들의 취향은 변덕스럽다. 판매량으로 볼 때 7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는 미국차를 선호하더니, 2000년대 들어 일본차를 원하나 싶더니 어느새 유럽차를 선호하는 쪽으로 점차 시각이 바뀌어가고 있다. i40는 그런 한국 소비자들의 시각에 맞춰 출시된 차다. 한국에서 왜건이 처음 출시된 것은 아니지만, 이만큼 큰 기대를 안고 출시된 왜건은 일찌기 없었다.

사실 차가 갖춰야 할 덕목을 놓고 보면 왜건만한 것이 없다. 실내공간, 연비, 승차감, 스포티함 모두 SUV나 세단보다 우수하다. 실제로 독일, 미국, 일본 등 선진 자동차 시장에는 왜건이나 해치백 차량의 비중이 높다. 한국 자동차 시장도 포화되고 선진화 되면서 소비자들의 눈 높이가 높아지고 있다. BMW X1, X3나 폭스바겐 티구안, 골프 등 해치백이나 웨건, 크로스오버들의 인기가 높아지는게 그 예다.

◆ i40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독특한 뒷모양으로 인해 뒤부터 쳐다보게 된다. 작은 버튼을 누르니 해치(뒷문)가 전동으로 부드럽게 열리고 다시 버튼을 누르니 사뿐히 닫혔다. 동작하는 소리가 어지간한 유럽차에 비해도 매우 조용할 뿐 아니라 문이 닫히는 동안 손으로 가로막으면 그 상태로 바로 정지하는 안전 기능도 민감하게 잘 만들어져 있었다.

짐이 대단히 많이 실리는 차다. 트렁크가 이미 500리터에 달해 작은 냉장고도 넣을 수 있을 크기지만, 뒷좌석을 앞으로 젖히면 무려 1700리터의 공간이 나온다. 맘만 먹으면 대형 냉장고를 두개도 실을 수 있겠다. 골프백은 원없이 실을 수 있고, 수입산 대형 유모차도 접지 않고 그냥 실으면 된다. 요즘 세단 승용차는 뒷좌석을 앞으로 젖혀 넓은 공간을 내놓는다지만 어차피 입구가 좁아 큰 물건은 넣을 수가 없는데 비해 이 차는 넓직한 해치가 시원하다.
▲ 현대차 i40의 트렁크 공간. 이미 큰 가방을 2개를 집어넣은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건은 국내 소비자들이 그리 선호하는 차가 아니다. 짐차라는 뿌리깊은 인식이 모두 바뀌려면 아직도 몇년은 더 걸릴 듯 하다. 그러나 해외 생활이 익숙한 소비자들 위주로 판매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현대차는 이 차를 출시하면서 조금 팔고 많이 남는 가격구조를 선택했다. 고급 옵션을 많이 장착해 기본 모델만 해도 어지간한 차의 풀옵션에 가깝다. 아이를 키우고, 레저를 즐기거나 자영업을 하는 여유있는 소비자들을 겨냥한 듯 하다.


◆ 매력적인 디자인…완벽에 한발 다가섰다

제네바 모터쇼에서 본 i40는 아반떼를 연상케 했는데 한국형 i40는 크롬을 더하고 LED나 그릴을 조금씩 변화시켜 상당히 다른 느낌을 만들어냈다. 개인적 취향으로 보면 디자인은 쏘나타보다 안정되고 강력한 느낌이다. 현대차 디자인이지만 천장의 흐름이나 비율은 영락없는 유럽스타일이다. 쏘나타에 비해선 차체 길이가 약간 작지만 천장 형상이 달라 뒷좌석에 앉았을 때 공간은 더 여유롭게 느껴졌다. 실내 디자인은 현대차 그랜저를 떠올리게 한다.

각종 첨단 장비로 인해 고급감이 높다. HID램프는 물론 주간 주행시 불이 들어오는 LED램프가 인상적이고, 전자식 주차브레이크에, 주차자동조향 시스템도 장착돼 있다. 테일게이트 안쪽 광활한 트렁크에는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러기지 레일시스템이 마련돼 트렁크에 수납된 짐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일은 없겠다.

세부적인 디테일이 대단히 향상됐지만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아직도 독일차에 비해 불만스런 부분이 눈에 띈다. 이 차가 만약 쏘나타 가격이었다면 모든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할 만한 차지만, 가격대가 조금 높다는 생각이 드는건 현대차로서도 부담일 듯 하다. 특히 배기량을 기준으로 대형/중형/소형차를 나눠왔던 한국의 전통적인 사고방식도 장애로 작용할 것이다. 1.7리터인데 쏘나타보다 비싸다는 점을 납득 시키려면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 주행 감각도 매력적

고속으로 치고 올라가는 능력은 물론, 탄탄한 주행감각에 꽤 안정감이 느껴진다. 유럽출시모델에 비해서 좀 더 부드럽게 세팅돼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차는 유럽출시모델과 똑같은 서스펜션과 타이어를 장착한 '유로팩'모델도 내놓기로 했다.
▲ 탑라이더 김한용 기자가 i40를 운전하고 있다/사진 현대차 제공

이 차에는 2.0리터 GDi 엔진이 장착된다. 최근 현대차가 내놓는 2.0리터 GDi는 정말 물건이다. 178마력의 출력은 사실상 일상 주행에선 넘치는 수준이다. 연비도 13.1km/l로 동급최고 연비를 자랑한다. 수치만 놓고 보면 세계적으로 경쟁 엔진을 찾기 힘들다. 사운드도 예전 세타엔진과 달리 훨씬 더 안정되고 듣기 좋았다. 튜닝에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더 놀라운 것은 1.7리터 디젤엔진이다. 140마력을 내는 이 엔진은 연비가 무려 18.0km/l로 동급은 물론 소형차에 비해서도 앞선다. 토크도 우수해 낮은 RPM에서 치고나가는 느낌도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시승차량 중에는 1.7리터 디젤엔진이 제공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 현대차는 i40의 사전 계약을 진행하면서 놀랐다. 양승석 사장은 당초 판매량의 20% 정도를 디젤엔진이 차지할 것으로 보고 생산물량을 정했는데, 너무 많은 소비자들이 디젤을 선택함에 따라 일단 35%로 올려잡았고, 이 비중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국산 세단/웨건 승용차 중 디젤 비중이 가장 높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시승행사에서는 디젤엔진 모델을 타볼 수 없었다. 조만간 디젤 모델 시승 기회를 마련한다고 하니 기대해 볼 일이다.

김한용 기자 〈탑라이더 whynot@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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