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3일 인천대교에서는 큰 사고가 일어났다. 마티즈CVT차량이 갑작스런 고장으로 인해 2차선에 13분간 방치된 것이 원인이었다. 앞서 달리던 화물트럭은 황급히 피했지만, 트럭을 바짝 뒤따르던 버스는 이를 뒤늦게 발견했다. 다급했던 버스운전사는 급하게 핸들을 돌려 방향을 바꾸다 중심을 잃고 마티즈의 후미를 추돌한 후 다리 아래로 추락, 12명이 사망한 대형 사고였다.

당시 여론이 크게 들끓어 "마티즈 운전자가 왜 안전삼각대를 세우지 않았느냐"는 성토와 함께 12명 사망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1년이 지난 오늘, 각종 언론들은 손해보험협회의 자료를 내놓고 10명중 4명이 사고시 안전삼각대를 설치하지 않는다며 안전불감증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현행 법률대로 안전삼각대를 설치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심각하게 논의되지 않는듯 하다.

♦ 안전삼각대, 정말 세울 수 있었을까?

며칠전 지인이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겪었다. 영동 고속도로 터널 주행 중 조수석 쪽 타이어가 터졌는데, 터널 안에서 차를 멈추면 사고가 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터진 타이어로 간신히 터널을 빠져나와 갓길에 세웠다. 교통법규에 나온대로 안전삼각대를 꺼내들고 후방 100m 위치에 세우기 위해 갓길을 걸어가는데 세상에 이렇게 무서운 경험은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포에 휩싸였다. 대형 트럭과 버스들이 시속 100km를 훨씬 넘는 속도로 바로 곁을 스치듯 지나갔기 때문이다. 차가 지날때 마다 몸이 도로쪽으로 빨려드는 느낌이 들었고, 앗차 하는 순간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중엔 몸이 덜덜덜 떨려서 더 이상 걸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차로 돌아왔다. 그는 핸들을 꽉 부여잡고, 타이어가 터진채로 고속도로를 벗어났다.
▲ 안전 삼각대를 도로에 놓고 보면 생각보다 작아보인다. 사고방지 효과를 맹신하면 안된다.

사실 고속도로에서 안전삼각대를 세우는건 쉬운 일이 아니다. 주간에는 그나마 100미터지만, 야간에는 가로등도 없는 고속도로를 200미터나 걸어가서 세워야 한다. 어지간한 강심장이더라도 과연 삼각대를 세울 수 있을까. 설령 세울 수 있더라도 굳은 각오로 삼각대를 세우는게 옳을까?


2차 피해 막으려다 더 큰 사고도

어쩌면 2차 피해를 막겠다며 도로 위를 걷는 것 자체가 더 큰 위험이다.

2008년 8월 9일 새벽3시, 20대 젊은 여성 2명이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앞서가던 레간자 승용차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사고현장을 발견했다. 남을 돕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이들은 자신의 차를 갓길에 세우고 1차선 사고현장으로 달려갔다. 둘은 후행차들이 이 차를 들이받아 제2의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핸드폰을 꺼내 그 불빛으로 전방에 수신호를 했다. 하지만 달려오던 카렌스는 이 핸드폰 불빛을 보지 못한채 2명을 모두 치었고 둘 모두 사망에 이르렀다.

2005년 겨울에는 30대 젊은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눈발이 내리던 밤길을 달리던 부부는 앞차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사고를 발견했다. 부부는 이를 보고 차에서 내렸고, 부인은 3살배기 아기를 안고 수신호를 하는 한편 남편은 앞차 운전자를 구난하기 위해 차로 다가서다가 뒤따르던 승용차에 받쳐 부부가 모두 사망한 사고였다.

사람들이 차안에 그대로 있었고, 차끼리 부딪친 사고였다면 그리 큰 사고가 아니었을텐데 사람이 수신호를 하겠다며 도로 위로 나오는 바람에 사망사고에 이르게 된 셈이다.
▲ 역삼 사거리 사고현장. 수신호를 하던 인부 1명은 사고차 차 사이에 끼어 사망하고 한명은 머리를 다쳤다. 수신호를 하지 않았다면 가벼운 자동차 사고로 그쳤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 일본 등 자동차 선진국은 삼각대를 차안에 비치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미국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주변에 안전한 장소가 있다면, 그곳으로 피신한 상태에서, 불가능하면 차 안에서 경찰을 부르는게 원칙이다. 삼각대를 놓는 행위가 너무 위험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기 때문에 삼각대는 경찰이나 관련 전문가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설치하도록 돼 있다. 경찰도 삼각대보다는 불꽃신호탄을 훨씬 자주 이용한다. 불꽃신호탄은 삼각대처럼 설치하는게 아니라 불이 붙은채 멀리 던지면 되기 때문에 노력에 따라 20~30미터 뒤에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 규정에도 우선순위가 필요

