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오로지 배우의 연기만으로 47년간의 일생을 그려낸다. 무대 전환? 의상전환? 이런 거 없다. [피아프](연출 오경택)는 피아프의 과거가 하나 하나 밝혀지는 침대가 놓여있는 좌측 공간, 절정과 절망을 교차하며 보여주는 물랑루즈 무대인 가운데 공간, 피아프를 거리의 여자에서 순식간에 유명한 가수로 탈바꿈시킨 장본인인 루이 르플레의 술집 공간이자 그녀의 인생역정과 맥을 함께하는 기울어진 가로등이 함께하는 우측 공간이 한 무대에 펼쳐진다. 조명이 하나 하나 들어오며 장소 이동을 하는 식이다. 그 안에 자리한 최정원이 ‘피아프’였고 ‘피아프’가 최정원이었다. 그만큼 미친듯이 연기했다.

음악극 [피아프]는 1978년, 영국의 극작가 팜 젬스(Pam Gems)가 천상의 목소리를 가졌던 에디트 피아프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감동실화를 그린 작품. 흙탕 속에서 헤맸던 불우한 어린 시절부터 최고의 여가수로 인정받았던 인생의 절정, 그리고 최고의 자리에서 사랑을 잃고 홀로 남겨지게 되는 인생의 절망까지 영화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았던 에디트 피아프의 일생은 실제 흙이 가득 채워진 무대로 불러온다.

최정원이 열연한 피아프는 작지만 강한 여성이었다. 사실, 최정원의 키는 170cm으로 대한민국 여성 키로는 큰 편에 속한다. 3일 프레스콜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결과, 무대엔 품에 꼭 들어올 정도로 여리고 작지만 당찬 피아프만 존재했다. 르플레의 조언에 따라 ‘극장을 네 것으로 만들어’라는 장면에 이어 가수가 되어 점차 무대를 장악해가는 모습은 대사 그대로였고, ‘브라보 광대를 위해’ 장면에서는 어두운 그림자 장치와 함께 눈빛만으로 모든 걸 압도했다. ‘기쁨도 슬픔도 똑같아요. 다시 시작해요’라고 노래하는 넘버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에서는 최정원의 22년 연기 인생이 오버랩 됐다. 무엇보다 최정원의 연극이었음은 두 말할 필요 없다.

작품은 눈을 호강하게 만드는 장면도 없고, 코믹한 요소도 없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이야기 전개와 주인공과 몇몇 인물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이 여러가지 역할을 돌아가면서 해 사전정보를 모르는 관객은 불친절한 연극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특히, 막셀 세르당의 비행기 사고 장면은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 기자가 보기에도 지나치게 상징적이어서 내용 파악이 쉽지 않았다. 그 결과 이 작품에 대한 평은 반반으로 나뉠 듯 하다.

그럼에도 ‘피아프’에게서 100% 수혈을 받은 듯한 최정원의 연기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면, ‘진지한 음악극은 재미없다’는 통념 아니면 ‘유희를 즐기려는 관객들의 기호와는 맞지 않는 작품’이다는 여러 의견을 뒤로 하고 단 한 가지에 생각을 모으게 된다. 즉, 소름과 전율이 오싹 끼치는 최정원의 연기와 노래를 보는 것만으로도 관람하기 충분한 작품이라는 것. 촉촉하고 강단 있는 두 눈에 인생의 희노애락을 모두 담은 모습, 고통에 갈라진 허스키한 목소리 이 모든 게 관객의 마음을 스르르 무너지게 했기 때문이다.

세계 미들급 챔피언 막셀 세르당을 연기한 배우 조운의 남성미, 피아프의 마지막 사랑이었던 떼오 역 홍준기의 상큼한 연기도 눈에 들어왔다. 특히, 2004년 피아프의 일생을 다룬 또 다른 작품 [빠담 빠담 빠담]에서 배우 서범석이 젊은 시절 연기했던 떼오가 떠올라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뮤지컬 [맘마미아!]에서 최정원과 수백 번 호흡을 맞춰온 이경미(뜨완 역)와 황현정(말린 역)은 이번 작품에서 친구로 등장해 안정감 있는 호흡을 보여줬다. 황현정의 쭉 뻗은 큰 키와 피아프의 꾸부정한 어깨가 절묘하게 대비된 점도 일품이었다.

최정원은 화려하고 신나는 뮤지컬 무대에서도 빛나는 배우이지만, 연극적 색채가 강한 작품에서 더 빛을 발하는 배우라는 생각이 든 점 역시 이번 작품 감상의 수확이었다. 더욱이 그녀가 부르는 ‘장미빛 인생’이 핏빛으로 다가온 관객이 본인만은 아니었을거다.

정다훈 객원기자 〈탑라이더 otrcoolp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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