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아듀 2010 송년갈라’에서 미리 만나본 오페라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 중 단두대 위의 순교장면을 전막 오페라로 다시 만났다. 게다가 1막과 2막 중간 중간 들리는 '탁'하는 타악소리로 긴장의 끈을 일관되게 이어와 3막 마지막 장면에서 응축해서 터트려 주는 풀랑의 음악에 마력처럼 이끌려 흡인력이 대단했다.

원장수녀가 ‘우리는 기도하는 이’라고 말하는 장면, 콩스탕스가 ‘원장수녀의 죽음에 대해 함부로 말해 벌을 받을 것 같다’고 말하는 장면, 죽음에 임박한 원장수녀가 자신의 얼굴 가면을 뜯고자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아 한탄하는 장면에 이어 죽음의 공포와 싸우다 결국 쓰러져 죽는 장면 등에서 들리는 심장을 멎게 하는 짧은 타악소리는 관객의 가슴을 정확히 강타했다. 시각과 청각을 중요시 여기는 프랑스 오페라의 영혼이 숨 쉬는 무대였음은 두말할 필요 없다.

프랑스문화진흥국의 후원을 받고 국립오페라단이 국내 초연한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는 음악 외엔 어떠한 것도 허용하지 않는 연출가 스타니슬라브 노르디의 지시에 따라 미니멀한 무대를 선보였다. 의상과 조명 역시, 블루(귀족), 화이트(성직자), 레드(혁명가)를 사용한 상징적인 연출로 관객들을 집중시켰다. 원장수녀의 관은 실체 없이 조명으로만 처리했으며, 원장이 누워야 할 침대 역시 연극적 상상력으로 채워넣었다.

이번 작품은 연극적 상상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객들에게 호평을 이끌어냈다. 블랑슈의 오빠가 수녀원으로 찾아오는 응접실 장면은 무대 가운데 수녀들이 일렬로 늘어서게 한 다음 양쪽에서 대화를 하는 방식으로 연출했다. 즉, 프랑스 혁명 당시 귀족과 성직자들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과 의견 차이를 간결하게 암시하는 듯 했다. 레드 의상을 입은 혁명군과 화이트 의상의 수녀들의 대치 장면, 수녀복을 하나 하나 벗어 만든 십자가 모형등은 그 어떤 것으로도 종교를 탄압할 수 없음을 은연 중에 드러낸 장면으로 여겨진다. 수녀원과 드라포스 후작의 집을 제외한 공간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막을 내린 후 인물들이 양쪽에서 움직이게 만들어 효과적으로 장면전환을 꾀했다.

전 3막 오페라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 당시 공포정치 치하의 카르멜파 수도원을 배경으로 귀족의 딸로 신앙과 삶 사이에서 번민하는 주인공 블랑슈의 고뇌와 순교를 담고 있다. 1957년 밀라노 라 스칼라극장에서 초연 후, 오페라 계에 충격을 던져주며 모더니즘의 시초가 된 프란시스 풀랑의 걸작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 포르트의 소설 '단두대의 마지막 여자‘가 원작이다.

주인공들은 똑같은 옷을 입은 수녀들이지만 어느 누구하나 동일한 인물은 없다. 그 안에 다양한 인간군상이 펼쳐진다. ‘세상’과 ‘죽음’을 두려워하는 예민하고 병적인 상상력을 지닌 블랑쉬, 모든 순간이 즐거운 ‘삶’처럼 ‘죽음’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낙천주의자 콩스탕스, 모든 게 칼로 잰 듯 정확한 성격으로 열렬한 신자인 마리수녀가 중심 축을 이룬다. 여기에 줄곧 하늘에 계신 신을 찬양하다 죽음이 임박하자 ‘신도 그 자신만을 생각하나 보군요’라는 말을 내 뱉으며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을 내보이는 원장수녀, ‘기도는 의무이며, 순교는 상이다’라고 여기는 새 원장수녀인 리두안 수녀가 자리한다.

출연 가수들 역시 자신의 캐릭터에 고심한 흔적이 돋보였다. 출연진 모두 음색 안에 인물이 가진 특성을 담아내며, 단순히 혁명시대라는 이야기에 갇히지 않고 보편적인 이야기로 이끌어냈다. 블랑쉬 역 소프라노 아닉 마시스와 박현주 모두 불안한 내면과 갈등을 음색 하나 하나에 녹여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개인적으로는 체구가 더 작은 박현주의 불안이 보다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가장 눈에 들어온 가수는 콩스탕스 역 소프라노 강혜정과 마리 수녀 역의 메조소프라노 정수연이었다. 이전 작품들에서도 흠 잡을 데 없는 가창을 선보였지만 이번 작품에서 더더욱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낙천적인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강혜정의 경쾌한 음색과 블랑쉬의 미래를 예언하는 한마디 한마디에 꽉 붙들렸으며, 원장수녀의 죽음 이후 무서움에 떠는 블랑쉬를 교조하는 장면에서 섬뜩함을 선사했던 정수연의 가창에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리두안 수녀 역의 임세경은 언제 봐도 혼신을 다하는 가창과 파워로 관객들에게 오페라 보는 재미를 선사했다. 단, 5월 5일 첫날 커튼콜 때 곧 울 것 같은 얼굴을 내보여 본인의 연기와 가창이 마음에 안든 것인지? 혹은 작품과 혼연일체가 돼 리두안 수녀 역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인지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국립오페라단은 쉬지 않고 다음 작품을 올린다. 5월 19일부터 22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 올리는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연출 이소영)이 그것 . 소프라노 박미자ㆍ 이현(아디나 역), 테너 나승서ㆍ 조정기(네모리노 역), 바리톤 우주호ㆍ 김주택(벨코레 역) 바리톤 사무엘 윤(둘카마라 역)등이 출연한다.

정다훈 객원기자 〈탑라이더 otrcoolp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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