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데 캠핑을 간다고?
비가 온다는 예보가 내린 날 캠핑을 간다고 하자 모두가 어이없어 한다. 나는 그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된다. 빗물이 스며들어 질척한 바닥에 떠 있는 텐트와 눅눅한 침낭과 옷가지, 무엇보다 비를 맞으며 텐트를 치고 걷을 때의 곤혹감은 누구라도 맞닥트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캠핑의 운치는 비 오는 날에 살아난다. 텐트에서 듣는 빗소리, 그 생각만 하면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텐트 속에 있는 나를 흠뻑 적셨던 푸른 비. 감히 말하지만 텐트에서 듣는 빗방울 소리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다. 잠을 부르고, 휴식을 부르는 소리다. 상처받은 영혼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위로의 소리다.  

텐트 안에서 가만히 눈감고 들어보라. 텐트 지붕에 타닥타닥 떨어지는 빗방울소리가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그 소리에 점점 취하면 나와 하늘을 경계 짓고 있던 텐트가 불현듯 사라져버린다. 빗줄기는 아무런 걸림도 없이 내 얼굴에, 몸에 사정없이 떨어진다. 푸른 비가 몸을, 마음을 홀딱 적셔버린다. 빗방울이 튈 때마다 내 몸의 감각이 모두 살아나 움찔움찔한다.

빗소리는 일정치 않다. 내리는 빗줄기에 따라 마치 한 편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처럼 달라진다. 조근조근 내리는 가랑비는 클래식 기타를 뜯는 것처럼 부드러운 리듬감이 있다. 그러나 빗줄기가 굵어지면 쇼팽의 ‘겨울바람’처럼 텐트를 건반 삼아 사정없이 두들겨 댄다. 여기에 나뭇가지에서 뭉쳐진 굵은 빗방울이 떨어질 때는 심벌즈를 맞부딪치는 것처럼 둔중하면서 강렬한 울림이 있다.  

비의 속삭임을 듣기 위해서는 작은 성의를 보여야 한다. 우선 비 오기 전에 떠난다. 비가 내리기 전에 모든 준비를 단단히 해놓는다. 텐트는 빗물이 스미지 않는 자리를 고른다. 텐트를 칠 때는 천이 찢어질 만큼 팽팽하게 당겨 놓는다. 텐트 안에는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을 펴놓는다. 라디오는 듣고 싶은 채널에 맞춰둔다. 머그잔에 맛있는 커피까지 담아 두었다면 대충 준비는 끝난 셈이다. 이제 빗소리에 젖을 일만 남았다. 한 가지 더, 가능하면 혼자 가라. 푸른 비는 혼자라야 흠뻑 젖을 수 있다.  

 

김산환 칼럼리스트 〈탑라이더 mountainfi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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