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지어 감옥에 간 죄인 가운데 감옥에서 다시 범죄를 저지르면 갇히는 방이 있다. 징벌방이다. 그 중에서도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독방을 ‘먹방’이라 부른다. 이곳에 갇힌 죄수에게 허락된 공간은 0.5평. 류관순 열사가 갇혔던 서대문 형무소의 독방은 높이 1.4m, 가로세로 각 1m다. 누울 수도, 설수도 없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가장 비참한 공간이다.

▲ 휘슬러캠핑장

그러나 나에게 0.5평은 자유를 의미한다. 나를 자연으로 안내하는 탈출구다. 누우면 머리와 발끝이 양 끝에 닿고, 앉을 수는 있지만 설 수는 없는 나의 작은 텐트. 여기는 나만의 천국이다. 내가 자연과 소통하고 싶을 때면 기꺼이 자신의 품을 내어준다.

▲ 휘슬러캠핑장

이 작은 방에서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는다. 아침마다 찾아오는 산새들과 개울을 돌아가는 물소리, 한 생애를 살다가 툭-하고 짧게 하직인사를 하는 낙엽, 또는 내 이웃의 소곤소곤 속삭이는 소리까지 들려준다. 신록을 가르며 내리는, 곱게 빗질한 햇살 한 올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끌어들인다. 그 안에서 뒹굴며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다. 그 안에서 시작도 끝도 없는 상상의 세계와 독대하고, 생각의 자리를 우주의 저 먼 곳까지 넓혀본다.

▲ 휘슬러캠핑장

내 작은 텐트에는 물고기가 한 마리 산다. 이 물고기는 텐트 천정에 붙어 있다. 2개의 폴이 교차하면서 텐트에 만드는 포물선. 나는 이것을 물고기라 부른다. 이 물고기는 푸른 하늘과 숲을 바다 삼아 헤엄친다. 녀석은 매일 밤 내 머리맡을 찾아온다. 녀석이 하늘로 비상을 시작하면 나도 꿈꾸기 시작한다. 녀석의 꼬리를 잡고 상상의 나래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다. 그저 나란 존재만이 있을 뿐이다. 내가 원하는 세상,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 내가 꿈꾸는 일들을 모두 불러와 은밀한 대화를 나눈다. 이 즐거움 때문에 가끔은 '독방행'을 꿈꾼다.

김산환 칼럼리스트 〈탑라이더 mountainfi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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