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 랭글러 4xe를 시승했다. 랭글러 4xe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모델로 충전을 통해 전기만으로 32km 주행이 가능하다. 친환경차 랭글러 4xe는 온로드에서는 375마력의 퍼포먼스를, 오프로드에서는 전기만으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독특한 캐릭터를 지녔다.

최근 자동차 시장은 전동화 바람이 거세다. 다양한 배터리 전기차가 출시되는 것은 물론 기존 내연기관차는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마일드 하이브리드 등 크고 작은 전기모터를 추가해 이산화탄소(CO2) 배출량과 연료 소비는 줄이는 친환경화가 진행되고 있다.

세단 중심이었던 하이브리드차 시장은 최근 SUV나 RV 쪽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대표 오프로더로 손꼽히는 랭글러의 전동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험로 주파를 위한 프레임보디와 사륜구동 로우(Low) 기어를 갖춘 모델로 이제는 전기만으로 오프로드를 즐길 수 있다.

지프 랭글러 4xe는 9월 국내에 선보였다. 지프 80주년을 기념해 80대 한정으로 배정된 랭글러 4xe의 사전 물량은 이미 완판됐다. 반도체 이슈와 미국에서의 인기로 랭글러 4xe의 국내 물량 확보는 내년에나 가능할 예정인데, 결론부터 말하면 기다릴 만큼 매력적이다.

랭글러 4xe는 기존 랭글러 오버랜드를 베이스로 측면의 지프 로고 배지, 트레일 레이티드 배지, 테일게이트의 4xe 배지에 친환경성을 상징하는 파란색을 가미했다. 운전석 A필러 아래의 'e'로고가 표시된 곳은 전기 충전구로 국내 완속 표준인 AC 단상(5핀)을 지원한다.

파워트레인은 2.0리터 가솔린 터보와 8단 자동변속기, 셀렉-트랙 풀타임 4WD, 여기에 2개의 전기모터와 17.3kWh 배터리팩이 더해졌다. 엔진은 272마력과 40.8kgm, 모터는 각각 45마력과 136마력을 더해 합산 총 출력 375마력, 최대토크 64.9kgm의 파워를 지녔다.

국내 복합연비는 합산 12.7km/ℓ(도심 12.7, 고속 12.7), 휘발유 9.2km/ℓ(도심 9.0, 고속 9.4), 전기 2.4km/kWh(도심 2.5, 고속 2.3)이다. 공차중량이 2345kg에 달하는 것과 각진 외관 디자인을 고려하면 대단히 높은 수치다. 380마력의 GV80 3.5T AWD 연비가 7.8~8.0km/ℓ다.

랭글러 4xe는 대시보드 좌측 하단의 버튼을 통해 3가지 주행모드를 제공한다. 하이브리드 모드는 엔진과 전기모터를 조합하돼 전기를 우선 소모한다. 일렉트릭 모드는 전기모터만으로 주행하며 최대 130km/h까지 주행 가능하다. e-세이브 모드는 배터리 전기를 유지한다.

랭글러 4xe의 실내는 계기판 우측의 클러스터가 속도계 대신 출력과 충전을 나타내는 게이지로 바뀌고, 항상 계기판 내에 배터리 잔량을 표시하는 것을 제외하면 랭글러 오버랜드와 동일하다. 공조장치 아래 아이들링 스탑 버튼은 회생제동을 강화하는 버튼으로 변경됐다.

시동 버튼을 누르면 엔진은 깨어나지 않고 나즈막한 전자음이 들리는데, 전기차의 그것과 유사하다. 차량을 움직여도 풀가속이 아니라면 전기만으로 주행하는데, 강원도 태백의 고저차가 큰 언덕을 오르는 상황에서도 60km/h 전후의 속도를 전기만으로 주파해 나간다.

국산차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세단, 하이브리드 SUV의 경우 작은 배터리와 작은 전기모터로 인해 발진 직후 엔진이 가동되는 것과는 다른 설정이다. 출퇴근시의 도심 주행 기준으로 43km 전후를 전기만으로 주행할 수 있어 근거리 주행에서는 그냥 전기차다.

