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쯔비시는 현재 국내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시장 점유율이 높은 브랜드는 아니다. 과거 현대차가 기술이전을 받던 시기의 그 위풍당당한 모습은 현재로선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뒷방 늙은이처럼 취급하면 매우 곤란하다. 아직 미쯔비시의 차 만들기 실력은 현대차가 쉽사리 넘어설 수 없는 부분들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미쯔비시의 모델 중에서도 랜서 에볼루션은 특별하다. 아니 모든 브랜드를 통틀어 꼽아봐도 그 어떤 차들보다 독특하고 유일한 점이 많다. 국내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이니셜디를 통해 두터운 마니아 층까지 있을 정도이다. 잘 모르는 소비자라면 의아하게 생각 할 수도 있지만, 랜서 에볼루션의 특별함은 분명 한번쯤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란에보로 불리니 이렇게 부르는 편이 짧아서 편하고 더 익숙하다. 란에보는 기본 모델인 4도어 세단 랜서를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진 특별한 모델이다. 몇몇 다른 제조사에도 이와 같은 특별한 고성능 모델들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도 란에보가 주는 존재감은 남다르다. 295마력에 달하는 2리터 배기량의 하이 부스트 터보엔진도 특별하지만, 사실 란에보의 가장 큰 매력은 4륜구동 시스템에 있다. 일반적인 상시 4륜구동과는 다르게 태생부터 스포츠 주행을 위해 다듬어진 시스템이다. 일반적인 4륜구동 시스템이 전 후륜 구동 축 사이의 동력 배분율을 조정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란에보는 전 후륜 구동 축 배분뿐 아니라 후륜의 좌우 동력배분을 조율하여 좀더 능동적으로 코너링 성능을 높이고 있다. 포르쉐도 최근 이와 유사한 토크 벡터링 시스템을 선보이고 있고, 다른 메이커에서도 몇몇 고성능 모델에 유사한 성격의 구동력 배분 시스템을 채택 해 나가고 있다. 란에보는 그런 면에서는 상당히 앞선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외형 디자인은 기본형인 랜서를 바탕으로 많은 부분이 다듬어져 있다. 전면의 크게 입을 벌리고 있는 그릴과, 공기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옆으로 비껴나 달려 있는 번호판에서 이미 심상치 않은 기운이 풍겨진다. 보닛에는 공기의 흐름을 위해 덕트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고, 앞 뒤 휀더도 랜서의 것보다는 다소 돌출되어 있다. 큼지막한 BBS제 휠 사이로는 브렘보 브레이크 시스템이 보인다. 트렁크 위로 달려 있는 큼지막한 리어스포일러는 소위 말하는 ‘양카’소리를 듣기 딱 좋을 정도로 상당히 과장된 모습이다. 이와 같이 상당히 폭넓은 부분에서 고급 튜닝 사양이 기본 적용된 채로 출고된다. 말 그대로 올 인원 패키지 상품이나 다름없다. 실내에 들어서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는데, 각종 내장재들의 질감이 상당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내 마감품질을 우선시 하는 소비자라면 싫어할 대목이지만, 사실 란에보를 찾는 사람이라면 이런 내장질감에는 아랑곳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달리기에 연관된 내장재들은 또 다르다. 제일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레카로제의 버킷시트다. 타고 내리는게 다소 불편하긴 해도 이 시트만 봐도 달리기 성능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전후 위치와 각도 조절만 가능한 풀 버킷 시트에 속하는데 어깨부분까지 제대로 감싸주고 있기 때문에, 강한 횡G가 걸리는 코너링 시에도 드라이버를 지지하는 능력은 매우 탁월하다. 스티어링 휠의 사이즈도 적당하고, 뒤로 마련된 패들 시프트 레버도 단단한 질감을 가졌다. 듀얼클러치 미션 이기 때문에 변속기도 자동변속기에 속하지만, 변속레버의 모양은 수동변속기와 흡사하게 되어 있다. 