안전규정에도 효용성에 따른 우선순위를 매겨야 한다. 이를테면 차끼리 부딪쳤을때 사고크기에 비해 차가 사람을 치었을때 사고크기가 얼마나 차이나는지를 비교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삼각대를 놓는 것이 놓지 않은 것에 비해 사고를 막는 효과가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흔히 사용되는 안전 삼각대는 가로 40cm, 세로 15cm수준이다. 과연 고속도로 한복판에 자동차 범퍼 높이에도 못 미치는 삼각대를 세워놓는 것이 자동차의 트렁크를 열고 비상깜박이를 켜 놓은 것에 비해 훨씬 잘 보일까? 또, 월등히 시인성이 우수해 사고를 막는 효과가 크게 향상될까. 센 바람이 불거나 차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경우, 살짝 스치기만 해도 삼각대의 역할은 바로 끝나는데, 수십분동안 제 자리에서 잘 버틸 수는 있을까.
▲ 최고의 자동차 경주 선수들도 매일 주행하는 서킷에서 사고를 낸다. 도로에 나설때는 상대 운전자가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반대 급부를 살펴야 한다. 효과가 알쏭달쏭한 안전삼각대를 놓기 위해 사고가 우려되는 고속도로 한복판에 나섰다 인명 사고가 발생한다면 피해규모가 오히려 커지지는 않을까? 차끼리 부딪쳐 끝날일을 괜히 인명사고로 키우는 결과가 되지는 않을까.

다시 말해 안전삼각대의 효용과 비교해 위험에 노출되는 해악의 양을 따져서 해악이 큰 경우는 절대로 나서면 안된다는 것이다. 안전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2차 추돌을 막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다. 우선 자신의 목숨부터 구하는게 그 어떤 규칙보다 최우선이다.

인천대교 사고, 어떻게 막았어야 했을까?

인천대교 사고가 1년이 지났지만, 언론과 관련 단체들은 여전히  버스가 하이패스 전용차선을 너무 빠르게 통과한 점이나, 마티즈 운전자가 삼각대를 놓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당시 상황을 조금 재구성해 보자면, 차가 멈춰선 직후 차안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마티즈 운전자는 바로 안전지대로 피신했다. 빈 마티즈를 발견한 버스 운전자가 만일 조금 더 노련했다면 핸들을 급히 꺾어 마티즈를 피할 것이 아니라 그대로 들이 받았어야 피해가 적었을 것이다. 관광 버스는 공차 중량과 40명 승객의 무게를 더해 약 17톤에 달하지만, 사고난 마티즈는 775kg에 불과한 경차기 때문이다. 버스 입장에서 보면 마티즈와 추돌은 그저 빈 종이박스를 치고 가는 것과 별반 차이 없는 셈이다.

이 사고 원인은 굳이 이 마티즈를 피하겠다고 핸들을 나꿔채듯 돌린 버스운전사의 조작 미숙에서 먼저 찾아야한다. ㄱ고속 등 국내 주요 관광버스 회사에서는 버스 운전사를 교육하면서 고속도로 한복판에 멈춰있는 차가 있고 피하는게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이를 그대로 들이 받는게 바람직하다고 교육하고 있다.  전복 사고 등으로 버스 승객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보다 안에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적은 고장차를 들이받는게 옳다는 판단에서다.

반면 적지 않은 관광버스 회사들은 영세하고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운전사들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하거나, 심지어 아르바이트 운전자에게 운행을 맡기는 경우도 많다.  그 작은 안전삼각대를 놨는지 안놨는지를 문제삼기 보다는 이같이 관광버스의 여건을 개선해야 같은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또, 대다수 버스와 트럭에는 ABS, VDC등 전자제어 안전장비가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급회전시 차가 쉽게 전복하거나 코스를 이탈하게 된다. 국내 자동차 메이커들이 이를 장착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이 의무화를 추진했어야 한다.

안전삼각대는 필수, 수신호는 절대 금물

안전삼각대에 대한 비판이 너무 길었다. 하지만 안전삼각대는 필수적인 안전장비다. 앞서말한 이유로 고속도로에서 설치는 어렵고 효과도 크지 않겠지만 국도에서라면 굉장히 유용하다. 고장차가 국도나 산길에 있는 경우  코너를 돌기 전에는 사고 사실을 볼 수 없다. 이런 경우 코너전에 안전삼각대를 놓으면 서로의 안전에 큰 도움이 된다.

삼각대가 없는 경우 무턱대고 수신호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수신호는 모든 안전조치 중 가장 위험천만한 방법이다. 사고시 삼각대를 세우도록 한 것은 비록 구태의연하긴 해도 도로교통법에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수신호는 세계 어디 법규에도 없다. 일부 자동차보험사가 나눠주던 '안전 수칙' 책자에 들어있던 잘못된 자료가 그대로 퍼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일부 보험사는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사고가 발생되었을 때에는 후속 대형사고의 발생가능성이 높으므로 신속히 갓길쪽으로 차량을 이동시키고 미등과 차폭등 비상점멸표시 등을 켜두고 후방에 삼각대를 설치하거나 사람을 배치하여 수신호로 후행차량의 통행 안내를 하는 방법으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도록 위험방지 조치를 해야한다" 고 적고 있다. 하지만 다른건 몰라도 '사람을 배치해 수신호 한다'는 것은 사고시 절대 해서는 안될 행동이다.

굳이 순서를 매겨보자면, 1) 후방에 불꽃신호탄을 던지고, 2) 삼각대를 펴고, 3) 비상등을 점멸한채, 4) 차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대피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행동이다.

만약 차에 신호를 할 장비가 하나도 없다면 비상등을 켜고, 차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본인의 몸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만일 후행차가 차를 보지 못하고 추돌하는 경우라도, 안전벨트만 제대로 맸다면 중상을 입지 않지만, 도로에 나선 사람을 치어버린다면 최소한 중상이나 사망까지 이르게 된다. 이는 비단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 운전자의 인생에도 차량 추돌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오점이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한용 기자 〈탑라이더 whynot@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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