아파트내에 설치되는 스탠드형 완속 충전기가 6~7kW 전력량을 갖는데, 랭글러 4xe는 7kW 충전기로 2.5시간만에 완충이 가능하다. 또한 220V 휴대용 완속 충전 케이블이 기본으로 제공되는데, 이동형 충전기 이용시 7시간이 소요된다. PHEV 모델 중에는 최신 사양이다.

랭글러 4xe는 일상적인 주행에서 하이브리드 모델처럼 전기모터와 엔진이 번갈아 개입하는데, 전기모터의 가동 시간이 월등히 길다. 특히 전기모터만으로 가속하는 상황에서도 무거운 차체를 꽤나 경쾌하게 끌어나간다. 내연기관의 진동과 소음이 없어 오히려 쾌적하다.

코너링이나 고속주행에서 랭글러 4xe와 그냥 랭글러의 차체 거동에 대한 차이는 확인하기 어렵다. 공차중량은 335kg 늘었는데, 늘어난 출력과 토크, 그리고 태생적으로 극한의 코너링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배터리팩은 리어 액슬 앞쪽에 위치해 적재 공간도 동일하다.

랭글러 시승의 백미는 역시 오프로드 주행이다. 태백시와 강원도관광재단 주관으로 지프 전용 함백산 코스를 개발해 랭글러에 허락했다.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코스로 태백의 아름다운 자연을 경험할 수 있다. 여기에 풀로 뒤덮인 스키 슬로프를 오르고 내렸다.

오프로드 주행에서는 아무래도 배터리팩에 가해지는 충격이 걱정되는데, 랭글러 4xe는 프레임 상단, 2열 시트 아래에 배터리팩을 위치시켜 거친 노면이나 충돌 사고에서의 충격이 사실상 어렵다. 심지어 배터리팩은 리어 서스펜션 마운트보다 높게 위치해 보호된다.

험로 주행에서 랭글러 4xe와 그냥 랭글러는 동일한 코스를 동일한 조건에서 주행했다. 배터리가 완충된 상태에서 접어든 험로에서는 엔진의 소음과 진동이 없는 조용한 상태에서 자연을 그대로 경험할 수 있다. 험로를 이렇게 주파할 수 있는 차는 랭글러 4xe가 유일하다.

오히려 험로에서는 랭글러 4xe가 기존 랭글러 대비 강점을 보이는 점도 있는데, 둔턱을 타고 오르는, 순간적으로 큰 힘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전기모터의 즉각적이면서 강력한 힘이 오히려 편하다. 오르막에서는 전기를 사용하고, 내리막에서는 전기를 충전한다.

대시보드의 배터리 모양 버튼을 누르면 회생제동이 극대화돼 전기 충전량을 늘려준다. 해당 기능을 끄면 일반적인 타력주행으로 회생제동은 비교적 약하게 개입돼 제동시에나 충전량이 늘어난다. 특이할 만한 부분은 힐 디센트 기능을 전기만으로 완벽히 구현하는 것이다.

험로 주행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인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는 경우 힐 디센트 기능은 큰 역할을 담당한다. 미끄럽고 가파른 노면을 내려갈 경우, 브레이크를 잡아도 그대로 미끄러지는 상황이 많은데, 랭글러 4xe는 전기모드만으로 1~4km/h 속도의 안전한 하산이 가능했다.

25도 전후의 가파른 경사길 바닥은 젖은 상태의 짧은 풀이 빼곡히 깔린 최악의 그립이었다. 돌과 흙이 드러난 스키 슬로프를 거꾸로 오르는 코스에서는 풀가속이 아닌 이상 전기모터 만으로 주파가 가능하고, 내리막에서는 당연하게도 엔진이 정지된 상태로 충전까지 된다.

험로를 주파해 나가는 상황에서 내연기관의 소음과 진동이 전혀 발생되지 않아, 물 흐르는 소리나 새가 우는 소리, 그리고 바람까지 자연과 한결 가까워진 감각이다. 자연을 오롯이 경험하고 싶은 오프로더들에게는 앞으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바람이 불 것 같은 예감이다.

이한승 기자 〈탑라이더 hslee@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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