란에보의 기어비는 공격적인 가속형에 속한다. 6단 변속기 이지만 100km/h 항속시에 2000rpm을 훌쩍 넘기고 있다. 덕분에 최고속도는 높지 않은 편이지만, 200km/h 이하에서는 언제든지 강력한 가속력을 발휘할 수 있다. 변속 레버 옆에는 스포츠 모드와 수퍼 스포츠 모드를 오갈 수 있는 변환스위치가 있다. 수퍼 스포츠 모드에서는 변속기가 알아서 4000rpm 이상을 유지하도록 적극적으로 변속 해 주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잊은 채, 가속하고 감속하고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와인딩이 가능하다. 란에보의 진가는 역시 와인딩로드에서 드러난다. 비록 껑충한 높이의 세단 몸집을 가졌지만, 보는 것 만으로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코너링 성능으로 보자면 바닥에 낮게 깔린 스포츠카 못지 않다. 많은 매체에서 언급한 내용이지만,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를 탄 느낌으로 날카롭고 예리하게 드라이버의 의도대로 돌아가 준다. 특유의 4륜구동 시스템 덕분에 가능한 것인데, 굳이 와인딩 로드가 아니더라도 조금 과격하게 선회를 하다 보면 마치 차의 뒤에서 누군가 스티어링 휠을 같이 돌려주고 있는 듯 한 뚜렷한 반응을 느낄 수 있다. 조수석에 탄 일반인도 감지할 수 있을 정도이니 그 효과는 확실하다. 이처럼 안정적이기 때문에, 코너에서 남들보다 한발 일찍 가속 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와인딩로드에서는 대단히 큰 이점으로 다가온다. 직선구간이 많은 곳이라면 란에보를 추월할 수 있는 차는 셀 수 없이 많지만, 굽이진 와인딩로드에서는 몇 안될 것이다. 란에보를 운전하고 있다면 코너에서 주저하지 말고 가속을 해 줘야 한다. 오히려 적당히 가속 해 주지 않으면, 특유의 4륜구동 시스템이 선회 컨트롤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물론 한계 이상으로 과격하게 몰아 붙인다면 란에보 할아버지가 와도 되돌려 줄 수는 없으니 무모한 도전은 하지 말자. 사실 잘 달린다는 점을 빼면 란에보는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 높은 메인터넌스 비용도 한 몫 하는데, 이는 미쯔비시의 국내의 정비망이 여타 메이저 수입 브랜드보다 취약한 것도 영향을 주고 있는 느낌이다. 차량 사양상에서도 다소 아쉬움은 있다. 큼지막한 리어 스포일러 덕분에 후방 시야가 좋지 못한 란에보로서는 후방 주차 감지 센서 정도는 필수 사양이라고 생각되는데 빠져있다. 오히려 잘 달리는 차에서는 사치라고 생각되는 락포드 포스게이트의 오디오 시스템이 추가되어 있는 점은 의아한 점이었다. 물론 오디오 시스템의 만족도는 높지만 란에보가 타겟으로 하는 소비자라면 오디오 시스템보다는 좀더 저렴한 가격이나 시스템이 빠짐으로써 얻는 경량화 이득, 기타 무게에 영향을 크게 주지 않는 다른 소소한 사양을 좀더 비중 있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울러 2리터 엔진으로서 높은 출력을 뽑아내기 위해 손해 보는 연비는 데일리 카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수준이다. 더군다나 란에보의 연료탱크 용량은 연비에 비하면 매우 작은 편에 속하고, 고급 휘발유를 사용해야 하므로 항시 판매하는 주유소에 신경 쓰면서 다녀야 한다. 그래도 육천만원이 채 되지 않는 가격표의 란에보가, 두 배 이상 가격을 가진 차보다 더 심장을 두근거리도록 만든다는 것에 반기를 들 마니아는 많지 않을 것이다. 껑충한 세단의 몸으로 가히 사기에 가까운 코너링 성능을 가진 란에보를 괴물이나 공도의 제왕 등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많다. 이렇듯 여러 가지 부분에서 란에보는 이율배반의 성격을 가지고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글, 사진: 탑라이더 객원기자 조혁준(울푸^-^v~!) / 디자인, 편집: 디자인漁 차량제공: 부라부라

조혁준 객원기자 〈탑라이더 skywolf@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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