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로 유명한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한국무용으로 재탄생했다. 2010년 초연에 이어 서울시무용단(단장 임이조)이 1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 올린 <백조의 호수>(연출 유희성, 대본 김민)는 한국무용의 매력이 가득했다. 발레가 무용수들의 발끝에 집중하게 만들었다면, 이번 무용극은 손끝에서 피어나는 몸의 언어에 홀리게 만들었다. 강상구 작곡가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일부 편곡 및 작곡해서 선보인 음악은 해금 및 국악기와 인성(人聲)이 삽입돼 한국적 색채를 풍부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만강족의 샤머니즘적인 춤사위, 친위대장과 친위대가 충성을 맹세하는 검무 장면은 국립발레단의 <왕자호동>을 떠오르게도 했다.

총 5장으로 구성된 무용 <백조의 호수>는 원작의 큰 줄거리를 유지하되 고대 한반도 북부를 배경으로 한다. 원작의 오데트 공주와 지그프리트 왕자는 이름을 바꿔 비륭국의 설고니 공주와 부연국의 지규 왕자로 등장한다. 1인 2역을 맡게 되는 오데트·오딜 대신, 무용극에서는 설고니역과 거문조 역이 따로 존재하는 점이 다르다. 주술사 노두발수(원작은 로드발트)는 비슷한 이름으로 등장한다. 단, 원작과 달리 만강족의 소굴로 끌려온 설고니 공주가 노두발수의 청혼을 거절해 마법의 저주로 백조가 됐다는 설정이 추가됐다. 흑조 오딜의 32회 푸에테를 만날 수 없다는 점도 다른 점이다.

발레 <백조의 호수>기본 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우선, 왕궁무도회 장면인 디베르티스망(춤의 향연)을 그대로 따와 몽골, 중국, 인도춤을 선보인다. 여기서 길이가 길고 품과 소매가 넓은 옷을 입고 추는 장삼춤, 부채춤, 향발을 양손에 들고 추는 향발춤, 꽃을 양손에 들고 추는 화관무를 맛볼 수 있다. 호수에서 백조들이 선보이는 곡선 대형의 군무는 백조의 깃털을 연상시키는 이호준과 김효정이 만든 의상, 무용수들의 처연함으로 단연 빛나는 장면을 선사했다.

<백조의 호수>에서 청순한 여주인공 설고니 역을 맡은 이진영, 요염한 거문조 역을 맡은 박수정은 우아함과 기품있는 모습으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노두발수 역 이영일은 카리스마 있는 모습과 설득력 있는 마임장면을 선보여 눈여겨 보게 만들었다. 지규 왕자 역 최태현 역시 안정감 있는 몸짓으로 작품에 힘을 보탰다.

이미 유명한 원작을 작품 주제로 삼아 한국 무용에 대한 벽에 낮춰 관객들을 끌어들인 점이 눈에 띈다. 게다가 서양의 작품을 원작으로 했지만 한국 무용 특유의 여백은 살아있었다. 백조가 날아가는 장면을 구름 속을 날아가는 영상기법으로 보여줘 아스라한 기운을 전달했으며, 발레의 힘찬 도약과 달리 무용수들이 뒤로 뻗은 발끝이 어디엔가 살짝 걸친듯한 포즈를 선보일 때 절제미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이번 기회로 한국무용의 매력에 빠질 관객이 여럿 될 듯 보였다.

발레의 ‘토슈즈’ 대신 버선을 떠올리게 하는 ‘코슈즈’를 신은 무용수들의 발끝이 언뜻 언뜻 비칠 때, 서양의 차이코프스키의 음악 속에서 우리네 국악기 소리가 들릴 때, 정성주 무대디자인과 송승규 영상디자인의 손을 거친 무대 장치에서 한국적 정서를 체감할 때 관객들은 <백조의 호수>가 선사하는 동양적 판타지에 매료됐다. 마지막 분분히 휘날리는 백조의 깃털은 한국판 <백조의 호수>에 보내는 축하세례 같았다.

 

정다훈 객원기자 〈탑라이더 otrcoolp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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