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카마라(사무엘 윤)’를 꿈에서도 만나볼 것 같다. 커다란 영상화면에 나와서 절대 미워할 수 없게 눈을 '깜빡'거리면서 네모리노와 대화하는 모습, 가짜 약 '비비거라'를 마을 사람들에게 다 판 다음 계산은 자신의 자켓을 활짝 벌려 카드로 찍게 하는 모습에 이어 팔과 다리를 앙증맞게 흔들면서 무대로 뛰어나오는 바리톤 사무엘 윤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극중 벨코레가 혼잣말로 '저 바보랑 이러다 정들겠어'라고 했듯이 사무엘 윤과 이러다 정이 들게 생겼다.

그간 다른 버전의 [사랑의 묘약]을 여러 번 봤어도 이번만큼 '둘카마라' 캐릭터에 매료된 적은 없었다. 전작 오페라 '룰루'의 쇤박사 역의 카리마스 가득한 이미지에서 180도로 변신한 이번 작품에서 그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엿보았다. 기자와 동행한 일행 역시 "오페라 보러 와서 꾸벅 꾸벅 졸기 일쑤였는데, 이런 오페라도 다 있었어?"라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둘카마라 역 가수가 누구냐는 질문 역시 빼 놓치 않았다. 그래서 (극중)'제약계의 마법사'가 아니라 '오페라계의 마법사'이자 '인류의 웃음과 감동을 파는 전설의 베이스 바리톤'이라고 과장(?)광고를 했더니 저 가수가 나오는 작품 있으면 다시 한번 불러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만큼 사무엘 윤의 흡인력은 대단했다.

국립오페라단의 레퍼토리 공연 [사랑의 묘약]은 사랑이야기이다. 2009년 초연과 마찬가지로 이소영 예술감독은 기존의 연출 전형과는 다른 새로운 발상으로 접근했다. 원작의 이탈리아 시골 마을에서 광활한 우주로 그 무대를 확장했다. 인류가 가진 가장 신비로운 감정 ‘사랑’을 먼 행성에서 들려오는 노래처럼 풀어가는 식이다. 그 결과 초반 막이 오르기 전, 반짝이는 별과 우주의 모습을 막에 담아내 관객을 훌쩍 그 곳으로 날아오르게 한다. 미당 서정주의 시 [기도Ⅰ]에서 영감을 얻어 연출가가 직접 디자인한 무대는 치유와 회복의 상징인 ‘달 항아리’를 통해 그 해답을 제시한다.

시종 유쾌하게 진행되던 극에서 연출가의 감각이 돋보였던 장면은 제2막에서 네모리노가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부를 때였다. 하프와 바순의 서정적 선율에 취할 때 쯤 네모리노가 "아디나가 자신을 사랑하는 게 분명해. 저 눈물을 보면 알아"라고 노래하는 장면이다.

관객들의 가슴을 '짜~악' 가라앉게 하는 테너 조정기ㆍ 나승서의 미성도 좋았지만, 그 순간 커다란 보름달(혹은 우주) 영상이 조금씩 객석을 향해 다가오도록 장치한 점, 아디나가 앉아있던 자리의 하얀 천이 벗겨지면서 항아리의 반이 채워진 형상이 그 실체를 드러내도록 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그동안 빈항아리였던 아디나의 가슴이 네모리노의 사랑으로 채워지고 우주에 있는 커다란 달이 그들의 고통을 들어주고 치유해줬던 것처럼 '사랑의 묘약'이 힘을 발하는 지점이었다.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은 오페라 부파(희극적 오페라)이다. 좋게 말해서 재미있는 오페라이고, 까칠하게 말하면 볼 때는 재미있지만 보고 나서 남는 게 없는 오페라이다. 그래서 그동안 오페라 부파는 그리 반기지 않았던 게 사실. 그런데 이번엔 연출이 심혈을 기울인 결과 가벼운 오페라 부파의 숨겨진 면이 확실히 살아있어 오페라 부파에도 맛을 들일 듯 하다. 물론, 도니체티가 중간 중간 삽입한 서정적인 멜로디의 힘을 간과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극중 눈과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재치있는 장면은 관객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번쩍이는 씽씽카를 타고 등장해 '삑삑'거리는 소리를 내며 차를 주차시키는 벨코레, 투명 우주선으로 날아온 뒤 바퀴달린 주사위에서 튀어나오는 약장수 둘카마라, 귀여운 곰 인형 뱃 속에서 꺼내는 가짜 웅담, 밧줄을 타고 내려오는 군인 등 관객들의 배꼽을 빠지게 하는 장면이 많다.

특히, 사이비 약장수를 예술의 전당에 초청한 게 아닌 가 싶을 정도로 '여러분 들어보세요' 라고 둘카마라가 약 선전을 하며 빠르게 노래하는 장면에 이어, 싸구려 포도주를 묘약이라고 속여 판 둘카마라와 이를 철떡같이 믿는 네모리노가 함께 부르는 2중창에 이르면 웃지 않고는 못 베긴다. 오페라 보러 와서 자고 갔다는 말은 옛말이 된 것이다.

출연 가수들의 실력도 물론이거니와 뛰어난 외모로 인해 극 몰입이 용이했다는 점 역시 이번 캐스팅의 쾌거였다. 테너 조정기의 부드러우면서도 무대를 울리는 힘 있는 목소리는 여심을 흔들었고, 아디나 역 소프라노 이현의 귀여움과 기교에 남자 관객들의 눈빛이 빛났다. 자네타 역의 소프라노 박혜상의 깜찍한 목소리 역시 작품 완성도에 힘을 보탰다. 벨코레 역 바리톤 김주택의 능청스런 연기 외에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정확한 음성은 박수를 치게 만들었다.

'사랑의 묘약'을 받아든 젊은 연인은 우주를 향해 달려간다. 아마도 저 먼 우주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다 '사랑의 묘약'이 필요한 또 다른 누군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보내고 있을 듯 하다. 그 손길을 받은 누군가는 '랄랄라'를 외치며 기대감에 부풀어 있겠지?

[사랑의 묘약]으로 오페라와 사랑에 빠지게 만든 국립오페라단은 추후 2011년 어린이 오페라 시리즈 2탄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를 각색하여 연출한 '지그프리드의 검-바그너는 어린이의 친구'(6/29~7/10)를 선보인다. 이번 작품은 오는 6월 23일부터 7월 24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지는 ‘2011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제2회)’의 일환이다.

정다훈 객원기자 〈탑라이더 otrcoolp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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